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말 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다. 마디 하나 토씨 하나에 본뜻이 어긋나고 뒤틀린다.

 '주유기 88.5% 정량 미달', '기름값 바가지 막는다', '주유기 88%, 표시량보다 적게 주유', '나쁜 주유소 88.5% 주유량 속였다'

최근 기술표준원이 '주유기의 사용오차 개선과 조작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하자 쏟아진 각 매체들의 보도 제목들이다. 전국의 88.5% 주유소가 정량을 ‘속였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게 관련업계의 설명이다. 기표원은 국내 주유기의 법정 사용오차를 현행 ±0.75%에서 ±0.5%로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0.75%는 20ℓ기준 ±150㎖의 사용오차를 뜻한다. ±150㎖의 사용오차는 합법적 범위 내의 오차인 것이다.

하지만 기표원 발표가 나자 대부분 언론은 일제히 '전국의 88.5% 주유소가 주유량을 속였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기표원은 발표자료에서 "관련기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약 88.5%)의 주유기는 표시량보다 적은 양이 주유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오차 평균은 -43.97㎖"이라고 언급했다.

이 부분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표시량이 적은 양=주유량을 속인 양'의 도식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 이는 기표원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기표원은 국제법정계량기구(OIML)가 주유기 검정오차를 ±0.5%로 정하고, 사용오차는 검정오차의 2배 이내에서 국가별로 정해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개별국가가 검정오차(±0.5%)의 2배인 ±1.0% 이내에서 사용오차 허용 범위를 설정해 운영하도록 권장하는 것. 독일과 일본은 ±1.0%(±200㎖)를, 미국과 호주는 ±0.5%(±100㎖)로 규정·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간 0.75%(±150㎖)를 적용했다. 이번 발표에서 이 수치를 넘어선 주유소는 전체 1만 3000여개 중 단 2.6%에 불과했다. 88.5% 주유소 중 2.6%를 제외한 85.9%는 사용오차 내에서 주유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정확하게 사용오차를 0%로 정해 소비자의 편익을 돕지 않고, 0.5%니, 0.75%니 복잡하게 허용하는 이유는 기름이 물리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온도에 따라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기름은 온도에 따라 팽창하고 수축한다. 이 같은 본 성질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을 발표할 시 되레 시장에서 혼란을 낳게 된다.

이 같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나쁜 주유소 88.5%', '기름 바가지' 등의 선정적인 용어로 이를 접하는 소비자에게 왜곡된 인식을 심어준 셈이다.  "기존의 허용오차인 0.75%(±150㎖)도 크게 낮은 건 아니지만, 언론과 국회에서 허용오차를 줄여야 된다는 문제 제기로 이 개선안을 만들게 됐다"는 한 정부 관계자의 말도 새삼 실감된다. 이번 개선안 발표를 위해 실시된 조사에서 기존 허용오차 내(±150㎖)에서도 실제 오차 평균은 -43.97㎖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주유소사업자들의 단체인 주유소협회는 '정량미달', '속임수', '조작' 등 부정적 단어를 사용해 주유소 이미지를 실추시킨 언론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한다고 발표했다. 그대로 넘어가기에는 관련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너무 크다는 판단에서다.

언론은 여론을 반영하거나 선도하기도 하고, 때론 선동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것이다. 펜의 파급력은 관련산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계기다.

이윤애 기자 paver@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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