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공급가 인하 위해 유통단계 축소…활로 모색 고심

[이투뉴스] 정부의 석유제품 유통시장 개선 정책의 불똥이 석유대리점에 튀었다. 정유사들이 공급가를 낮추기 위해 석유대리점 단계를 건너뛰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석유대리점은 정유사에서 제품을 받아 일선 주유소에 공급하는 중간 도매상으로, 그동안 비교적 정유사와 안정적인 거래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상황이 바뀐 것이다.  

정유사와 관계가 소원해진 석유대리점들은 수입사로 등록해 활로를 모색하는 등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유사와 석유대리점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정유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던 공항석유·서울석유·한미석유·STX에너지·C&S에너지 등이 돌연 수입사로 등록했다.

상황에 따라 해외에서 석유제품을 수입해 유통하겠다는 의지다. 정유사 입장에서 석유제품 수입은 눈에 가시같은 일이다.

석유대리점들의 이 같은 변심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정부의 석유제품 유통시장 개선을 위한 강력한 움직임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강력한 석유제품 유통시장 개선 정책으로 시장은 적잖은 혼란기를 겪고 있다는 판단이다. 기존 주유소들의 반발 속에서도 어느새 알뜰주유소가 전국적으로 1000여개에 육박하고 있다.

정부가 당초 목표했던 1300여개에 가까워진 것이다. 알뜰주유소가 당초 계획인 리터당 100원 인하에는 못미치지만 소비자들로부터 유가인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알뜰주유소 도입에 따른 가격인하 효과가 기대에 못미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정부는 석유전자상거래를 개설하고 거래시 각종 혜택을 부여했다. 이 영향으로 경유수입이 급격하게 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국석유공사가 페트로차이나로부터 휘발유를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이 물량을 석유전자상거래를 통해 유통하면서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은 싸게 석유제품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정유사들은 멀리서 불구경만하는 입장이 될 수 없게 됐다.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는 등 직접적인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일부 정유사는 일선 주유소들에게 파격적인 공급가를 제시하고 있다. 자칫 폴을 떼고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문제는 공급가를 낮추려다보니 유통단계를 축소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석유대리점을 통하면 리터당 20∼30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를 줄이는 조치로, 석유대리점이 피해를 입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석유대리점 판매물량이 50% 가까이 줄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비교적 순탄한 관계에 틈새가 벌어졌다. 정유사에만 기댈 수 없게 된 것이다.

정부가 수입 석유제품에 특혜를 제공하면서 석유대리점이 경쟁력을 상실, 매출과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자 정유사와 마찰을 빚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수입업에 나서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석유대리점들의 수입업 진출이 늘면서 기존 석유수입사들과의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재 수입시장은 세동에너탱크, 페트로코리아, 남해화학, 이지석유 등이 90%를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경쟁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수입 석유제품 세금혜택 물량을 쿼터제로 묶어놨기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 석유전자상거래를 통해 거래된 수입석유제품 물량은 경유 300만 배럴, 휘발유 70만 배럴로 정해졌다. 예컨대 경유가 500만 배럴이 수입됐다면, 그 중 300만 배럴만 3% 할당관세를 적용받고 나머지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동에너탱크 처럼 발빠르게 석유수입에 참여한 회사는 전량을 할당관세 적용을 받은 반면 나머지 회사는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정부가 수급 안정을 이유로 업체가 참여하는 순서대로 물량 공급의 혜택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전체 물량이 쿼터제로 묶인데다 일부기업에 혜택이 쏠리면서 공정한 경쟁을 위한 요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터졌다. 아울러 경쟁이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정부가 원하던 가격인하 효과도 기대할 수 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불거졌다.

관련업계 한 임원은 "석유전자상거래 등 정부의 과도한 시장 참여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거 같다"며 "전반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만규 기자 chomk@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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