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수 박사 /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 자연환경보전연구소 소장

서정수 박사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자연환경보전연구소장
[이투뉴스 / 서정수 칼럼] 안녕하세요.
저는 4대강 사업이 진행되었던 한강 6공구 근처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던 수달입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여주군 상리에서 삼합리 사이. 지금의 강천보 부근이지요.
최근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의 실태를 파악한다는 떠들썩한 세상 소식에 놀라 먼저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먼저 저희 가족을 소개하자면 저와 딸자식 둘뿐입니다.
집사람은 4대강 사업이 시작되던 해 공사장 굉음소리에 놀라 신경쇠약증으로 투병중에 세상을 떠났고 막내 여식은 신생아 때라 영양실조로 앓다가 곧바로 엄마 뒤를 따라 떠났습니다.
그 흔하던 미유기 한 마리도 못 먹여 보냈던 부모의 한스러움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저의 집사람은 이곳에서 빼어난 미모 덕에 뭇 사내들의 흠모 대상이었습니다.
마누라 자랑은 팔불출에 속한다고 하지만 지금은 세상을 떠난지라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깔끔했던 성격 탓에 오염된 물고기는 쳐다보지도 않았고, 청미천 청정지역의 귀한 꾸구리를 즐겼던 미식가였답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지난 이야기지만 궁금해 하실 것 같아 당시의 상황을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물가의 집이 허물어지고, 흙탕물에 물속길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굉음소리, 밤낮 가리지 않고 움직이는 덩치 큰 기계들 소음에 누군들 살아남을 수 있었겠습니까?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지금은 집사람도, 이웃도, 꾸구리도 구경 못하고 살은 지 오래 되었답니다.
더욱이 이포보 근처에 살고 계시던 장인, 장모, 처남 등 처가 식구 소식은 아직껏 모르고 있어 자식된 도리도 못하고 사는 불효자입니다.
지금은 큰애와 둘이 강천습지 부근을 떠돌며 이산가족의 애환 속에 어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가족은 왜, 어느 날, 갑자기, 생과 사의 혼란 속에 빠져 버렸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하기사 물속에 살고 있는 미물이 무슨 세상사의 관심거리였겠습니까.

제가 원래 살았던 곳은 강천습지와 인근한 물속 돌무더기 속 보금자리였습니다.
얼마 전 옛 집터를 찾아보았더니 흔적조차 찾을 수 없도록 바뀌었습니다.
가까이에는 사람들의 삼겹살 파티 소리에 놀랐고, 자전거의 무리가 떼를 지어 지나가는 광경에 두 번 다시 가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느 기관에서 돈을 많이 들여 새로 지어 주었다는 집터도 들러 보았습니다. 고맙기는 하지만 그곳은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강변 둑에 길게 흄관을 박아 놓았더군요. 숨 쉴 수 있는 공간도, 아이를 품고 잘 공간도 아니고, 더욱이 뒤쪽으로 돌아다닐 퇴로도 없는 삭막한 환경이었습니다.
조금만 저희 입장을 이해하셨다면 생색내기가 아닌 진정한 이주대책이 있어야 했지 않을까요?
새삼스럽게 이것저것 따져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들은 모습을 감추었던 물고기들이 가끔 눈에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예전에 보았던 것들이 아니어서 그냥 먹기에는 조금 겁도 나는 실정이지만 어쩌겠습니까?

또 걱정스러운 일은 상비약으로 써왔던 물가 옆 층층둥굴레 뿌리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누군가 많이 훼손한 모양인데 새로운 분포지를 더 찾아볼 요량입니다.
간식거리로 요기하던 버드나무 뿌리 근처 지렁이도 자취를 감추었고, 여하간 새로운 보금자리 마련에 최선을 다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나마 목숨부지에 협조해 주신 인간 선생님들께 소식이나마 전하게 된 점을 다행으로 알겠습니다.
이제 겨우 자리잡아 보려 합니다.

인간 선생님들! 제발 부탁컨대 이대로 살아갈 수 있게 그냥 좀 나두시면 안 되겠습니까?
두번 다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아비규환, 이제 더는 겪을 능력이 없습니다.
부탁드리고 또 한번 부탁드립니다.
행여 처가식구 소식이라도 전해 들으면 다시 연락 올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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