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분산형 활성화 표방, 구체적 그림은 여전히 묘연
송전비용 포함한 발전단가 산정 등 세부 지원책 나와야

▲ 외곽의 대형 발전단지는 물론 여기서 생산한 전기를 실어나르는 송전망 건설이 어려워지면서 무게중심이 분산형 전원으로 옮겨질 전망이다.

[이투뉴스] “전력정책을 공급 중심에서 수요관리 중심으로, 경제성 중심에서 사회적 수용성과 환경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계획입니다. 과거처럼 대규모 발전단지를 짓거나 초고압 송전선로를 짓는 게 주민 반대로 쉽지 않아 오히려 수급불안을 초래합니다. 이제 분산형 전원을 활성화하는 게 보다 근본적인 수급안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봅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7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핵심은 전력정책을 수요관리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점과 전원계획도 경제성 우선보다 수용성과 환경성을 먼저 고려하겠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발전소 건설 역시 대규모 발전단지와 송전선을 최소화, 분산형 전원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한진현 산업부 2차관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윤 장관의 발언과 보조를 맞췄다. 그는 밀양 등 송전탑 건설 갈등과 관련 “고압 송전탑 및 송전선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갈등을 봉합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다만 앞으로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전력 수요지 근처에 분산형 전원을 활성화하는 쪽으로 정책 중심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에너지특별위원회를 통해 분산형 전원 활성화 의지를 천명했다. 나성린 위원장은 “단기적으로는 단계적 전기요금 현실화를 통해 수급불안을 해소하고 장기적으로는 수요처에 멀리 떨어져 있는 대형 발전소가 아닌 수요처 인근은 물론 수요가 많은 기업에도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산업부를 비롯한 전력정책을 책임지는 정부 고위관계자는 물론 여당에서도 분산형 전원 활성화에 대한 목소리가 갈수록 거세게 일고 있다. 모두 경제성 위주의 대형 발전단지와 송전망 건설이 현실적으로 어려운만큼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이유를 댔다. 원자력 및 석탄발전소 입지난과 함께 밀양 송전탑 사태에서 보듯이 고압 송전망 역시 한계에 온 것 같다고 지적했다.

◆왜 분산형 전원인가?
지금까지 국내 전력공급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을 받았다. 한전이라는 독점체제와 연계한 철저한 전원계획을 통해 먼저 전력수요를 예측, 여기에 맞는 발전시설과 송전망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전력공급 안정성 및 경제성을 확보, 산업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것도 사실이다. 전기요금도 비슷한 경쟁국에 비해 항상 저렴한 가격수준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같은 중앙공급시스템이 서서히 삐걱거리고 있다. 먼저 전력산업이 사실상 100% 정부 통제 하에 놓이다 보니, 시장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연료비 상승 등 전기요금 인상요인에도 불구 정치적 목적을 앞세운 친위세력이 나서 요금인상을 막아왔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한전의 누적 적자는 18조를 넘어서 정상적인 기업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에 도달했다.

가격왜곡이 발생하면서 2차 파급도 이어졌다. 여타 에너지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전기로 다른 에너지수요가 몰린 것이다. 이는 결국 당초 전망치보다 많은 전기수요로 이어지면서 전력수급 불안을 불러왔다. 심지어 불안한 시장구조가 상존, 매년 수급위기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와 원전부품 비리사건이 터진 이후 중앙공급시스템의 핵심인 원전에 대한 대국민 수용성도 현저하게 낮아졌다. 우리나라 역시 생산단가가 가장 낮은 원전이 제대로 증설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존 공급중심의 전력정책의 한 축을 잃어버리게 된 셈이다.

기존 송전망이 포화상태에 도달하면서 전기 동맥경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도 분산형 전원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새로운 고압선로 건설이 계속 지연되면서 일각에서는 이미 기존 송전망 중 90%가 더 이상 접속이 어려운 포화상태에 달했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송전망 문제는 최근 밀양 사태로 이슈화가 됐지만, 이미 여러 곳에서 잠복돼 있던 문제가 이번에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더 이상의 고압송전망 건설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의 외곽 대형 발전단지에 의존하는 전력구조는 무용지물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성 측면에서도 과연 고압송전망과 대형 발전소를 전제로 하는 기존 시스템이 계속해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우선 입지난과 고준위 폐기물처리장 건설, 수명이 다한 원전의 해체 및 복원비용, 사고 후처리비용 적립액 증가 등을 감안할 때 원전 발전단가가 현재보다 대폭 오를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여기에 오염물질 배출이 가장 많은 석탄 역시 기후변화 대응 등을 위해 더 이상 늘려선 안 된다는 환경당국의 입장은 확고하다. 송전선로 건설도 발전소 주변지역과 비슷할 정도로 지원을 크게 늘리는 내용의 법개정을 앞두고 있어 비용증가는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 산업기술대에 설치된 소형열병합발전시스템.

