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너지면 광업업계가 무너진다는 생각으로 일했죠"

광해방지법 초안부터 공단 발족·운영까지 30년 자부심
퇴임 후에도 대학교수로 실무중심 강의 통해 후학 양성


[이투뉴스] 권현호 광해관리공단 광해사업본부장은 산업통상자원부(옛 산자부) 사무관이었다. 1983년 관에 발을 들여놓은 후 자원정책실에서 대부분의 재직기간을 보냈다.

그의 "내가 일선에서 무너지면 광업업계가 무너진다는 압박을 받았다"라는 말처럼 광업계를 위한 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게 주변의 평이다.

1989년 지방자치제로 바뀌며 광업계가 미운 오리새끼가 되자, 광해방지법을 만들어 중앙정부의 품으로 가져왔다. 지자체가 광업은 세수 측면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데다, 환경오염도 심하다고 인허가를 꺼렸기 때문이다.   

광해방지법은 1989년 석탄합리화사업 초기부터 법안 마련을 시작해 2005년 의원입법으로 국회를 통과, 2006년 광해관리공단 설립 기반이 됐다.

"광해방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 공단 발족 후 현판식을 할 때 온몸에 전기가 짜르르 흐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운명처럼 공단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첫 출근 때는 공단 전체가 내 세상 같고, 집에서도 내내 공단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권현호 본부장이 공단을 설립한 지 7년 만에 이제 공단을 떠난다. 그가 밝힌 퇴임의 변은 이렇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나에게서 더는 나올 게 없다고 봅니다. 난 386메모리죠. 이제 586메모리로 만드는 것은 후배들의 과제입니다"

공단은 지난해 몽골, 칠레, 말레이시아 등 25개국에 진출했으며 추진실적도 15억6000만원을 달성했다. 광해방지 기술 개발 6년 만에 선진국 수준의 기술력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이제 성장궤도에 오른 공단을 나서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광해관리공단 본부장실에서 마지막 업무를 보고 있던 그를 만났다. 그는 "공무원 23년, 공단에서 6년 10개월 어깨에 짊어지고 온 짐이 너무 무거웠다"며 "이제 좀 홀가분하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공단을 떠나는 마음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만.
- 책임감에서 해방된다는 홀가분함이 큽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그런지 서운함도 없어요. 최선을 다했습니다. 목표로 하던 바를 110% 이뤘다 생각합니다.  

▲공단이 한참 성장과정에 있는 데 이 시점에 그만둘 결심을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주위에서 연임하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기업과 사업은 계속 발전하지만 인물은 한순간에 정지됩니다. 이만큼 이뤄놓은 상태에서 매너리즘에 빠지기 전 그만두는 게 낫다는 판단이죠. 내가 지금 떠나야 후임이 또 다른 성장을 이룰 것이라 생각됩니다.

▲공단이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했지만 고비도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공단은 정부사업 위탁기관입니다. 위탁사업 외에는 할 수 없다는 걸 뜻하죠. 공단이 연구소를 설립하고, 해외사업에 진출할 때 중앙부처의 반대가 많았습니다. 자존심을 접었죠. 당시 박순기 지식경제부 석탄산업과장을 초대해 설명과 설득작업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획재정부가 허용을 안 해주는거에요.

그래서 사람만 주면 억만금을 벌어오겠다. 일본은 연구인원이 60명인데 우리 9명으로 어떻게 이기냐며 끝없이 설득했죠. 차츰 인력을 늘리고,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이젠 공단 직원수가 200명을 넘기고, 연구소도 20명이 넘었습니다. 신생 기업은 무엇을 하던 절차와 방법을 몰라 한참을 헤맵니다. 또 앞에 나설 사람도 없었죠.

