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혁신에 대한 회의와 외부 압박에 결심 굳힌 듯
"사의 불가피, 스스로 자초한 결과" 지적도

▲ 한국전력공사 본사
[이투뉴스] 포퓰리즘에 휘둘린 에너지정책이 전기요금 왜곡과 전력부족 사태를 야기했는데, 정부가 그걸 바로잡아 보겠다는 한전 사장을 내친 모양새가 됐다.

김중겸 한전 사장이 가슴에 품고 있던 사표를 결국 꺼내 놓았다. 해외출장을 앞두고 지난 4일 측근들조차 모르게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요금 인상안을 놓고 정부와 마찰을 빚을 때도, 과천 관가를 통해 경질설이 흘러나와 위신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도 내색하지 않았던 불편한 심경이 뒤늦게 사의로 표출된 셈이다.

일각에선 최근까지 이어진 정부 측의 우회적 압박이 더 이상 직(職)을 유지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 갑작스런 자신사퇴, 왜? = 김 사장의 사의표명은 지난 6일 지식경제부 고위관료의 입을 통해 외부에 알려질 때까지 어떤 전조도 없던 돌발사건이다.

한전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사장은 이날 세계에너지협의회(WEC) 집행 이사회에 참석을 위해 모로코로 출장을 떠나기 직전까지 정상적으로 대면 보고를 받았으며, 자신의 신상변화에 대해 어떠한 사전 언질도 없었다.

한전 관계자는 "워낙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업무를 보셨기 때문에 처음엔 외부에서 또 경질설을 흘리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며 "갑작스런 소식에 모두가 당혹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물론 최초 경질설이 불거진 지난 9월부터 한전에는 살얼음판이 깔렸다. 실제 정부는 한전이 전력거래소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나서자 청와대에 김 사장의 경질을 전격 건의했다.

이 건의가 대통령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서 경질에 대한 부담감은 떨쳐 냈지만 여러형태의 압박에 회의를 느낀 김 사장이 언제든 스스로 물러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내재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사명감을 갖고 이 자리에 왔다"고 말할만큼 김 사장의 경영정상화 의지가 강했고, 최근에는 정부와의 관계 재정립에도 신경써 왔던 터라 이번 결정은 더욱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전의 또다른 관계자는 "공기업 경영에 대한 회의감 때문인지, 윗선의 회유나 다른형태의 사퇴종용이 있었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수포로 돌아간 MB식 공기업 혁신  =  김쌍수 전임 사장에 이어 한전의 두번째 민간출신인 김중겸 사장마저 스스로 직을 내려놓으면서 이명박 대통령식 공기업 혁신은 또다시 쓴잔을 마시게 됐다.

특히 한전에 대한 근본적 체질개선을 원했던 기대가 두 차례나 무위로 돌아갔고, 그 원인이 김 사장의 무리수 외에도 관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공기업의 태생적 한계에 있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앞으로 어떤 성향의 인사가 한전 사장에 임명되더라도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들거나 통제권을 벗어난 행보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이번에 재확인된 셈이다.

한전 관계자는 "어떤 문제의식도 갖지 않고 과거처럼 정부가 시키는대로 하고, 하라는대로만 하라고 민간출신 사장을 공기업에 보낸 것은 아닐 것"이라며 각을 세웠다.

반면 김중겸 사장의 사의표명을 불가피한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한전 사장은 어떻게든 안정적 전력수급을 책임진 사람인데, 정부와의 조율에도 실패했고 아무리 민간출신이지만 공기업 사장이 가져야 할 경영적 마인드와도 거리가 멀었다"면서 "김 사장 스스로 이런 결과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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