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서구 열강, 경쟁적으로 환심사기에 나서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더욱 폭넓은 다자간 참여와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올루세군 오바산조 나이지리아 대통령이 지난 11월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 열린 첫 아프리카-남미 정상회의에서 강조한 말이다. 아프리카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더욱 큰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륙인 아프리카가 내전과 질병의 질곡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막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하려 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회의에서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세계 천연자원의 80%가 아프리카와 남미에 있다며 양 대륙은 이를 통해 더욱 많은 것을 확보해야 한다고 역설, 자원을 무기로 국제사회에서의 목소리를 더욱 높여 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2006년 지구촌 사회의 한 특징은 빈곤과 분쟁의 대명사인 아프리카 대륙이 자원과 에너지부국으로 등장하면서 중국과 서구 열강이 경쟁적으로 ‘아프리카 환심사기’에 나섰다는 점이다.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지난 4월 모로코, 나이지리아, 케냐 등 3개국을 방문했는가 하면 6월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남아공, 앙골라, 탄자니아, 가나 및 이집등 등 7개 국가를 순방하면서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했다.

중국은 이후 11월엔 아프리카 53개국 가운데 무려 48개국 정상을 베이징에 불러들여 정상회의를 개최, 아프리카를 상대로 한 서유럽과의 외교경쟁에서 강타를 날리기도 했다.

중국은 정상회의에서 아프리카와의 전략적 동반관계를 선언하며 ▲3년내 30억달러 우대차관 제공 ▲50억달러에 이르는 중-아프리카발전기금 조성 ▲아프리카 국가의 대(對)중국 무관세 품목 확대 ▲아프리카 인재 1만5000명 중국 연수 등의 대대적인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중국의 이같은 움직임은 물론 세계 최대 인구를 지닌 이 나라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자원과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국가 전략 때문.

 

이런 가운데 유럽연합(EU)은 베이징 정상회의 1주일 후에 16개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을 벨기에 브뤼셀에 초청, 관계 증진에 나서기도 했다. 기 베르호프슈타트 벨기에 총리는 이 모임에서 중국을 의식 “EU와 아프리카 사이에 전략적 동반관계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피력했으며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도 “우리는 파트너이자 이웃으로서 서로 협력을 시작하고 있으며 새로운 전략적 협력 속에 우리의 미래가 놓여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EU는 아프리카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 곳은 여전히 유럽임을 강조하고 있다. EU 지도자들은 지난해 오는 2010년까지 아프리카 지원 규모를 연간 170억유로(약 220억달러)에서 250억유로(325억달러)로 확대키로 한 바 있다.

 

아프리카는 이같은 경쟁적 구애 움직임을 싫어하지 않는 기색이다. 또한 중국이 부패와 독재 여부를 떠나 아프리카 국가를 상대로 무차별적 지원을 펼치고 있다는 서구 언론의 논조에도 대체로 동조하지 않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영 SABC 방송은 한 기업인을 인용해 “우리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광물자원으로부터 많은 이익을 누린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발전을 위해 도와주도록 문을 두드려왔다”며 “중국에 관한 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기업인의 말을 인용, “우리는 그동안 서구에 너무 많이 의존해왔다”며 “중국인들은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해준다”고 말해 중국의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남아공 아지즈 파하드 외교부차관은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이 “악의적 의도”에 근거한 것 같지는 않다면서 “중국 지도부는 전통적인 식민주의적 모델로는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의 천연 자원을 받아가는 것만으로는 관계가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중국 정부가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국이 아프리카의 새로운 식민종주국으로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서구 언론의 시각에 대한 답변인 셈이다. 아프리카의 중국에 대한 이 같은 긍정적인 태도는 과거 아프리카를 식민 통치한 서유럽에 대한 불신이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식민통치를 통해 자원을 수탈해간 서방 세계가 식민 통치가 끝난 뒤에도 거대 자본을 내세워 자원개발 등 여러 이권사업을 유지하고 있으나 아프리카의 빈곤 해소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그러면서 EU 등 서구 국가들이 지원을 제공하면서 경제, 정부개혁 등 여러 조건을 제시하는 데 대해서도 불편해 하고 있다. 우간다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은 11월 브뤼셀에서의 모임에서 우간다 정부가 EU가 제공한 기금을 활용해 댐을 건설하려 했으나 EU가 이에 반대하는 바람에 댐을 지을 수 없었다며 이로 인해 우간다가 전력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한편 올해는 한국에서도 아프리카와의 외교 지평을 새로 넓힌 원년으로 평가될 수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지난 3월 한국 정상으로서는 24년 만에 이집트와 나이지리아, 알제리를 방문해 ‘아프리카 개발을 위한 한국의 이니셔티브’를 발표한 것. 이는 아프리카에 대한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를 향후 3년간 3배 이상인 1억달러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앞서 2월엔 이해찬(李海瓚) 당시 총리가 남아공을 방문하기도 했으며 비록 유엔사무총장을 염두에 둔 방문이기는 하지만 반기문(潘基文)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장관 재임시 탄자니아, 르완다를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들을 수차례 방문, 한국 외교의 사각지대였던 아프리카와의 우호 관계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이와 함께 이원걸 산업자원부 차관이 남아공과 앙골라, 상투메프린시페를 순방해 자원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은 자원 빈국인 한국이 세계 11위 무역대국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에 대한 진출을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인 움직임에도 불구,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은 아직 매우 낮은 수준이며 더욱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컨대 남아공 주재 한국대사관의 공사 직위는 꼬박 1년 동안 비어있는 상태다. 지난해 12월 당시 신강순 공사가 자택에서 5인조 무장강도를 당한 후 사직하고 한국으로 복귀한 이후 1년 동안이나 후임자가 배치되지 않고 있는 것. 아프리카 대륙 최대 경제국가이자 남아프리카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남아공에 주재하는 한국 대사관에서 서열 2위인 공사직위가 1년 동안 비어있는 것은 아프리카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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