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 요소에는 공감…카드제휴, 전자상거래 주문량 등 해결과제도 잔존

▲알뜰주유소 전환 후 경영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된 통영주유소. 독특한 인테리어가 알뜰문양과 조화를 이룬다.
[이투뉴스] 서울에서는 알뜰주유소를 찾기 힘들다. 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달초 기준 13개소에 불과하다. 산업통상자원부(옛 지식경제부)가 지난 2월말 기준 알뜰주유소가 전국적으로 886개인 것으로 발표한 것과 비교하면 겨우 1.4% 에 불과한수준이다. 서울서 알뜰주유소가 생소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현상은 일부에서 알뜰주유소 무용론을 제기하는 데이터로 사용되기도 한다. 석유제품 판매는 서울이 경기도 다음으로 많지만 알뜰주유소 숫자는 상대적으로 훨씬 못미치기 때문이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작년 지역별 유종 판매량은 서울이 약 1349만 드럼이다. 전국 판매량이 약 1억5000만 드럼인 것과 비교하면 10% 수준에 조금 못미친다. 1드럼은 200리터다.

알뜰주유소는 과연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일까? 지방에서 알뜰주유소를 운영하는 사업자들을 직접 만나봤다. 남쪽은 이미 벗꽃이 만개한 즈음이다.

경남 통영에서 통제영주유소를 운영하는 양성영 사장에게 지난 4년은 악몽 같았다. 어려움의 시작은 인근에 이마트주유소(SK폴)가 들어서면서 부터다. 이마트주유소는 리터당 100∼150원 싼 가격을 내걸었다. 파워는 대단했다. 통영지역 석유제품 구매력의 60%를 끌어갔다. 사실상 독점이 된 것이다.

◆고민 끝에 알뜰 전환 후 매출 쑥

양 사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평소 한달에 1200드럼 이상을 팔던 것이 600드럼 수준으로 절반이 뚝 떨어졌다. 매출이 줄면서 경영이 어려워졌고 개인사까지 겹치면서 삶의 의욕도 사라졌다.

정유사인 SK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쩔 수 없단 말만 돌아왔다. 심한 배심감을 느끼며 주유소를 정리 하는 쪽으로 심각하게 고민하던 상황에서 알뜰주유소를 알게 됐다.

하지만 선뜻 전환하기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 정유사와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고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는 것이 과연 해답이 될지 확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한국자영주유소연합회를 통해 알뜰주유소의 가능성을 봤고, 정유사의 반대를 무릎쓰고 전환을 단행했다. 앉아서 죽느니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셈이다.

양 사장은 현재 누구보다 열정적인 알뜰주유소 신봉자가 됐다. 전환 후 월 600드럼 수준이던 판매량이 1500∼1600드럼으로 과거보다 2배 이상 늘었기 때문이다.

싸게 팔다보니 마진율은 과거에 비해 줄었지만 파는 물량이 대폭 늘어 이익은 더 남았다. 말그대로 죽다 살아 났으니 알뜰주유소가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다.

양 사장에게 자영주유소연합회 관계자들도 고마운 존재다. 자영주유소연합회 협조 요청에 바쁜시간을 쪼개 기자의 취재에 응해준 데서도 이 같은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알뜰주유소 전환 후 생존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아직 고민거리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정유사와 계약을 해지하는 과정에서 소송에 걸린 것이다.

양 사장은 정유사가 인근주유소와 경쟁을 감안한 합리적인 가격에 제품을 공급한다는 계약서 내용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지사유가 충분하다는 입장인 반면 정유사는 계약기간 만료 이전에 해지한 만큼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유사는 현재 2억여원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로 최근 첫 공판이 열렸다. 담당 변호사는 이길 수 있다고 말하지만 피소를 당한 입장에서는 속내가 편치않다. 여간 골치거리가 아닌 것이다.

양 사장은 그래도 "알뜰주유소 덕분에 살 수 있었다. 불과 몇달전만 하더라도 눈 앞이 캄캄했다"며 알뜰주유소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목포에서 만난 박장기 대성주유소 사장도 비슷한 경우다. 지금은 알뜰주유소 덕분에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담담한 표정이지만 정유사폴(SK)을 달고 주유소를 운영할 당시 심각한 경영난으로 걱정을 안고 살았다고 말한다.

해결책을 찾아 고민하다가 주유소에서 잠들기 일쑤였고 말수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어 애써 웃으려해도 쉽지 않았다.

그도 처음에는 알뜰주유소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정부가 하겠다니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정원철 자영주유소연합회 회장이 직접 전환하는 것을 보고 힘을 냈다.

