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지난 9월 24일에 74세를 일기로 타계한 작곡가 장일남 선생은 국민가곡 '비목'으로 유명했다. 4분의 4박자의 이 노래는 묵직한 템포가 처음부터 끝까지 처연하게 이어진다.

 

'비목'에서는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상처가 아리게 느껴진다. 황해도 해주 태생인 장 선생은 1.4후퇴 때 홀로 월남한 실향민이다. 그리고 작사자 한명희 씨는 한국전쟁 10년 후인 1963년에 수색중대 소대장으로 강원도 산속을 순찰하던 중 군인의 초라한 무덤을 발견하고 한 편의 시를 짓는다. 가곡 '비목'은 이렇게 서로 다른 장소에서 유사한 시대적 아픔을 경험한 두 사람이 만나 1967년 비로소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한국적 서정미가 듬뿍 담긴 가곡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다. 가곡의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한 대표적 성악가는 테너 엄정행 씨였다. 동양방송 FM에서 활동했던 엄씨는 선이 분명하고 힘이 넘치는 목소리와 남성미가 강하게 느껴지는 외모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한 해에 70회가 넘는 지방공연을 소화해내며 청중들을 몰고 다녔다. 가곡을 대중가요만큼 유행하게 한 주인공이 바로 엄씨라는 견해에 토를 달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꽃미남'인 그가 가는 곳마다 여고생을 중심으로 팬클럽이 생겼고, '목련화' '비목' 등은 그의 히트곡으로 뜨겁게 사랑받았다.

 

엄씨뿐 아니라 바리톤 오현명 씨도 가곡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가곡인으로 기록된다. 그는 '한국가곡의 전도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일생동안 한국가곡만으로 독창회를 열어온 음악인이다. 신작가곡이 좀처럼 명성을 얻기 힘들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변훈 씨의 '명태'가 탄탄하게 자리잡은 것은 전적으로 오씨의 열정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1920년에 빛을 본 홍난파의 '봉선화'가 시발점인 한국가곡은 1970년대 중반부터 약 10년 간 전성기를 누렸다가 긴 사양길로 접어들어 애호가들을 안타깝게 한다. 작곡가 조두남, 김성태 씨를 정점으로 한 뒤 이에 필적할 만한 후진이 나오지 않고 있고, 가곡에 대한 인식도 서정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성악가도 과거와 같이 걸출한 인물이 배출되지 않은 가운데 대중가요에 크게 밀려나 있는 실정. 청중들 역시 정체되고 식상한 가곡에서 등을 돌린 채 저만큼 떠나버렸다.

 

근래들어 발표되는 신작가곡은 한 해에 70-80곡 정도다. 전성기 때보다 숫자상 줄어든 것도 줄어든 것이지만 시대를 풍미할 만큼 사랑받는 히트곡이 좀처럼 안 보여 안타까움을 더한다. 굳이 꼽자면 임긍수 작곡 송길자 작시의 '강 건너 봄이 오듯'과 김명희 작시 이안삼 작곡의 '내 마음 그 깊은 곳에', 이수인 작곡ㆍ작시의 '내 마음의 강물' 정도랄까.

 

모든 게 그렇지만 가곡도 팬들의 관심과 애정을 먹고 성장하고 발전한다. 태어났으되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금방 잊혀져 역사의 뒷장으로 쓸쓸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귀에 익으면 자연히 좋아하게 돼 있다는 점에서 생활 속에서 자주 들을 기회가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때 '금주의 인기가곡순위'를 발표할 만큼 방송사에서 주요시간대에 프로그램을 전진배치했으나 지금은 호젓한 시간대에 몇 곡 틀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곡의 현주소는 1980년대 중반에 멈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대 애창곡이 '그리운 금강산' '비목' '가고파'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두남, 김성태 씨와 같은 쟁쟁한 대중적 작곡가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음악계의 주류자리를 내준 채 행사나 방송에서 구색맞추기로 불려질 만큼 구석으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애호가 중심으로 한국가곡 부활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반갑다. 대한민국 가곡제 추진위원회는 29일 출범식을 갖고 내년 11월 국립중앙극장에서 제1회 대한민국 가곡제를 열기로 했다. 과거에도 특정 단체 중심의 가곡제가 없었던 건 아니나 현재 준비 중인 행사는 성악가, 작곡가, 작시자, 연주가 등 예술인들이 두루 의기투합해 침체일로의 가곡을 되살리자는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가곡의 부흥은 작곡가, 작시자, 성악가가 3박자를 이뤘을 때 가능할 것이다. 발길을 돌린 왕년의 애호가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젊은 팬들을 새롭게 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서정성 일변도의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자기 모방과 표절을 끝내고 연가, 콘서트아리아, 이중창 등 새로운 형태의 가곡을 탄생시킬 때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제2의 전성기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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