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망 이대로 가면…] 장기 계통전망 시뮬레이션 분석 보고서 단독 입수
2021년까지 사실상 ‘無대책’…폭탄돌리기 논란

▲ 신시흥 일대 345kv 송전선로
[이투뉴스] 6차 전력수급계획과 송ㆍ배전설비 건설계획대로 전력망이 운영될 경우 수년내 계통상황이 급격히 악화돼 765kV 송전선 1회선 고장만으로 충남 일대 화력발전소 10기가 멈춰서고, 수도권이 초유의 광역정전을 겪게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내용은 <이투뉴스>가 최근 정부 자문단으로부터 단독 입수한 전력계통전문위원회 내부 보고서와 6차 송ㆍ변전설비 건설계획 수립과정에 전력당국이 회람한 장기 계통전망 시뮬레이션 결과를 통해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전력기반 붕괴 전망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 전력정책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간섭 배제를 촉구하는 한편 송전사업자인 한전의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강화하는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29일 본지가 확인한 전력당국의 ‘당진 765kV 송전선로 현황’ 관련 문건에 따르면, 충남 당진과 태안일대 발전단지에서 가동되고 있는 발전소는 9.4GW(설비용량 기준)로 이미 인근 계통에 과부하가 걸려 대정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 분석에 의하면 당진발전단지와 신서산을 잇는 765kV 송전선로(40km)가 고장나면 당진에 있는 화력발전 6기가 동시에 탈락한다. 발전기는 전기를 보낼 길이 막히면 설비보호를 위해 스스로 멈춰선다. 이렇게 증발하는 공급력은 무려 3GW. 왠만한 예비력을 보유하지 않고선 광역정전이 불가피하다.

인근 신서산-신안성간 765kV 송전선로(140km)가 무너지는 시나리오 결과는 더욱 참혹하다. 과도안정도가 깨지면서 당진화력 5기가 잇따라 멈춰설 공산이 크다. 같은 속도로 마차를 끌던 말(馬)중 한 마리가 넘어지면 나머지 말들이 잇따라 곤두박질 치는 이치다.

이때 계통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SPS(고장파급방지장치)가 작동하면 최대 2.8GW의 발전력과 수도권으로 공급되던 1.5GW규모 전력이 차단된다. 전압도 불안정해져 한전 남서울본부와 경기본부 관할 15개 변전소는 송전을 중단해야 한다. 최소 수백만 가구가 대정전 위험에 노출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같은 일촉즉발의 위기가 갈수록 심화된다는 사실. 충남 일대 발전설비는 발전소 증설에 따라 2016년까지 15GW 규모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송전선 고장으로 탈락하는 설비는 무려 6GW로 증가하고, SPS 작동에 의한 정전부하도 5.2GW로 는다.

한전 자체 집계에 따르면 2011년 9.15 순환정전을 제외한 최근 십수년간의 광역정전 사고는 100% 낙뢰나 송전선로 파괴 및 과부하 등이 원인이다. 2003년 북미 및 이탈리아 대정전도 송전선 수목접촉과 송전선 과부하 등으로 발생했다. 

이런 국가적 재난을 막으려면 당진화력~신서산, 신서산~신안성간 180km 구간에 765kV 송전선로를 하나 더 깔거나, 당진화력~화성(765kV. 70km)ㆍ서서울~신수원(345kV. 20km) 사이에 새 융통선로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당국이 발표한 송ㆍ배전 건설계획에는 2017년까지 765kV 신중부변전소를 세우고 2018년과 2021년에 각각 345kV 북당진~서안성(HVDC)ㆍ당진화력~북당진을 확충하는 내용만 담겼다. <관련기사 '2027년 한국 송전지도 어떻게 변하나' 참조>

발전소를 더 짓지 않는다 해도 2021년까지 충남 일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력망의 화약고가 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당국은 6차 송ㆍ배전계획 수립과정에 이 문제를 중점 검토했으나 이렇다할 대안을 도출하지 않은 채 논의를 유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본지는 사실 재확인을 위해 계통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전력거래소 측에 관련 기술검토 자료와 중장기 계통 운영계획 등을 요구했으나 “추가적인 분석ㆍ검토가 필요한 사안인데다 정부 및 한전과의 협의가 필요해 당장 정보를 공개하기는 어렵다”는 회신을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수급계획과 송ㆍ변전계획의 앞뒤가 바뀌어 틀어진 문제가 잠재해 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매우 악화된 것"이라면서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영현 대한전기학회 회장(연세대 교수)은 "전력망 확충과 안정적 전력공급은 국가 전체 산업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로 한번 무너지면 다시 일으키기가 매우 어렵다"면서 "현재는 산업부 장관이 이를 책임지는 것처럼 돼 있지만 실제는 이를 책임질 곳이 아무데도 없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문 회장은 "전력수급은 누가 뭐래도 한전이 책임져야 할 사안인데 정책은 정부가 좌지우지하고 있고 공급업무도 발전사와 전력거래소로 넘어가 한전의 역할이 없지 않느냐"면서 "전력기반 정상화는 정부·정치권의 지나친 간섭배제와 한전의 권한 및 책임을 동시 강화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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