주유소 현장에서 만난 박 사장은 불과 얼마전 고민거리를 안고 살던 사람으로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밝고 유쾌했다. 주위에서 너무 말이 많아졌다고 오히려 구박할 정도로 활달해졌다고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을 정도다 .

그는 어려운 시절에는 매월 400∼500드럼 밖에 못팔았지만 알뜰주유소로 전환한 후 1000드럼 이상을 팔고 있다고 밝혔다. 아마 대부분의 알뜰주유소 사장들이 매출이 훌쩍 뛰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알뜰주유소 덕분에 정유사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찾은 것에 그는 특히 감사해 했다. 정유사 틀에 있을 때보다 신경쓸 건 많아졌지만 "재밌다"는 말로 경영에 돌파구가 마련됐음을 표현했다.

▲선친 때부터 정유사폴 주유소를 운영해오다 아들대에서는 알뜰주유소로 전환해 새로운 시장 선도에 나선 삼호주유소
최근에는 인근 알뜰주유소 사업자들과 물량 공동구매를 통해 가격을 더 낮추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관건은 물량으로, 마음에 맞는 사업자 확보가 중요하다.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이 서로 가격 정보를 교류할 정도로 돈독해져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실례로 한 주유소가 싸게 나온 물량을 발견하면 다른 주유소에도 알려줄 정도로 동반자 관계다.

정유사폴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박 사장에 따르면 정유사 영업사원이 와서 "사장님만 싸게 드렸으니 다른데 말하지 마세요" 하면 주유소 사업자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정유사는 이런 방식으로 주변을 다 경쟁자로 만들었고 이를 악용해 주유소들 마다 서로 다른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해왔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주유소 간 단합이 잘 안된다는 평가가 내려지는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반면 최소한 이번에 본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은 단합된 모습이다.

◆무조건적 알뜰 확대에는 견해 엇갈려

지방을 돌며 만나 본 20여명의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은 과거 어떻게 살아 남느냐가 고민이었다면 최근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매출이 크게 늘면서 일손이 모자라다보니 부족한 일손을 메꾸기 위해 인력을 충원해야 하느냐 여부가 그것이다. 어찌보면 행복한 고민인 셈이다.

하지만 실제 어려움도 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달랐지만 문제를 풀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공통된 목소리였다.

호남지역의 경우 지난 겨울 한국석유공사로 부터 기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했다고 불만스러워했다. 온도가 크게 내려 가면서 정량을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석유제품은 온도가 추워지면 부피가 수축하고 반대의 경우 팽창한다. 예컨대 같은 20리터를 넣더라도 실제 들어가는 양은 겨울에는 많고 여름에는 적다. 온도를 15도로 유지해 제품을 거래 하는 온도보증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자상거래로 석유제품을 주문할 경우 2만 리터 단위로만 주문해야 하는 부분이 해결되길 바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사업자는 지방의 경우 탱크가 작아서 많이 받을 수 없는데 그렇게 안되니 매번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화물복지카드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다. 특정 정유사 주유소에서 활용하는 카드 점유율이 워낙 공고하다 보니 알뜰주유소는 경쟁에서 밀린다. 카드사 제휴가 적은 것도 단점으로 지적됐다. "카드사도 경쟁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알뜰주유소 확대 문제를 놓고서는 사업자들간 의견이 엇갈렸다. 가격을 비싸게 파는 등 알뜰주유소 이미지를 깍아먹는 곳을 찾아내 1000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힘을 키우기 위해 2000개까지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한편 현지에서 알뜰주유소 전환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전남지역 사업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주유소 인근에는 무풀주유소와 농협주유소가 있다. 가격차가 리터당 50원에 달해 경쟁 자체가 안되다보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초 폐업을 고려했지만 1억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추가로 들면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 부딪혔다. 하지만 그는 알뜰주유소 전환에는 주춤했다.

정유사와의 관계도 그렇지만, 정유사의 한 영업사원으로부터 다른 주유소가 알뜰주유소로 전환한 후 고전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직접 그 주유소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어 봤더니 도리어 "괜찮다"는 말이 돌아와 혼란이 더 커졌단다.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이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자리에 참석한 것도 뭔가 도움이 되는 얘기를 듣기 위해서다. 그는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의 말을 묵묵히 듣고 돌아갔다.

그가 현재 운영하는 폴 주유소를 알뜰주유소로 전환할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함께 모인 자리에서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이 웃으며 의견을 교환하는 틈에서 유독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대비되는 모습은 의미가 적지 않았다.

조만규 기자 chomk@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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