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업계 74% 찬성 불구…실제 혼합판매 전환은 전무
혼합범위 확대…정유사, 책임소재·품질저하 들어 반대

 


[이투뉴스] 정부의 3대 기름값 인하대책 중 하나인 '석유 혼합판매' 정책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가 지난해 7월 법을 개정해 혼합판매가 가능토록 했지만 혼합판매 계약 전환을 한 주유소는 한 곳도 없다. 지난 7월부터는 정부가 직접 나서 혼합판매 전환을 희망하는 주유소들의 전환신청을 일괄 접수, 위임받아 정유사와 직접 계약 변경 협상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이후에도 변경된 주유소는 나오지 않았다.

 

최근 업계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는 정부의 혼합판매 정책이 결국 용두사미로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혼합판매는 특정 정유사 폴을 단 주유소라도 정유사와 주유소 간 사적 계약에 따라 다른 정유업체나 대리점, 수입사의 기름을 구매해 팔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유사-주유소 간 자유로운 정률 또는 물량 계약에 따라 일정 부분의 물량을 혼합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부는 일괄적으로 모든 주유소들이 20%내에서 혼합이 가능토록 정책을 추진하다, 정유사-주유소 간 협의에 따라 50%까지 가능하도록 바꿨다.  

 

◆주유소단계에서 20%, 정유사단계에서 40% 이미 실시
지금의 혼합 판매 정책은 2011년 정부가 기름값 안정을 위해 실시한 '석유제품시장 경쟁촉진 및 유통구조 개선 대책'의 일환으로 '석유제품 복수상표 자율판매(혼합판매)'를 시작하며 본격화 됐다.

 

본격화라고 정의하는 것은 정부가 정책을 실행하기 전부터 이미 업계에서는 '혼합판매'가 있어왔기 때문이다. 정책 발표 전부터 그간 주유소 단계에서 이미 관행적으로 복수 상표 자율판매(혼합판매)가 있어 왔다.

앞서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석유제품판매 표시광고 고시'를 폐지했다. 이는 특정 정유사의 상표를 내건 주유소는 해당 정유사의 제품만을 팔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당시 공정위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호하고 정유사간 품질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1992년 이 제도를 도입했지만, 그 목적과 다르게 주유소가 특정 정유사하고만 거래하도록 하는 도구로 이용돼 고시를 유지할 필요성이 낮기 때문"이라며 "지금도 정유사들이 서로 제품을 교환하고 있어, 정유사 상표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보호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라 주유소는 정유사와 전량구매 거래를 하더라도 20% 물량에 대해서는 다른 정유사나 주유소에서 구입해 판매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정부가 2011년 조사한 결과 정유사 폴 자영 주유소가 전체 판매 물량의 20%정도는 다른 정유사 제품을 사용하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 주유소 사업자는 "타사 정유사가 대리점을 통해 공급하는 물량을 사들이면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고 말했다. 정유사와 중간 유통단계인 대리점이 타 정유사 폴 주유소에 밀어내기, 덤핑 공급을 한다는 것이다.

정유사간의 혼합판매도 있다. 정유사간 '물량교환'또는 '교환판매'라고 불린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의 정유사는 유통비를 줄이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사 폴사인 주유소에 타사 기름을 공급하고, 사후정산 한다.

과거 주유소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정유사 판매량 중 2008년에는 39.1%, 2009년에는 40% 가량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거래됐다. 정부도 2011년 기준 40.4%가 정유사 단계에서 상호 교환, 판매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정유사 업계 관계자 역시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내에서 교환판매를 하고 있다"며 이를 인정했다.

이는 결국 혼합판매와 대비되는 정품기름, 순정기름은 사실 실존하지 않는다는 단증이다. 기름은 주유소 단계에서 20%, 정유사 단계에서 40% 혼합돼 판매자에게 도달한다.

이에 더해 기름을 구매하는 운전자들이 매번 다른 정유사를 이용함으로 인해 자동차 기름 탱크에서도 여러 정유사 제품이 섞여 있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혼합기름'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임이 분명하다. 정부의 '혼합판매' 정책은 이미 실존하는 혼합판매 행태를 음지에서 양지로, 양성화하는 것이다.

◆주유소업계 74%가 혼합판매 찬성 불구 현실은 '0'건
정부의 혼합판매 양성화를 둘러싸고 주유소업계의 초기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주유소협회가 2012년 회원사를 대상으로 한 사전 수요 조사 결과 응답한 5845개 주유소 가운데 74%에 해당하는 4302개소가 기존의 전량구매계약 방식의 변경을 희망한다고 답했다. 즉 혼합판매로 계약 전환을 원한다는 말이다.

주유소협회는 "그간 주유소들이 정유사들과 전량구매 계약에 묶여있다 보니 '갑을관계', '노예계약'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던 게 사실"이라며 "주유소들은 혼합판매를 희망하고 있다"고 환영했다.

