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시한 다가오는데 초안작성 공전 되풀이
일부 비전문가 참여 논란…원전 현안은 논의도 안돼

신고리 3,4호기 건설현장
[이투뉴스] 최종시한을 불과 80여일 남겨놓은 2차 에너지기본계획 초안작성 작업이 공전하고 있다.

분야별 민·관 워킹그룹이 가동된 지 석달이 지났지만, 대다수 협의체가 쟁점현안은 커녕 논의 방향도 정하지 못하면서 '국가에너지 30년 대계(大計)'로 일컬어지는 기본계획이 시한에 쫓겨 졸속 수립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에너지기본계획 초안작성에 참여하고 있는 각계 전문위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늦어도 9월초까지 5개 워킹그룹(전력·원전·수요·신재생·총괄)이 도출한 결과를 토대로 기본계획의 골격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이어 10월부터는 각종 토론회와 공청회를 열어 추가 의견을 수렴하고, 연내 각종 위원회와 국무회의 등의 심의를 거쳐 본계획을 확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각 워킹그룹은 초안작성 기한의 절반가량이 흐른 현재까지 4~5차례 회의를 가졌을 뿐 쟁점현안에 대한 논의를 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전그룹의 한 위원은 "대표간 입장차가 워낙 크다보니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탐색전을 벌이는 수준"이라며 "이대로 가면 기한을 지키는 게 물리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전력그룹의 또 다른 위원도 "주제도 모호하고 결론도 없는 뜬구름 잡는 식의 회의가 반복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에너지믹스(전원비중)의 기초에 해당하는 원전의 방향이 결정되지 않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위원은 "원전처럼 예민한 사안이 얽혀있어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주어진 시간이 워낙 짧다보니 연내 계획을 확정하는 게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지적이 많다"고 토로했다.

"4~5차례 회의 갖고도 뜬구름 논의"
이처럼 논의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정부가 세부내용까지 확정한 뒤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는 모양새를 취했던 과거와 달리 초안단계부터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 참여를 보장하는 '수립단계 공론화' 방침의 영향이 크다.

실제 각 워킹그룹에는 2~3명의 시민·사회단체 대표가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나 정·관계 고위급이 지명·추천한 비전문가층이 다수 참여해 균등한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회의 때마다 중구난방식 논의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총괄그룹의 한 위원은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조차 못하는 위원들이 뜬금없는 돌출발언으로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며 "일부 위원은 차라리 시민단체 전문가 비중을 높이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라고 말했다.

전력·신재생·수요 부문의 원별 비중과 설정목표에 가장 큰 변수가 될 원자력 부문에서 이렇다할 방향성이 제시되지 않은 것도 나머지 그룹의 논의주제를 원론적 내용으로 한정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 진영의 한 위원은 "원전을 얼마나 가져갈 지 가늠이 돼야 신재생이나 수요관리 목표를 정하고 구체적인 방법론도 결정할 수 있지 않겠냐"면서 "(원전비중이 나와도)에너지안보나 온실가스 문제까지 고려해야 하는데 이대로 가면 막판에 허겁지겁 꿰맞추는 그림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원전비중 가늠안돼 나머지 그룹도 공전
마음이 조급하기는 다른 워킹그룹의 눈총을 받고 있는 원전분과도 마찬가지다. 원전그룹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 및 한국수력원자력 진영 위원들은 제외한 위원들은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할 때 1차 기본계획이 정한 비중(설비기준 41%) 축소가 불가피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질 공산이 크다. 2차 기본계획내 수명이 종료되는 원전의 계속운전 허용여부와 신규원전 건설물량에 대해선 의견이 첨예한 의견대립이 불가피해 보인다. 현재 가동되고 있는 국내 원전 23기중 6차 전원계획 기간(2027년)내에 설계수명이 끝나 폐로(廢爐)나 계속운전 후보가 될 원전은 무려 10기, 8066MW에 달한다. 2023년부터 매년 1~2기의 원전이 존폐기로에 놓이는 셈이다.

<본지 3월 11일자 '원전 4기중 1기 2027년 이전 수명 끝난다' 기사 참조>

여기에 6차 전원계획에서 결정을 유보한 삼척·영덕 원전 4기(600만kW) 추가 건설 여부와 10년간 수명을 늘린다해도 2035년 이전에 다시 운영허가가 종료되는 고리·월성 일부 원전의 폐로여부는 이번 기본계획의 최대 쟁점이자 에너지믹스의 핵심변수다.

원전그룹의 한 위원은 "정부를 포함한 원자력계와 시민단체간 입장이 워낙 달라 절충안이 나올지는 난망하다. 각 사안마다 지리한 신경전을 벌이다 어느 한쪽이 막판에 결렬을 선언하는 상황도 충분히 예측가능한 그림"이라고 내다봤다.

이 위원은 "수명이 다한 원전은 어찌할지, 6차 계획에서 결정못한 신규원전 건설은 어떡할지, 앞으로 수명이 끝나는 또 어떡할지에 따라 풍선효과처럼 나머지 전원비중과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결정될 것"이라면서 "아쉬운 점은 이같은 현안이 기술적 논의단계를 벗어나 정치쟁점화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뒤늦게 공론화 개념이 도입된 것은 바람직하지만 아직 체계적인 정책 결정 시스템과 이를 위한 심도있는 분석작업이 부재한 것은 향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창호 전기연구원 전력산업센터장은 "지금 우리 에너지정책은 전인미답의 길을 가고 있고, 모래밭 위에 집을 짓고 있는 형국"이라면서 "지금이라도 체계적인 정책 논의구조를 만들고, 충분한 분석작업에 기초한 컨센서스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이투뉴스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빠르고 알찬 에너지·경제·자원·환경 뉴스>

<ⓒ모바일 이투뉴스 - 실시간·인기·포토뉴스 제공 m.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