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주유소 시장구조 바꿔야
스스로 대형사업자 특권 포기…유통구조 개선 일조 보람

정원철 한국자영주유소연합회장

[이투뉴스] "주변에 경영난에 처한 주유소가 너무 많다. 알면서도 모른체하기 어려웠다. 이들도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고 싶었다"

정원철 한국자영주유소연합회(이하 한자연) 회장에게 연일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한자연은 SK폴 주유소를 운영하다 경영 어려움이 커지면서 SK측의 운영방식에 반발한 사업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처음에는 소규모였지만 현재는 한국글로벌에너지라는 석유대리점을 만들 정도로 성장했다.

단체를 이끌고 있는 정 회장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겉 모습은 외소해 보이지만 본인이 맞다 싶으면 끝까지 간다는게 주변인들의 전언이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한자연이 꿋꿋이 행보를 계속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 같은 뚝심이 자리하고 있다.

정 회장도 처음에는 회장직을 맡는 걸  주저했다고 한다. 요즘같은 조건에서는 어려운 주유소가 살아남기 힘들다는 점을 인지,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한번 뛰어들면 앞만보고 가는 자신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야할 일이 있는 사람은 하게된다는 말처럼, 회장 자리는 인연이 이어졌다. 2011년 대전에서 열린 한자연 창립총회에 우연히 참석한 것이 계기가 돼 지금에까지 이르게 됐다.

경북이 거주지였던 그는 당시 처가집에 일이 있어 대전에 들렸다 창립총회 얘기를 듣고 호기심에 그날 자리에 참석했다. 거기서 그는 경북지회장으로 선출됐다. 경북지역에서 30년 가까이 주유소를 운영하면서 주변 사업자들에게 이름이 이미 많이 알려져 추천이 이어진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거 서포트 역할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한자연이 내홍을 겪으면서 자리를 못잡고 흔들리는 모습이 그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조금씩 중앙회 일을 맡는 횟수가 늘어나더니 급기야 이사와 간사를 중심으로 그를 설득하는 과정이 이어졌고, 마침내 회장으로 추대하기에 이른다.

당시 그는 "전국 조직망을 가지고 있는 4개 정유사들과 협의를 거쳐 공동구매로 기존의 알뜰주유소와 같은 가격으로 자영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 회장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이처럼 고심해야 할 자리를 맡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고속도로 주유소를 포함해 경북지역에만 3개의 주유소를 운영하면서 경영적인 측면에서 그리 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판매물량도 전국 주유소 중 상위권에 속해 정유사들 입장에서는 주요 고객인데다 연매출도 100억원을 넘길 정도다. 시쳇말로 그냥 남 신경 안쓰고 살아도 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사람이 정유사들에게 소위 찍히면서까지 어려움을 자처한 이유는 뭘까. 현재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철저히 강하게 돼 있는 주유업계 구조를 바꿔야 할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는 게 정 회장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유업계는 피라미드 구조로 크게 상위층, 중간층, 하위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상위층의 경우 판매물량이 많아 정유사들이 알아서 낮은 공급가에 석유제품을 공급한다. 공급가가 낮으면 주유소는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싸게 팔거나 이익을 더 남기는 등 선택의 폭이 넓다.

중간층은 상위층 보단 공급가가 높지만 협상을 통해 다소 낮출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다.

반면 대다수를 차지하는 하위층은 협상의 여지가 없어 정유사가 제시하는 공급가에 석유제품을 공급받는다. 상위층과 하위층은 리터당 100원 가까이 공급가가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사가 상위층을 관리하기 위해 낮춘 비용을 하위층에서 충당하고 있다는게 정 회장의 설명이다. 하위층은 결국 어려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다.

일단 시작하면서 그는 본인의 성격대로 앞만보고 달렸다. 특히 회원 주유소들에 대해 알뜰주유소 전환을 적극 독려하면서 전기를 마련했다.

자신도 SK폴을 떼고 알뜰주유소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SK로부터 계약해지와 관련된 회신을 최초로 받으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그는 SK가 경쟁 주유소들보다 공급가를 높게 책정하는 등 계약 내용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해지가 불가피하다는 내용증명을 보냈었다.

알뜰주유소를 추진한 지식경제부와도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서 석유제품 유통시장 개선에도 힘을 보탰다. 삼성토탈 시장 참여, 석유전자상거래 등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현재 석유제품 유통시장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환기를 맞게 됐다. 특히 정유사들의 시장 독점체제가 적잖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일부 정유사들은 알뜰주유소 숫자가 1000여개에 육박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해 자사폴 주유소에게 공급가를 파격적으로 낮추고 있다.

정유사들이 공급가를 낮추기 위해 중간 거래처인 대리점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서 위기를 느낀 대리점들이 수입업을 등록하는 등 돈독한 관계도 균열이 생겼다.

그는 현재 유통시장 개선을 위한 작업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석유공사가 해외에서 휘발유를 수입해 전자상거래를 통해서 거래하면서 파장은 더 커졌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어려웠던 주유소 사업자들이 알뜰주유소로 전환 후 매출이 늘고 전자상거래로 제품도 싸게 사는 등 희망을 갖게 된 것을 고무적으로 봤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금까지는 잘해왔지만 여전히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는 자평도 이어졌다.

회원 주유소의 알뜰주유소 전환이 더욱 활성화 돼야 하고 SK와의 껄끄러운 관계도 어떤 식으로든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건이 된다면 해외에서 정제유를 직접 사오는 방안도 고심하고 있다.

아직 계획만 있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올해도 바쁜날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 회장은 미소지었다.

"어려운 사업자들과 석유제품 유통시장 개선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많이 힘들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겠지만 김진곤 이사 등 집행부는 물론 회원사들과 힘을 모아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갈 것입니다.  한번 뭔가 하려했으면 끝을 봐야죠"

부드러우면서도 강함이 묻어있는 그의 말 속에서 올해 한국자영주유소연합회의 가시적인 행보를 엿볼 수 있었다.

조만규 기자 chomk@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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