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인트 가게 위장부터 발바닥 자석 무선 조정기까지

[이투뉴스] 한국석유관리원은 지난달 대구·경북 지역에서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가짜석유 판매자 48명을 적발하고 가짜석유 3만 리터와 주유기 등을 압수했다.

대구·경북은 올해 적발된 업소 중 약 50%가 위치해 있을 정도로 전국에서 가짜석유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석유관리원이 이날 이 지역을 집중단속 한 것도 이 때문.

석유관리원이 이번에 적발한 곳은 페인트 가게로 위장하고 가짜석유를 판매해왔다. 가짜석유도 페인트 통에 담아 판매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이번 사례에서 보여주듯 가짜석유는 해가 갈수록 지능화·대형화되고 있다. 적발된 3만 리터는 일반승용차 가득 주유시 870대 분량이다.

석유관리원은 앞서 지난 9월 역대 최대 규모인 1조억원에 가짜석유를 제조·유통한 혐의로 21명을 검거한 바 있다.

가짜석유는 한 석유제품에 다른 석유제품을 섞거나 석유제품에 석유화학제품을 혼합, 한 석유화학제품에 다른 석유화학제품을 첨가하는 방법 등으로 제조된다. 

모든 석유제품은 원유에서 동시 생산되기 때문에 생산원가는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용도에 따라 세금을 차등 부과하기 때문에 세율이 낮은 제품끼리 섞어서 속여 판매하면 막대한 부당이득을 챙길 수 있다. 가짜석유 제조·유통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가짜석유가 심각성을 더하는 건 2000년 중반까지 연간 약1조원으로 추정되던 세금 탈루액이 현재 약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서 잘 드러난다. 6∼7년새 4배 가까이 급증한 것.

가짜석유는 2000년대 초반 세녹스가 시중에 판매되면서 표면화됐지만 사실상 그보다 훨씬 전부터 골치거리였다. 

1995년 당시 통상산업부(현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4년 전국 주유소 중 가짜석유를 팔다 적발된 사례가 78건이었다. 전년도인 1993년에는 66건이었다.

관련업계에서는 1991년에 주유소 거리제한이 철폐된 뒤 숫자가 크게 늘면서 채산성 확보가 어려워지자 주유소에서 톨루엔 등 석유화학제품을 섞은 가짜석유를 판매하는 사례가 급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2004년 세녹스가 가짜석유로 규정, 판매가 금지되면서 법망을 피하려는 제조업자와 단속기관인 석유관리원간 쫓고 쫓기는 싸움이 본격화됐다. 제조업자는 매년 지능화된 새로운 방법을 사용해 부당이득을 챙기려 했고, 석유관리원은 이를 발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석유관리원이 단속한 사례를 보면 지능화되는 가짜석유 판매수법의 일면이 드러난다.

2005년 2월 전북 군산의 한 주유소는 계량금액 표시식 버튼을 조작해 가짜석유를 판매하다 적발됐다. 주유시 버튼을 조작해 정상석유와 가짜석유를 번갈아 넣는 방법이다. 

같은해 7월 대전에 한 주유소는 담배갑 절반 크기의 리모콘을 호주머니에 넣고 무선으로 주유기를 조작하다 적발됐다. 정품과 가짜를 번갈아 주유해왔다.

2008년 충북 음성군에서는 발바닥에 자석을 부착, 이중밸브와 이중탱크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가짜석유를 판매한 주유소가 단속됐다.

비슷한 사례는 최근 울산의 한 주유소에서도 나타났다. 신발 밑창에 강력한 자석을 부착해 갖다 대기만 하면 밸브가 돌아 가짜석유가 섞이게 했다.

특히 발바닥 스위치와 같은 경우 리모컨과 달리 전파탐지기에 포착되지 않아 그동안 단속이 쉽지 않았다. 2009년 경기도 김포에서 모 주유소는 리모콘을 전자계산기로 위장해 이중밸브를 조작하다 걸리기도 했다.

석유관리원은 이런 주유소 이외에도 매년 대규모 가짜석유 제조장도 단속하는 실적을 거뒀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수법과 대형화를 실시간으로 따라가기는 여건상 쉽지 않은 실정이다. 석유관리원이 석유거래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배경이다.

강승철 석유관리원 이사장은 "유관기관과 협조해 판매자와 사용자, 판매장소의 토지·건물주에 대한 강력처벌을 추진하고 있다"며 "등유형 가짜경유와 정량미달 주유 등에 대해서는 현장단속의 어려움이 있으므로 석유제품 거래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만규 기자 chomk@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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