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멀쩡히 국도를 달리던 차가 갑자기 시동이 꺼졌다. 차량은 일시에 통제불능 상태로 치달았다. 핸들이 천근만근 무거워졌고, 브레이크도 말을 듣지 않았다. 공포감이 엄습하면서 머리가 쭈뼛 섰다.

그런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할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뻗뻗하게 굳은 핸들을 부여잡고 안간힘을 쓰는 것 밖에. 다행히 관성을 잃은 자동차는 스스로 멈춰섰다. 서행했길 망정이지 큰 사고를 당할 뻔 했다. 벌써 십여년전 일이다.

정비소로 멱살이 잡혀 끌려간 차는 꽤 오랜 시간 정밀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노련한 중년의 정비사도 머리만 긁적인다. 도통 이유를 모르겠단다. 정비사가 손댈 수 없는 전장품 비중이 높아질수록 이런 류의 고장도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틀이 지나서야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엔진에 전기를 공급해주는 배선과 ECU장치의 고장이 의심되니 일단 그 부품을 보증수리로 무상 교체해 주겠다고 했다. 모든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온 듯 보였지만 출고 이태째인 신차의 원인미상 고장이라니, 더 찜찜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원전 고장 소식을 접하면서 묘하게도 그 당시 일이 오버랩된다. 이러다가 안전 최우선을 강조해온 우리 원전도 어느 순간 통제불능의 순간을 맞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다.

물론 사고 피해나 그 여파를 생각했을 때 이 둘을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원전의 부품은 기(基)당 200만~250만개를 헤아린다. 자동차는 100분의 1 수준인 대당 2만여개 안팎이다. 여기에 원전은 1만2200km(UAE 원전 기준)의 전선과 800Km의 배관, 3만여개의 밸브가 투입된다. 그만큼 위험하다. 

반면 닮은 구석도 많다. 이용을 통한 편익은 높지만 고장이나 사고 발생 시 인적·경제적 피해가 반드시 뒤따른다. 무인운전 수준으로 자동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인적 판단과 조정을 필요로 하는 것도 그렇다. 이중삼중의 안전장치가 개발돼 새로 적용되지만 사고는 여전하다.

문제는 사고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는 이 둘의 태도다. 자동차는 사고 위험을 더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하는데 원전은 유독 사고 위험이 거의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는데 대국민 홍보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안심해도 된다고 했는데 100만년에 한번 있다는 사고가 터지고, 우리는 걱정없다고 하는데 은폐사고와 비리가 잇따라 터지니 국민 불안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원전시스템의 완결성을 자랑하면 할수록 고장이나 결함은 숨겨야 할 일이 된다. 원전도 자동차처럼 언제든 고장이 발생할 수 있고, 사고가 발생하면 인명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해 줘야 한다. 그래야 종사자들도 고장·사고를 있는 그대로 국민에 알리고, 원전 당국에 대한 신뢰도 회복된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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