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신부전 환자 김영칠씨 가족(음지편)

가난한 이들이 더 비싼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얘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선 추위를 막아 줄 집이 허술하고 도시가스 등이 보급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비싼 등유나 궁여지책으로 LP가스를 쓰기 때문이다.

소득양극화는 필연적으로 에너지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가난한 이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빠듯한 가계부담은 그만큼 더 늘어난다. 그러나 일정수준 이상의 주거환경이 마련된 가구는 그 반대다.

비교적 저렴한 도시가스의 혜택을 받는데다 단열도 확실해 같은 평수라도 오히려 난방비가 적게 든다. 본보는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에 2부작 르포를 통해 에너지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현장을 들여다봤다.

이에 1부 '음지편'에선 가장이 만성신부전을 앓고 있는 한 무허가주택을 찾아 가난한 겨울나기의 고단함을 엿보았다. 또 2부 '양지편'에선 겨울과 무관한 강남부촌의 생활을 통해 에너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단면을 들여다봤다.    

 

"우리 같은 사람이 뭐 바랄 게 있겠어요. 어서 겨울이나 지났으면 좋겠네요."

 

지난 13일 오후 7시 서울 영등포구 당산 4가의 한 주택가. 어른 양 어깨가 닿을 듯한 비좁은 골목을 몇 번이나 굽이쳐 들어가서야  김영칠(45)씨와 그의 세 식구가 겨울을 나고 있는 세평 남짓한 공간에 닿을 수 있었다.

 

골목에서 바로 이어진 김씨 가정의 보금자리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가재도구와 라면 따위의 식료품, 옷가지 등이 뒤엉켜 제대로 발딛을 곳을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허술하게 지어진 가건물 틈새로 냉풍이 스며들어 집 안팎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고층아파트로 둘러싸인 영등포구 어디쯤 이런 곳이 있을까 싶지만 당산 4가 77번지 일대로 불리는 이곳은 20년이 넘도록 재개발의 광풍을 피해 '섬'처럼 그들을 껴안고 있었다. 현재 김씨처럼 생활보호대상자나 독거노인, 저소득층 10여 가구가 낮은 지붕을 맞대고 살고 있다.

 

그러나 절반 이상은 무허가 가구다. 올해로 10년째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김씨는 일당벌이에 나선 아내 이정화(42)씨와 중학교를 마치고 무료학원에 다니고 있는 아들 현우(14ㆍ가명)군이 귀가할 시간이 다가오자 꺼두다시피 했던 보일러 온도를 슬쩍 올렸다.

 

그는 "날이 작년보다 따뜻해 틀지 않고 있었다"고 했지만 방안엔 이미 싸늘한 냉기가 돌고 있었다. 미닫이 문으로 분리돼 사실상 한 방이나 다름없는 건넛방에선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딸 은혜(15ㆍ가명)양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문제지를 풀고 있었다.

 

아빠가 빨리 낫는 게 가장 큰 소원이라는 딸 은혜양은 냉방이 익숙해 져서일까 "별로 추운 줄 모르겠다"고 웃어보였다. 하지만 또래 아이들에게서 흔히 목격되는 천진난만함은 고단한 가정사의 그늘에 가려 찾아보기 힘들었다. 은혜는 "아빠가 많이 편찮으셔서 입원해 계실 때가 가장 맘이 아프다"며 "커서 선생님이 되는 게 지금은 꿈"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3년전부터 병세가 악화돼 일주일에 세 번 직접 투석치료를 받아야 하는 김씨는 아내가 벌어오는 월 50만~60만원의 수입과 정부보조금 50여만원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허가가 나지 않은 주택이라 도시가스도 쓸 수 없다 보니 난방은 LPG가스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

 

한 달에 약 15만원 정도를 난방비로 쓴다고 했다. 하지만 "한참 추울 땐 2만7000원짜리 한 통으로 닷새도 못 버틴다"고 했다. 김씨 가정의 지난한 겨울나기는 그리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나마 김씨는 2만원 남짓 청구되는 전기료에서 20%의 복지할인혜택을 받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김씨도 요즘 걱정이 새로 생겼다고 했다. 지병을 앓는 자신이야 상관없지만 "천식에 비염까지 앓고 있는 현우가 걱정된다"고 했다. 맘 착하고 성실해서 반에서 항상 5등 안에 든다는 현우군은 비염으로 콧물을 달고 사는 데다 찬바람에 약한 천식까지 앓고 있어 부모 마음을 저미게 한다고 했다.

 

김씨는 "다른 애들처럼 해주지 못해 한없이 미안한 생각뿐"이라면서 "신장병은 암보다 완치가 힘든 병이고 쉽게 사람을 지치게 해 택시운전도 하지 못한다"고 신세를 한탄했다. "우리만 어려운 것도 아닐 텐데 유난을 떨었나보다"며 말끝을 흐리는 김씨는 "어서 겨울이 가고 돈(난방비) 걱정없는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건넛방에서 아빠의 목소리를 엿듣고 있던 은혜는 가끔 콧물을 훌쩍였고 기자가 떠나올 때까지 일터로 나간 김씨의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양극화 문제는?>

 

지난 2일 이수정 서울시의회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0만원 이하 저소득층 가구가 사용하는 난방용 에너지는 500만원 이상 가구의 91%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들 가구가 난방에 지출하는 비용은 연간 80만원으로, 500만원 이상 가구의 62만원을 초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저소득층의 경우 상대적으로 비싼 등유나 LP가스를 사용하면서 고소득층보다 난방비가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석유협회가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대도시 가구의 월 평균 난방비는 10만83원인 반면 등유를 사용하는 가구는 이보다 두 배가 넘는 22만3500원으로 조사됐다.

 

LP가스를 사용해 요즘도 월 15만원 정도의 난방비를 지출한다는 김씨네 가정 역시 일반 가구의 난방비를 추월하고 있는데 '가난하면 난방비가 더 든다'는 주장은 그대로 증명된 셈이다.

 

이수정 서울시의회 의원은 전화 인터뷰에서 "서울시의 경우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월동대책비 5만원이 동절기에 지급되고 있지만 실제 난방비로 사용된다고 보기 어렵고 금액도 적다"면서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면 전기와 가스처럼 수도광열비에 준하는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전기사업법 48조에 따라 마련된 전력산업기반기금도 적절히 활용하면 극빈층에 에너지를 무상 공급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서 "연간 840억이면 빈곤층 137만 가구에 에너지를 무상 공급할 수 있다는 통계자료가 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