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원자력號, 연착륙이 필요한 이유
[기자수첩] 원자력號, 연착륙이 필요한 이유
  • 이상복 기자
  • 승인 2013.07.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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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뉴스] 원자력발전소의 심장 속을 직접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경주시 동해바다와 접한 신월성 2호기였다. 이 원전은 2조5000억원을 들여 올초 공사를 끝내고도 위조부품 사태로 아직 사용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규제당국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다.

돔 구조의 원자로 내부는 원전 근무자들도 접근이 제한된 곳이다. 연료를 교체하는 계획예방정비 기간에도 최소 인력만 투입돼 작업을 벌인다. 방사능 위험과 보안 때문이다. 사전 출입신고와 두 차례의 추가검문을 받은 후에야 원자로 내부와 이어진 유일한 통문(通門)에 다다랐다.

은행금고보다 두꺼운 이 출입구는 안팎중 항상 한쪽이 닫히도록 설계된 겹문이다. 사실상 외부와 상시 단절돼 있다. 이곳 중앙에 자리한 우물 모양의 원자로 하부는 검은 장막으로 봉인돼 있었다. 여기에 우라늄 연료봉이 투입되면 약 1년 6개월간 서서히 핵분열을 일으키며 인구 60만명 규모의 중소도시가 사용가능한 전력이 생산된다.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실정에서 원자력은 여전히 요술방망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금단의 구역을 접근하는 것도 어렵지만 빠져나오는 것은 더 까다롭다는 사실이다. 2,3중의 첨단 방사능 검출장비를 무사 통과해야 바깥 세상으로의 환속(還俗)이 허용된다. 작업자 개인의 방사능 안전 여부가 확인돼야 감옥 창살보다 촘촘한 바리케이트가 잠깐 열렸다 닫힌다. 만일의 피폭 사고 확산을 막기위한 조치다.

장소를 옮겨 비행기의 조종실에 해당하는 중앙제어실을 둘러봤다. 수천개의 디지털 계기판이 사방을 빽빽히 애워싸고 있다. 이곳 운전원들은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24시간 제어실을 지킨다. 수만개의 센서중 하나라도 이상신호를 감지하면 즉각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시간이 지체되면 원전은 스스로 멈춰선다.

문득 궁금증이 동했다. 원자로 지근거리에 근무하는 이들을 위한 별도의 피난구역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국제 항해에 나서는 선박도 해적 공격에 대비해 안에서 걸어 잠그는 선원 대비처가 있고, 대당 수천억원짜리 전투기도 추락에 대비한 사출좌석(Ejection Seat)과 낙하산이 있다.

그러나 거대 원전 내부엔 어디에도 이런 피난처는 없다고 한다. 목숨을 걸고 일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만큼 원전 안전에 대한 현장 종사자들의 믿음이 굳건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물론 원전은 사고확률을 '0'으로 낮출 순 없다. 반복된 인적실수(휴먼에러)와 연쇄 설비결함은 가정가능한 최악의 사고 시나리오다.

가까이서 지켜본 원전은 여러모로 항공기 운항과 유사한 면이 많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첨단설비로 자동운전이 가능하고, 비행기가 이륙 직후나 착륙 직전 가장 위험하듯 원전도 정지 상태에서 출력을 100%로 높이기까지와 정지운전이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라고 한다. 확률은 낮지만 한번 사고가 터지면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고, 그래서 고도로 숙련된 조종사(운전원)를 필요로하는 것도 닮았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일을 맡은 원전 운전원들의 사기가 요즘 말이 아니란다. 줄줄이 터져나오는 낯뜨거운 비리와 원전 산업을 바라보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에 적잖은 심적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한국수력원자력 보도를 접한 자녀가 "아빠가 저런 일을 하는거냐"고 물어 자괴감을 느꼈다는 직원도 있다.

최근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특히 운전하시는 분들이 걱정인데, 과거 비리 때문에 현재의 안전을 해칠까 걱정"이라고 말한 배경도 이런 맥락이다. 지금 원자력은 고도를 한껏 높인 상태로 운항중인 비행기다. 기내는 지상에서 벌어진 뜻밖의 사건으로 술렁이고 있다. 국민의 목숨을 책임진 조종사들의 불안은 안전운항을 크게 저해한다. 어떤 결론이 내려지든 원자력號의 연착륙을 유도해야 하는 이유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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