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당국, 경인지역 T/F팀 꾸려 대책 부심
전기 남아도 전력망 부실로 블랙아웃 우려

▲ 지난 6일 서울 삼성동 전력거래소 전력수급상황실을 불시 방문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이 남호기 전력거래소 이사장으로부터 현황을 보고 받고 있다. 사진 왼쪽은 조환익 한전 사장.

[이투뉴스] 초유의 전력난을 앞두고 설상가상으로 수도권 전력망이 절체절명의 위기다. 전체 전력사용량의 43%를 소비하고 있는 경인지역이 특히 위험하다. 일부 지역의 전력공급이 일순간 중단되는 '국지적 블랙아웃' 발생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내 인구의 절반이 몰려있는 이 지역의 광역정전은 사실상 국가재앙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전기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수급상황이 빠듯하기도 하지만 비상대책을 총동원하면 최악의 순환단전만은 피할 수도 있다. 수급난은 내년 이후 발전소 추가 증설로 해소될 전망이다. 그런데 당면한 수도권의 위기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예고없는 심장마비와 같다.

화약고는 경인지역이다. 전력수요는 많은데 전력자립도(지역내 발전량)는 낮고, 여기에 전기를 실어나를 전력망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 제때 정비를 받지 못해 피로도가 쌓인 특정 발전소가 멈춰서거나 계통에 송전제약이 걸리면 인접 지역 망까지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

태풍이나 낙뢰로 송전선에 일시적 장애가 발생해도 마찬가지다. 낙뢰로 인한 송전탑 지락사고(누전)는 가장 빈도가 높은 여름철 계통사고다. 여러 가닥의 고압 송전선중 한 개만 장애를 일으켜도 경인지역처럼 부하가 많이 걸리는 송전선은 문제가 크게 확산될 수 있다.

나머지 선로의 부하가 급증하면 계전기란 장비가 발전설비를 보호하기 위해 발전소를 강제로 세우기 때문이다. 실제 1000MW급 고리원전 2호기도 송전선에 걸린 비닐조각 하나로 멈춰선 사례가 있다. 과거에 설치돼 용량이 작고 노후된 차단기도 잠재적 시한폭탄이다.

발전소가 멀쩡해도, 전기가 남아 돌아도 정전이 날 수 있다는 얘기다. 수도권 전력망은 올여름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만일 수급난이 아닌 계통장애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한다면 이런 상황을 국민은 이해할 수 있을까?

전력망사업자(TO)인 한전과 계통운영자(SO)인 전력거래소의 한숨이 깊어가고 있다.

10일 전력당국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 전력거래소 등은 이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올초부터 경인지역 계통대책 태스크포스팀(T/F)을 가동하고 대책을 부심하고 있다. T/F는 일단 오는 11월까지 이 지역에 4대의 리엑터(고장전류 감소장비)를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는 단기대책의 하나일 뿐 수도권 전력계통이 안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다. 원론적인 해소책은 수요만큼의 발전력을 확보하고, 그에 걸맞은 전력망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 역시 발전소 증설이나 송전선 확충이 여의치 않다. 지역주민 민원을 해결해야 하고, 당장 건설에 나선다해도 최소 5~10년이 걸린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한전은 막대한 투자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현재 이 지역의 전력자립도는 23% 수준으로 대부분의 나머지 전력을 서해안 등에서 끌어다 쓰고 있지만 계통은 일찍이 과포화 상태다. 345kV 변전소는 만약에 대비해 차단기를 모선과 분리시켜 놨고, 일부 송전선은 전력계통과 분리돼 운영되고 있다. 최악의 경우 피해 규모를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여기에 광역정전에 대비해 임시방편으로 설치한 SPS(고장파급방지장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경기북부 지역에 신규 발전소가 들어서면 지금과 같은 심각한 상황은 어느 정도 완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언젠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당장 보강계획을 수립해도 1~2년내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어서 단기, 장기로 나눠 최적의 대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전력당국은 계통이 3개로 나뉜 미국처럼 지역별 계통을 임의 분리한 뒤 HVDC(초고압직류송전선)를 이용해 연계하는 방안을 중장기 대안의 하나로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막대한 투자비가 필요한데다 설비부지를 추가 확보해야 하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경인지역 전력계통은 송전망 확충없이 대규모 발전설비가 추가 건설된 이후 국내 전력망 전반이 봉착하게 될 미래란 점에서 우려를 더하고 있다. 송전탑 건설갈등이 촉발된 밀양의 경우도 지중화가 가능한 345kV 송전선으로는 막대한 원전전력을 감당하지 못해 접점을 좁히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의하면 신고리 3호기가 기존 345kV에 연결되면 4개 선로의 부하는 정상치를 크게 넘어서게 된다. 이중 1개 선로에 문제가 생기면 가뜩이나 높은 부하를 감당하고 있던 나머지 3개 선로가 이를 버티지 못하고 원전 7기를 멈춰 세우게 된다.

출입구가 4개인 스타디움에서 경기가 끝나 수만명의 관객이 서서히 분산 퇴장할 때 어느 한쪽 출입구가 폐쇄되면 나머지 3개의 출입구로 사람이 몰려 극도의 혼잡이 빚어지고 통제가 안될 경우 압사사고까지 발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수도권의 경우는 이외에도 과거에 설치된 저용량 차단기 적기대체가 이뤄지지 않아 변전소간 계통을 잘라 놓은 상태"라면서 "기존 차단기를 정격용량으로 교체하거나 리엑터를 설치하는 보완대책이 서둘러 강구돼야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모든 계통으로 파급되고 있는 송전망 문제는 결국 분산형 전원 구축(수요처-공급처 불일치 현상 해소)과 지역별 전기료 차등부과, 송전망 사전 확보 등으로 풀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력난은 내년 이후 걱정이 없지만 앞으론 송전망에서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고, 특히 수도권 송전망은 매우 취약하다"면서 "결국은 계속 늘어나는 수도권 수요를 잡아야 하며, 이는 수도권의 전기료 문제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발전소 입지와 전력수요와 연계시켜 발전소가 몰려 있는 곳으로 수도권의 산업입지를 분산시키고, 이를 위해 발전소 인근으로 가는 산업체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박종근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도 "수도권 부하 집중으로 과부하가 생겨 정전이 우려되는데, 이는 계통의 문제여서 전력난으로 인한 정전보다 대형정전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전원계획이 송·변전계획과 동시에 수립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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