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가리의 종말
아침가리의 종말
  • 서정수
  • 승인 2012.09.1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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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 박사 /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 자연환경보전연구소 소장
서정수 박사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자연환경보전연구소장
[이투뉴스 칼럼/ 서정수] 조선시대 <정감록>에 ‘삼둔 오가리’ 이야기가 나온다. 삼둔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의 살둔, 월둔, 달둔, 오가리는 인제군 기린면 방동면 중 아침거리, 연가리, 명지가리, 적가리, 곁가리를 뜻하며, 이중 아침가리가 바로 조경동으로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다. 조경동(朝耕洞)이란 한자 이름 그대로 ‘아침 일찍 잠시 밭을 가는 동네’라는 뜻으로 해 비침이 아주 짧은 오지를 말한다.

깊은 골 맑은 물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지만, 다양한 동식물, 그리고 넋을 잃게 하는 물안개와 밤하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생태적으로도 뛰어난 곳이다.
1980년대만 해도 아침가리골을 아는 이가 적었다. 오직 오지의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만의 숨겨놓은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다.
먼 입구에서 차를 세워두고 온통 수 시간에 달하는 산길을 걸어 다녀오던 계곡이었다. 아침가리골 계곡물은 시원한 생수였으며 길옆의 곰취잎은 식욕을 돋우는 자연식이었다.
행여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똥을 향해 하늘을 어지럽히는 투정의 대상으로 여겼으니 그 정도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한 해전 어느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을 이 지역에서 진행한 후 지금은 하루 천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여 들고 있다.
18세기 이후에 존재를 처음 알린 이후 몇 백년을 소중히 지켜온 자연생태계가 갑자기 몰아닥친 인파로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 최근 일년간에 벌어진 사건의 전말이다.
좁은 진입로는 엉켜진 차들로 교차가 어렵고, 계곡부 곳곳은 텐트촌이며, 두채 밖에 남지않은 가옥에서 떼는 불이 아닌 고깃불 연기는 계곡을 감돌고, 곳곳에 널부러진 음식물 쓰레기며, 계곡부 모래사장은 낚싯줄과 미끼들로 어지렵혀져 있다.
계곡부 곳곳에 소나무 숲은 잘려진 나무들의 사체로 엉클어져 있고, 넓고 깊은 소(沼)에 노닐던 열목어의 유영은 보이지 않는다.
일명 한국의 닥터휘시(금강모치: 한국특산어류)는 튀김요리의 재료가 되어 성체를 찾기 힘들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너무 가슴 아프고 쓰리다.

이 계곡에 서식하던 열목어의 길이가 어른 허리춤에 이를 정도로 대형종이었고, 금강모치는 사람의 발을 쪼아대듯 모여들어 손으로도 만질 수 있었던 시간들이 너무 아쉬울 뿐이다.
길옆 자생하던 곰취는 물론이고 질경이까지 뿌리 채 뽑아가는 이들의 저의는 무엇일까.
계곡부 높은 곳에 아담하게 모여살던 헛개나무들은 엉성한 그루터기만 남겨진 채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유독 아침가리의 자연만을 아쉬워하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마지막 보루처럼 생각했 왔던 이곳의 폐허를 보며 우리나라 산천 곳곳의 안녕이 우려스럽다.

올해 열목어는 종 자체가 처음으로 법정보호종으로 등재되었다. 그동안 열목어의 서식처는 몇군데 법으로 보호받고 있었으나 종 자체는 법으로 정해진 종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산천 계곡 곳곳에 숨죽여 살던 열목어가 거의 남획되어 이 지경에 이르자 법의 보호를 받게 된 것은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쉽게 변하지 않는 놀이문화, 자연에 대한 경외심 결여는 건전한 삶을 포기한 마지막 인생을 사는 이들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

내일이 없는 삶, 남겨줄 유산도 없는 삭막한 삶, 그러나 자연은 그들만의 유산이 아니다.
후세에 살아갈 후손들의 몫을 빌려 쓰고 있다는 절박한 우리의 도리를 깨달아야 할 때이다.
아침가리의 종말은 강원도, 한반도, 아니 전 세계로 이어질지 모른다.
마지막 가을 정취를 만끽할 추석 연휴에는 곳곳에 버려진 양심을 되 담아오는 미덕을 기대해 봐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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