한국자영주유소연합회는 성명서를 내고 "정유사들이 자가 폴 주유소들에는 전량공급계약을 맺고 비싸게 공급하는 한편 타사 주유소에는 경쟁적으로 덤핑판매를 하는 등 혼합판매는 이미 음성적으로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혼합판매 정책이 보편화될 경우 "혼합판매를 하는 주유소에 정유 4사뿐 아니라 수입사들도 신규 공급이 가능해짐에 따라 새로운 경쟁영역이 창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혼합판매 정책은 기름값 안정을 위해 실시한 것이지만, 방법적으로는 주유소와 정유사의 갑을관계가 개선될 것이기 때문. 

혼합판매는 정유사간 경쟁 촉진을 위한 정책이다. 혼합판매 도입 시 정유4사뿐 아니라 수입사들도 신규 공급이 가능해짐에 따라 혼합판매 비율만큼 새로운 경쟁영역이 창출된다. 이에 주유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유사들 간의 경쟁도 나타날 것이란 판단이다. 전량구매계약을 맺고 있는 폴사인 주유소일지라도 희망하는 경우 혼합판매가 가능해짐에 따라, 전량구매계약 강요 및 불공정거래행위 여부에 대한 그간의 논란을 불식시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 9월 정책이 도입된 지 1년이 넘도록 혼합판매 계약 전환 주유소는 한 개소도 나오지 않았다.

2011년 기준 정유사 폴 주유소 중, 직영을 제외한 전체 1만346개소 중 무채권 주유소는 58.7%인 6075개소나 된다. 전량구매계약을 조건으로 정유사와 시설 지원 계약 등을 체결한 주유소는 혼합판매로 계약 변경이 불가능하다지만, 6075개소는 이로부터 자유롭다. 정유사-주유소 계약은 매년 1년 단위로 갱신하는 데 6075개 중 한 곳도 나타나지 않았다.

◆정유사, "가짜석유 책임소재 불분명해져"
업계에서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정유사의 거센 반대와 회유가 제일 큰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유사는 상표권 침해와 가짜석유 적발시 책임 소재 불분명, 품질 저하 등을 이유로 혼합판매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가짜석유 책임소재, 품질 문제 등을 두고는 업계에서 정유사의 입장과 상반된 주장이 나온다.

지난해 석유관리원이 국회에 보고한 상반기 가짜석유 단속수를 보면 현대오일뱅크가 49건으로 가장 높았고, SK 40건,  GS칼텍스가 33건, 에쓰오일 29건 순이다. 자가폴은 94건으로 나왔다. 2007년부터 2012년 7월까지 가짜석유 누적 적발 건수는 SK가 596건이다.

이 자료에서 살피듯 4대 정유사가 자가폴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속수가 적다고는 하지만, 자가폴에 비해 가짜석유로부터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 또 가짜석유 주유소 적발 시 해당 주유소는 영업정지, 과태료, 폐업을 하고 정유사가 해당 주유소에 취하는 사후조치는 따로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유사가 가짜석유 사용 주유소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진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유사가 주장하는 품질과 관련해서 정부는 석유관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정유사별 제품간 혼합시 품질특성 및 차량성능은 혼합에 따른 상호영향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결과를 받았다. 정부는 혼합판매 주유소의 경우 사전에 석유관리원의 품질검사를 통과한 정품석유만을 섞어 판매하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반면 정유사가 혼합판매 계약 전환 주유소에는 그간 주유 시 할인하는 각종 보너스카드 혜택을 줄 수 없다고 못 박고 나서며 주유소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불만은 높다.

◆"'혼합판매' 프레임 바꿔 인식전환 이뤄야"
지지부진한 혼합판매 전환 상황을 지켜보던 업계의 한관계자는 '혼합판매'라는 단어가 제일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정유사의 반대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혼합판매'라는 용어가 소비자에게 섞는다는 데서 오는 부정적 인식을 준다"며 "'혼합'하면 '가짜석유'라는 느낌을 준다"고 문제제기 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몇 년 전 정부는 '가짜석유'라는 단어가 불법성이 더 강조된다며 기존에 쓰던 '유사석유'에서 명칭을 변경했다. 당시 유사석유는 소비자들에게 석유제품과 유사하면서 사용 가능한 제품으로 인식시킬 오해의 여지가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용어가 주는 인식의 역할이 크다는 말이다. 유사석유를 가짜석유로 명칭 변경한 것과는 반대의 의미로 혼합판매를 다른 용어로 변경해 현재의 부정적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정유사폴 주유소들도 정유사단계에서 40%, 주유소단계에서 20% 혼합된 '혼합판매' 제품이다. 전량구매와 혼합판매 용어 구분은 정유사-주유소 간 사적 거래에서의 구분일 뿐 소비자에게 주장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재 산업부와 주유소협회를 통해 "혼합판매 계약 변경을 요청한 주요소들의 사례를 성공시켜 그 외의 주유소들에 본보기가 돼 처음 정부 계획처럼 도미노 효과를 내야 한다"며 정부와 정유사 간 협상에 속도 내기를 촉구했다.

이윤애 기자 paver@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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