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 송전망에 발전소 증설로 설상가상
수급계획·송전계획 동시에 짜야 계통난 해소

▲ 국내 전력망 현황 및 확충계획 (2012년말 기준)

[이투뉴스] 한국수력원자력이 울산시 울주군에 짓고 있는 1400MW급 신고리원전 3호기는 오는 9월 상업운전을 앞두고 막바지 시험운전이 한창이다. 아랍에미리트(UAE) 수출 원전과 동일 모델(APR1400)로, 내년 준공되는 4호기와 함께 6조4800억원이 투입됐다. 공정률은 3호기 99%, 4호기 95%다.

그런데 7년 이상 공을 들여 지은 이들 원전은 준공을 앞두고 정상가동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기존 송전망에 과부하가 걸려 대량 생산된 전력을 수요처인 부산이나 대구로 보낼 방법이 여의치 않아서다. 

현재 이 지역서 가동되는 원전은 고리 1~4호기, 신고리 1,2호기를 포함해 5140MW에 달한다. 하지만 전력수송의 대동맥으로 비유되는 송전망은 이미 꽉 들어차 여유가 없다. 발전소 인근 계통에 문제가 생기면 고장 확산을 막기 위해 원전과 연결된 선로를 강제로 끊거나 최악의 경우 발전소를 세워야 한다.

이런 가운데 올해 1400MW급 신고리원전 3호기가 추가로 들어온다. 내년에 4호기까지 운전을 시작하면 이 일대 송전망은 고장 시 계통부하가 정상치의 154%로 치솟는다. 사람으로 치면 언제 뇌혈관이 터질지 모르는 중증 고혈압 환자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이런 분석도 현재 건설이 지연되고 있는 신고리-북경남 765kV 선로가 완공돼 이 망(網)을 타고 대구 서대구, 무주, 신옥천, 고령 등으로 전력이 분산 송전될 때 얘기여서 심각성이 더하다. 전력당국이 "3호기까지는 (계통연계가)어떻게 될지 몰라도 4호기는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 이유다.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당시 건설의향서가 제출된 신고리 5,6호기를 포함해 오는 2024년까지 고리지역에 추가 건설될 원전은 5600MW규모에 달한다. 정부는 대규모 설비증설로 전력난 해소를 기대하고 있지만 이 난제를 풀지 않는 한 정책목표 달성은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6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라 2027년까지 1만5800MW의 신규 석탄화력·LNG복합화력 설비가 확충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원전이 몰려 있는 울산과 월성, 화력발전단지가 집중된 태안·당진, 인천 등에서 드러난 계통 불안이 비교적 여유가 있다던 강원권과 수도권 서북방향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전력거래소 고위 관계자는 "6차 수급계획에 의해 한전과 송변전설비 확충계획을 수립하겠지만 지금처럼 송전선건설이 지체되는 경우 발전소를 짓고도 계통에 여유가 없어 못들어가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며 "국지적 문제가 전국화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신호"라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전력수급난은 숨통이 트이겠지만 반대로 수송능력 한계에 다다른 송전망은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 문제가 국내 유일 송전망 사업자인 한전의 목줄을 쥐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본지가 전력당국이 6차 수급계획을 수립하면서 조사한 전국 계통의 발전권역별 여유도 분석결과를 입수해 살펴본 바에 따르면, 국내 송전계통은 정부가 책정한 기준을 겨우 충족하는 포화단계에 봉착해 있다.

이미 인천과 서해안 지역, 고리원전 일대는 여유용량이 없어 발전소 증설이 어려운 상황이고, 남해안과 서남해안에도 삼천포와 강진에 각각 1000MW 석탄화력발전소를 1기씩 더 물릴 수 있는 수준에 그친다. 특히 울진-태백-가평으로 이어지는 765kV 송전선 덕분에 사정이 낫다고 알려진 영동지역도 2019년 완공 예정인 765kV급 별도 송전선이 깔려야 약 3800MW 추가 연계가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는 예정대로 석탄화력이 건설되고 울진·삼척에 원전 4기가 추가 건설되면 2019년 별도의 765kV 송전선이 건설되도 1회선 고장 시 나머지 선로에 107%의 과부하가 걸려 계통이 불안해진다. 또 영흥화력단지는 1000MW급 석탄화력이 추가될 경우 영흥-신시흥 345kV 선로의 고장부하가 112%로 높아진다.

주민반대로 건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고리-북경남 765kV 회선은 원전 2기 증설 시 1회선 고장 때 나머지 회선에 걸리는 부하율이 118%에 달할 전망이다. 이밖에 5,6차 수급계획을 통해 대규모 설비가 증설되는 태안, 당진, 영흥, 포항, 삼천포, 여수 등도 부하 상승으로 전력망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 

송전선은 예기치 않은 사고로 2개 회선 중 1개 회선이 끊어져도 나머지 선로를 통해 이 구간을 통과하는 전력이 차질없이 공급되도록 정부가 규정을 정해놓고 있다. 부하율이 100%를 넘는다는 것은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나머지 선로에 수용능력 이상의 과부하가 걸려 또다른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이번 6차 수급계획 설비를 확정하면서 영흥 8호기와 동부하슬라 1,2호기에 전기위원회의 계통보강계획 승인을 받은 뒤 사업허가를 내주겠다는 단서를 단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국내 유일의 송변전망 사업자(TO)인 한전은 6차 수급계획이 공고되면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 송변전설비 확충계획을 보강 수립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전은 매년 송전망 건설에 2조원 안팎을 투자하고 있다. 

5차 계획에 따라 2024년까지 건설이 확정된 노선은 154kV를 포함 울진-북경기 765kV, 신당진-신탕정 변전소 345kV, 신북평-영서 345kV, 신중부 지중화 노선 등 C-8000km(C=회선)에 달한다. 현재 가설된 송전망의 길이는 약 3만2000C-km다.

한전 송변전개발처 관계자는 "현재 전력망 불안은 민원 등으로 기존 계획이 제때 준공이 안되서 발생한 문제"라면서 "1개 프로젝트 계획수립에만 수개월이 걸리고 조단위 사업비가 필요한 등 나름의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계통은 전국이 하나로 묶인 환상망이라 여러가지 기술적 요인이 고려돼야 하고 정부기준에도 반드시 부합해야 한다"면서 "6차 수급계획을 반영한 건설계획 수립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계통운영기관인 전력거래소는 한전의 이같은 움직임에 조바심을 내고 있다. 기존 계획도 공기가 차일피일 늦춰지는 상황에 향후 신규 건설계획이 순조롭게 이행된다는 보장이 없어서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울진-북경기 765kV 신규노선의 경우 완공까지 10년은 족히 걸릴텐데 아직 성과가 없지 않느냐"면서 "삼척·울진에 새로 발전소가 들어가면 (송전선이 부족해) 밀양짝이 날수도 있다"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 관계자는 "전력수급은 모자란만큼 수요를 차단해 해결할 수 있으나 전력계통은 망에 연결된 다른 여러선로까지 영향이 파급돼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만큼 심각해 질 수 있다"면서 "수급계획을 짜고 이후에 송전망 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을 동시수립 형태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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