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액계약제 도입안 놓고 진영간 전면전
한전 댐 출연금 보전 제안에 협상 새국면

[이투뉴스] 한전은 밑지는 장사를 하는 사업자다. 100원어치 전기를 팔면 적게는 6.5원(일반용)에서 많게는 14.7원(산업용)을 손해본다(2008~2011년 원가회수율 기준). 그러나 사실상의 요금 결정권을 쥔 정부는 이런 저간의 사정을 잘 알면서도 전기료 인상 얘기만 나오면 안색이 변한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입을 닫고, 나라 장부를 쓰는 기획재정부는 아예 등을 돌린다. 포퓰리즘에 눈 먼 정치가 이들 뒤에서 후견인처럼 행세하고 있어서다.

이렇게 쌓인 한전의 누적적자가 최근 수년간 8조원. 하루 이자만 60억원씩 나간다. 자회사들의 부채까지 따지면 전력그룹사 전체 빚 규모는 95조원을 헤아린다. 공기업 부채는 결국 국민 몫이다. 그런 맥락에 전기료에 족쇄를 채운 정부와 정치의 책임은 무겁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에너지 가격체계가 산업 전반에 끼치는 악영향이다. 값싼 2차 에너지는 끊임없이 에너지산업 전반을 왜곡시킨다. 화석에너지로 만든 전기가 석유·가스를 대신하고, 신재생에너지 투자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수요는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공급을 넘어서고 있다.

여기에 경쟁체제를 표방한 전력시장 역시 이같은 비정상적 구조속에 혼란을 겪고 있다. 궁지에 몰린 한전의 도매상(발전사업자) 압박으로 연일 시비가 붙고 있다. 민자발전 특혜논란, 발전사 조정계수 도입 등도 좌표를 잃은 전력산업 구조개편과 이런 혼돈 속에 불거진 문제들이다.

에너지가격 현실화는 그만큼 위중하고 시급한 사안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전과 수자원공사(K-water)는 수력발전 전력 도매가 조정안을 놓고 사활을 건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내 대표 공기업간의 대결은 산업부-국토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국토교통위 간 대첩으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 정부승인 차액계약제로 갈등 발화
발전업계에 따르면 양측의 이번 갈등은 정부승인 차액계약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김한표 의원 대표발의) 추진 과정에 발화됐다. 전력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수공의 수력전력도 한전과의 사전계약에 의해 거래되도록 하는 내용이 발단이 됐다.

명분은 전기료 인상억제와 이미 할인율을 적용받고 있는 다른 전원과의 형평성이다. 한전은 2011년 이후 세차례나 이 문제를 제기했었다. 하지만 수공의 저항은 예상보다 완강했다. 전력매입 단가를 낮추면 그만큼 수공의 수익은 감소한다. 4대강 개발 등으로 가뜩이나 재무건전성이 취약해진 상태라 거부감은 더했다.

한전이 추정한 수공의 발전부문 매출액은 작년 기준 4840억원. 수도사업과 용수판매에 이어 수공의 주요 수익창출원이다. 더욱이 수력발전은 연료비가 들지않아 수공에 높은 영업이익률(한전추정 76%)을 안겨줬다. 한전의 명분과 논리를 무력화할 대의명분이 필요했다.

이때 수공이 꺼낸 카드가 바로 댐주변지역 지원금이다. 현행 댐건설및댐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수공은 전전년도 발전부문 매출액의 6%를 댐 소재지에 출연해야 한다. 한해 200억원 안팎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자체들에 할당될 지원금 규모도 줄 수밖에 없다. 수공은 이점을 댐주변지역과 국회 해당 지역구 의원에 어필했다.

방어전략은 주효했다. 지자체 출연금이 크게 준다고 하자 댐 주변지역 시·군·구가 벌집을 건드린듯 들끓었다. 그렇잖아도 이들은 평소 주변지역 범위 확대와 항구적 출연금 할당 보장을 요구해 왔다. 연대를 형성한 지자체들은 국회 상임위와 산업부에 철회를 요구하는 연판장을 냈다.

한전 입장에선 졸지에 이해관계자가 수공 한곳에서 수십개 지자체로 불어났다. 특히 자신의 지역구에 이 문제가 걸린 일부 의원들은 산업위 동료의원들을 개별 접촉하며 여·야를 넘나드는 설득작업을 벌였다. 최근 법안소위까지 오른 개정안이 9부 능선에서 보강·검토안으로 미끄러진 배경이다.

