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 국가간의 관계가 에너지 문제로 삐걱거리고 있다.

 

벨로루시와 그루지야에 천연가스를 공급해온 러시아는 이들 국가가 연말까지 2007년 가스값 인상안에 합의하지 않으면 가스공급을 중단할 태세라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14일 보도했다.

 

러시아와 혈맹 관계인 벨로루시는 현재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1000㎥당 46.67달러에 공급받으면서 시장가격 구입과 비교했을 때 30억달러가 넘는 돈을 저축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를 4배가 넘는 200달러로 올릴 것을 요구 중이다.

 

독일과 폴란드로 공급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20%가 벨로루시를 통과하기 때문에 러시아-벨로루시의 에너지 대립이 심해져 공급중단으로까지 비화하면 파장은 유럽에까지 미치게 돼 있다.

 

작년 1월 러시아 국영가스회사인 가즈프롬이 우크라이나의 가스값 인상안 거부에 대(對) 우크라이나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면서 빚어진 유럽 일부의 ‘천연가스 대란’이 재연되는 것이다.

 

가즈프롬 회장이자 러시아 제1부총리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현재까지는 “(협상이) 쉽지는 않다. 긴장이 높아지는걸 원치 않는다”며 직접적인 언급을 비켜갔고, 세르게이 쿠프리아노프 대변인도 공급중단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그런 사태를 보는 게 싫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가즈프롬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스값 인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러시아 정부는 현재 1t당 180.70달러로 면세혜택을 줘온 벨로루시에 대한 원유수출에 내년부터 수출세를 부과하겠다고 이번 주 밝혔다.

 

벨로루시는 러시아로부터 면세 원유를 수입, 2곳의 정제소에서 처리한 뒤 서유럽에 시장가격으로 석유 제품을 판매함으로써 상당한 수익을 올려왔다. 수출세가 부과된다면 벨로루시는 매년 17억달러의 예산 손실을 입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서방으로부터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올해 초 3선에 성공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로루시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는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크렘린의 ‘루카셴코 때리기’는 징벌 차원에서 해석되고 있다. 단일통화를 도입하고 벨로루시 국영 ‘벨트란스가즈’의 지분 50%를 가즈프롬에 넘기겠다는 등 러시아와의 사회·경제적 통합약속을 열심히 이행하지 않는데 따른 ‘벌주기’라는 해석이다.

 

가즈프롬은 벨트란스가즈로부터 50%가 넘는 지분을 넘겨받아 통합회사를 설립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매매가격이 맞지 않아 협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또 일부에서는 러시아가 과거 우크라이나나 아르메니아에 원했던 것을 벨로루시에도 원하고 있다는 풀이도 나온다.

 

쿠프리아노프 가즈프롬 대변인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아르메니아가 자국 가스공급망에 대한 관리권을 양보하는 대가로 오는 2008년말까지 가스값을 1000㎥당 110달러로 고정시켰다는 ‘패키지 계약’의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나 벨로루시의 한 분석가는 <AFP>통신을 통해, 자국 정부가 ‘러시아와의 마지막 협상카드’라는 서유럽행 가스 수송관을 포함, 국내 가스관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벨로루시와는 달리 친(親)서방 노선을 밟고 있는 그루지야에 대한 러시아의 에너지 압박은 정치적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그루지야 정부는 1000㎥당 가스값을 현재의 110달러에서 2배가 넘는 230달러로 올려받겠다는 러시아의 요구를 ‘경제적 차원이 너머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루지야가 러시아 대신 이웃한 아제르바이잔과 이란산 가스를 수입하는 대안을 거론하자, 러시아는 아제르바이잔에 대해서도 230달러로 가스값을 인상하면서 내년 수출물량까지 줄일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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