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경주시-경주주민 갈등만 키워…정부는 손놓고 보기만

경북 경주시로 이전할 것으로 알려진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의 이전부지 결정이 자칫 법정시한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내년 1월1일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정부는 스스로 위법을 자초할 위기에 빠진다. 부지 결정이 늦어지는 이유는 한수원ㆍ경주시ㆍ주민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한수원과 경주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까지 본사를 옮길 대상지역을 선정키로 했으나 지역간 갈등과 경주시 추천부지에 대한 검토작업이 끝나지 않아 이달 말까지 결정을 연장했다. 문제는 이전부지를 확정해야 하는 법정시한인 내년 1월1일까지 채 한 달도 남지 않아 정부가 시한을 어길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한수원은 방폐장 유치지역 지정고시일인 지난 1월2일 이후 1년 이내에 토지매수와 본사이전 등에 관한 계획을 확정하도록 돼 있다. 또 방폐장에 대한 전원개발사업실시계획 승인 시점부터 3년 이내에 유치지역으로의 이전을 완료하도록 규정돼 있어 한수원은 2010년 10월 말까지 본사를 경주로 이전해야 한다.


경주시는 지난해 11월 준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이하 방폐장) 유치를 위한 주민투표에서 89.5%의 찬성률로 포항ㆍ영덕ㆍ군산 등 3개 지역을 제치고 유치지역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수원 본사 부지를 놓고 방폐장 인근으로 이전해야한다는 원전주변지역(이하 동경주) 주민과 균형발전을 위해 도심지역(이하 서경주)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민의 요구가 겹쳐 수개월째 갈등을 빚고 있다.


◆마감 시한은 다가오고=부지이전 장소를 결정해야하는 시간이 한달남짓 다가오자 한수원은 전문가들의 검토결과를 토대로 월성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한 경주시 양남면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는 공문을 경주시에 보냈다. 이는 평지로 개발이 용이하고 울산까지 20여분 거리로 비교적 생활여건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도심지역(서경주)으로 본사이전을 위해 동경주 지역주민에게 한수원 생활연수원, 에너지박물관, 문무대황 청소년호국수련관 건립이라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말하고 "이견 조율이 안되면 결국 양남면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이에 동경주지역 주민들은 한수원 본사 이전 대안으로 제시된 인센티브에 대해 거부입장을 밝혔다.


한수원에 의해 '양남면'이라는 새로운 카드가 제시되자 동경주와 서경주 주민보다 애간장을 태우는 것은 오히려 경주시가 됐다. 한수원 본사가 양남면으로 이전할 경우 양남면이 실질적으로 울산생활권인 만큼 경주시에 아무런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월성원자력발전소 사례를 보더라도 (양남면은) 행정구역만 경주시로 되어있을 뿐 실질적인 생활권은 울산"이라면서 "한수원 본사의 양남면 이전을 반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물밑에서는 한치 양보도 없는 첨예한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주시 관계자는 "표면적으로 한수원의 양남면 이전을 반대할 수는 없지만 협의과정에서 반대하는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며 "(한수원 본사 이전 문제는) 우리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당사자 협의만 외치는 중앙정부=한수원 본사 이전을 두고 지역민심이 분열하고 있는 가운데 어렵게 방폐장 부지를 선정한 산자부는 자칫 법정 시한을 넘길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일단 산자부는 한수원-경주시 양측이 현명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며 정부 개입은 검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기용 산자부 방사성폐기물 팀장은 "한수원과 경주시가 이 문제에 대해 당사자 간 합의를 찾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마저 뛰어드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마음은 안타깝지만 산자부는 법정 시한 내에 차질없이 결정을 내리도록 종용할 뿐"이라고 말했다.
 

나팀장에 따르면 산자부는 한수원과 경주시가 당사자 협의에 따라 결정을 내릴 때까지 개입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한수원-경주시장-지역주민 구도의 협의라인에 정부까지 개입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나팀장은 "경주시에는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해 원만히 타결하도록 종용하고 있고, 이전 주체인 한수원에는 기한 내에 분명히 이전을 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면서 "현재 대화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정부측도 섣불리 언급할 입장은 못 된다"고 말했다.


한수원 본사 이전문제는 무엇보다 공약을 내세운 경주시장과 지역주민이 먼저 결론을 내려야 할 사안이란 것도 산자부의 잠정적인 입장이다. 한수원 역시 사업자로서 양측의 지역주민 모두가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란 이유다.
 

나팀장은 "현재로선 경주시장이 동경주 주민을 설득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일정이 촉박한 만큼 산자부에선 이들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말했다.


아무튼 한수원과 경주시는 부지이전 문제를 12월 중순인 다음주까지 결정을 내릴 방침이다.

<특별취재팀=안경주ㆍ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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