▲공단을 설립하며 목표했던 바가 무엇이며, 현재까지 어느 정도 이뤘다고 생각하시는지.
-광산이 지속가능한 개발을 하는 방법이 광해방지와 환경개선입니다. 광업자들이 친환경 개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지방정부가 할 수 없는 국가산업 인력의 안정적 공급, 광해로 인한 환경문제를 개선하는 것, 이 모든 건 정부가 총체적 책임을 줘야하는 부분입니다.


공단을 세우며 산업부에 광해방지와 환경개선을 20년 만에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026년 사업 마무리가 목표였죠. 하지만 7년만에 40%를  달성했습니다. 일본은 1964년 시작해 2004년 마무리하기 까지 40년이 걸렸죠. 공단 발족 7년 만에 기술수준은 선진국의 80%까지 올랐고, 5대 핵심기술은 동등합니다. 기술성장은 사업 효율이 오르는 것을 뜻하고, 사업비가 그만큼 절감된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우리 광해관리공단은 국제적으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공단에 있으며 잘한 일과 아쉬운 일은 무엇인지.
-해외사업을 시작한 일입니다. 해외자원개발 기업을 기술적으로 지원해줄 수도 있죠. 공단은 현재 LG상사와 광물공사가 개발 중인 필리핀 라푸라푸 동광산 컨설팅을 하고 있습니다. 200개 이상의 해외사업에 기술지원을 했습니다. 우리 공단이 컨설팅을 하면서 한국은 친환경적 광산개발을 하는 국가라는 인정을 받게 됐죠. 특히 동남아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국가기술자격검증도 가져왔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기술인력을 직접 키워 해외사업을 함으로써 공단에도 활기가 돌게 됐죠.
다만 아쉬운 점은 국내 광업관련 기업들이 재정적으로 약해 공단이 기대하는 만큼의 성장이 이뤄지지 않은 점입니다. 해외 사업에 국산 제품을 사용하면 좋은 데 그만큼 받춰 주지 않는 것도 그렇고요.

▲후배들이 공단을 어떻게 이끌어 가길 바라는지. 
-자신감을 가지고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모험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또 절대 자신 하나의 생각만으로 모든 걸 이루겠다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직원 개인은 각각 똑똑한 데 협업에는 익숙지 않습니다. 머리를 맞대야 시너지 효과가 납니다. 직원들에게 강조해온 말인데 엘리베이터가 아닌 에스컬레이터 성장을 해야 합니다. 함께, 꾸준히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죠.      

▲퇴임 후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신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강의 중인 한양대 겸임교수 외에 추가로 강원대에 초빙교수로 출강합니다. ‘광해방지공학’과 국내 유일한 강의인 ‘개발공학’을 가르칩니다. 국내 강의가 대부분 이론 중심인데, 실무 중심의 교과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 광업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을 신입생 때부터 적극적으로 이끌어, 국내 광업의 주역으로 키울 것입니다.

▲인생의 최종 목표가 있을 듯 합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삶입니다. 내 목표는 다 이뤘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5년 단위로 계획을 수립해 하나씩 이뤄왔습니다. 기간 내 완성을 못하면 한두해 연장됐고요. 20년을 공무원으로 봉직하겠다는 목표는 23년, 5년 내 마무리하겠다는 공단 일은 7년이 걸렸습니다. 교단은 앞으로 3년 머물 생각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이 됐다. 함께한 식사 시간 내내 광해관리본부 직원들과 권 본부장은 "실감이 안 난다"는 말을 주고받는다. 한 직원의 "다들 눈물 쏙 빠지게 혼났지만 다 직원들을 위한 일이라 생각합니다"라는 말에 서운함이 가득 배어 있다.

권 본부장의 퇴임을 아주 기뻐하는 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아내다. 30년 가까이 광업이 모든 일의 최우선이던 그는 두 차례나 암과 싸웠다. 건강을 걱정하는 아내는 이제라도 편안히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내와 매일 좋은 곳에 가고, 맛있는 것도 먹을겁니다"라는 권 본부장의 말에 이제야 무거운 책무를 벗고, 편안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윤애 기자 paver@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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