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호젓한 시골 항구였던 삼척시 원덕읍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한창이다. 마을 북쪽에선 남부발전이 여의도 면적 규모의 삼척그린파워 발전단지를 짓고 있고, 이곳에서 1km가량 떨어진 남쪽에선 가스공사가 국내 4번째 대형 LNG 생산기지를 건립하고 있다. 이들 시설이 수년내 완공되면 이 일대는 '동북아 복합에너지 거점도시'의 중심이 된다.

망망대해가 배경으로 펼쳐진 삼척그린파워 건설사무소에서 최근 현장 취재차 김만년 건설본부장을 만났다. 3조2000억원 규모 대공사의 현장 총책인 그는 사업소장 부임 이래 줄곧 가족과 삼척에 살고 있다. 근속 34년째인 그는 "복이 많아 공사를 많이 했고", 그래서 자칭 "서울에 집없는 사업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곳이 "마지막 직장(일터)이라 생각하고 있다"고도 했다.

김 본부장은 오전 6시 30분께 집을 나서 길게는 1시간 30분 가량 현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1500여명의 인력이 동시 투입되는 건설현장은 도처가 안전사고 위험지대다. 하반기 골조공사가 본격화되면 투입인력이 500여명 가량 더 는다. 근로자 작업안전과 전일 지적사항 조치여부 확인이 그의 시무인 이유다. 지난 2년은 "아찔한 순간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평지가 아닌 산악을 깎고 바다를 메워 짓는 발전소는 이곳이 처음이다. 게다가 간척은 자연과의 싸움이다. 한달간 공들여 만든 매립지를 하룻밤만에 태풍이 집어삼킨 적도 있다. 동해 특유의 너울성 파도로 연중 해상작업이 가능한 기간은 5개월에 불과하다. 이런 악조건을 딛고 남부발전은 하루 10여m씩 부지를 넓혀가며 전체면적의 40%를 확보하고 있다. 그는 "옆, 뒤 볼 새 없다. 2016년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고 했다.

김 본부장이 안전과 공정률만큼 신경쓰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국내 1군 건설사와 수백개 협력사가 총집결한 삼척 현장엔 소위 '함바집(현장식당)'이 없다. 1500여명의 근로자들은 5000원짜리 도시락으로 점심을 떼우거나 시간이 허락할 땐 인근 소읍(小邑) 식당을 이용한다. 지역경제에 조금이라도 기여하자는 취지다. 그도 구내식당을 이용하거나 더러 현장에서 근로자들과 도시락으로 끼니를 채운다. 

특히 김 본부장은 저녁식사만은 귀가 후 가족과 함께 한다고 했다. 건설소장은 지역사회나 시공사와의 적절한 유대 및 소통이 필요한 직책이면서 뜻하지 않게 각종 이권과 수주청탁에 노출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공기업 청렴도 1위'를 최고의 명예로 생각하는 남부발전으로선 여간 조심스런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그는 A4용지 크기의 부적을 항상 품고 다니며 늘 몸가짐을 새롭게 한다고 했다.

부적의 내용은 이렇다. "1.당신의 자리는 영광의 자리이기도 합니다만 몰락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2.먹을 것을 삼가시고 절제하십시오. (중략) 3. 식사 이외에도 주변에서 부정의 유혹이 들어오고 이를 도저히 뿌리치기 힘들면 당신의 앞날과 가족을 생각하고 이 글을 부적이라 생각하고 몰래 꺼내보십시오. 4. 그래도 뿌리치기 힘들면 주저마시고 이메일을 보내주십시오. '사장님, 다른 곳으로 발령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 편지는 당신을 지키는 부적입니다.(후략) 2012. 11. 23. 사장 李相鎬(친필 사인)."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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