앞서 허태수 국토교통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법안 검토보고서에서 "전기사업법 시행령안을 적용할 경우 2014년부터 수공의 발전매출이 1955억원으로 감소하게 되고, 이에 따라 2016년 출연금은 2015년 대비 51% 감소한 117억원이 된다"며 차액제 적용대상에서 수력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지자체 동원 수공 방어전략에 수세
국토위 진영의 완강한 저항에 산업위와 한전은 일단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한전은 전열을 가다듬었다. 수력전력 도매가 조정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점령해야 할 고지와 같았다. 만약 여기서 물러서면 이미 정산조정계수 적용이 결정된 부생가스와 민자석탄 규제 명분이 사라진다.

한전 전력구입처 관계자는 "민간사 수익규제에 대한 법적 근거를 완비하지 않을 경우 전력산업 정책에 대한 국민 불신이 확대될 수 있고, 특히 일부 발전기가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면 초과이윤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과 같아 법률 개정효과는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특히 이 사안의 전술상 의미는 남다르다. 앞서 물가당국은 전기료 현실화를 요구하는 한전에 "(도매가 인하 등)원가절감 노력부터 보이라"며 번번히 퇴짜를 놨다. 한전이 시장내 수익규제에 목을 매는 이유다. 또 수력전력 수익규제는 다음 목표인 저원가 민자발전 규제의 명분 확보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이런 절박감 속에 한전은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다. 수공의 퇴로를 열어주는 역제안이 그것이다. 한전 측은 정부승인 차액계약제 세부안에 "차액계약 체결로 댐주변지역 출연금이 감소할 경우 전력구매자(한전)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감소한 출연금을 보전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을 넣자고 제안했다. 작은 것을 포기하고 큰 것을 얻는 이른바 '사소취대(捨小取大)' 전략이다.

이와 관련 산업부와 한전은 ▶수력발전 차액계약 체결 시 출연금 감소분만큼을 정산가에서 감해주거나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매출액 기준인 현행 출연금 산출방식을 용량 및 판매량 기준으로 변경하자는 복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하면 발전량에 따라 둘쭉날쭉하던 출연금 규모도 안정적으로 확보된다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 한전이 출연금 보전 '역제안' 새 국면
정공법을 택한 이같은 제안으로 수력발전 수익규제를 둘러싼 양측의 교착상태는 현재 새국면을 맞고 있다. 산업부는 "우리도 양보할만큼 양보했다"며 국토부 측의 제안 수용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거부 명분이 약화된 국토부는 수공과 구체적인 협상안을 논의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수력발전의 초과이윤을 어느수준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선 양측의 이견이 감지된다. 한전 관계자는 "SMP(전력시장계통한계가격) 제도로 인한 최대 수혜자는 연료비가 '0원'인 수공으로, 영업이익률은 76%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2000억원에 이르는 초과이익을 일부 조정해도 수공의 재무구조가 심각하게 악화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반면 수공은 한전이 자사 영업이익을 과도하고 높게 보고 있다는 반응이다. 수공 관계자는 "작년은 강수량이 이례적으로 많아 매출이 크게 잡혔을 뿐 2009년처럼 가뭄이 극심했을 때는 매출이 1600억원까지도 떨어졌다"며 "다년간 평균치로 본다면 한전이 가져갈 조정수익은 1000억원도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8개댐은 현장인력을 100여명 가량 줄여 원격무인운영하고 있고 있는데, 이런 자구노력으로 인한 순익 제고분은 어떻게 감안해 줄 셈이냐"고 반문하면서 "민자발전은 내버려두고 공기업 수익을 왼쪽 주머니에서 빼서 오른쪽 주머니로 넣는 게 국민편익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의문"이라고 비난했다.

피크시간대 발전을 통해 전력수급에 기여한 수력발전의 공(功)을 경시하고 있다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수공의 한 관계자는 "다목적댐은 하루평균 7시간씩 피크시간에 가동되고 있는데, 작년 에너지경제연구원 용역결과 이에 따른 계통기여 효과는 연간 4800억원에 달한다"면서 "우리도 어느 정도는 양보하려 하지만 수력발전의 가치 폄훼와 근거없이 무리한 규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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