◆외국은 분산형 전원에 추가요금 지급
유럽 각국은 90년대 초반부터 벨기에에 본부를 둔 코젠 유럽(Cogen Europe)을 중심으로 분산형 전원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분산형 전원 중에서 지금까지는 열병합발전이 주도했다. 덴마크, 네델란드, 핀란드 같은 국가들은 전력 생산량의 상당량을 열병합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다. 최근엔 신재생에너지 확산도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주요 유럽국가의 열병합 보급지원제도를 살펴보면 네덜란드는 발전차액제도 및 의무구매제도를 펼치고 있다. 또 자가 발전기 효율과 온실가스 감축에 따른 보조금지원, 연료에 대한 세금 면제, 발전보조비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한다. 독일은 자가 열병합 수리비 지원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열병합 보급 확대에 박차를 기하고 있다.

여기에 유럽 상당수 나라와 일본 등은 송전망이용요금제를 통해 수요처 인근에 있는 발전소의 경우 송전요금을 감면해주고, 멀리 있는 발전소일수록 추가요금을 부과하고 형태로 분산형 전원을 우대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에너지이용효율이 높은 열병합 확대에 점차 지원을 늘리고 있다.

실제 영국의 경우 국토를 16개 지역으로 구분, 런던도심지에 있는 소규모 CHP(열병합발전)는 1㎾당 0.7파운드의 마이너스 송전요금을 부담(전력거래소에서 비용 보전)하며, 영국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발전소는 l㎾당 0.86파운드의 송전요금을 발전소에서 부담케 하고 있다.

이밖에 독일 역시 도심 근처에 있는 열병합발전시설에 kWh당 5.10유로센트를, 일본도 자가열병합발전기에 대해 kWh당 10∼15엔의 발전지원 및 설치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도심지 비싼 토지에 건설·운영하는 분산형 CHP사업을 육성시킴과 동시에 송전선로 건설을 최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입으로만 떠든 분산 전원은 실패
정부 및 여당의 분산형 전원 활성화 방침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정책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전력당국은 분산형 전원 활성화를 외쳐왔다. 가장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집단에너지 및 구역전기사업(CES)이다.

제1기 신도시가 들어선 1990년대 당시 동력자원부는 신도시마다 열병합발전소 한 곳씩을 세워 전기는 물론 여기서 나오는 폐열을 활용하는 지역난방사업에 착수했다. 이후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주도한 지역냉난방 공급은 꾸준히 늘어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곳에는 거의 빠짐없이 지역난방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 초반부터는 민간 사업자에게 집단에너지 허가를 내줘 수도권 인근에 많은 소규모 사업자가 탄생했다. 여기에 전력산업구조개편과 연계해 일정 권역 내에서 열과 전기를 모두 판매할 수 있는 구역전기사업을 야심차게 선보였다.

하지만 CES와 소규모 지역난방사업은 이후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연료비 인상으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입어야 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수준에서 100달러가 넘게 치솟았는데도 불구 전기와 열요금 인상은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들 사업자는 수년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업체는 도산위기에 놓여 있다.

분산형 전원정책이 실패에 도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전기와 열요금을 제때 현실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연료비 등 투입비용은 증가하는데 반해 거둬들이는 요금은 정부의 통제를 받다보니 적자운영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또 100㎿미만의 소형발전소에 공급되는 가스요금이 대형발전소 대비 10% 가깝게 비싸다는 점과 높은 부지구입비용 및 낮은 효율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이런 요인으로 인해 발전단가가 높다보니 외곽의 대형발전소보다 가동률이 낮아지는 빈곤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셈이다.
▲ 수요처 인근에서 열과 전기를 동시에 생산, 높은 에너지이용효율을 보이는 한국지역난방공사의 화성 열병합발전소 전경.

◆구호가 아닌 실효성 있는 지원책 내놔야
자가열병합을 비롯해 지역냉난방용 열병합발전, 연료전지 등 분산형 전원은 국가적인 편익측면에서 에너지효율 향상, 온실가스 배출저감 효과, 송전망 및 가스저장시설 건설비용 회피 등 장점이 많다. 이 외에도 9.15 대규모 정전 사태와 일본 원전문제 그리고 최근의 동하절기 전력위기 등을 감안할 때 국가 전력수급시스템의 안정성 보장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도 올해 들어 이같은 요인을 감안, 분산형 전원 활성화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여전히 분산형 전원을 늘리기 위한 중장기적인 정책 수립은 나오지 않고 있다. 따라서 업계에선 연말쯤 최종 결정되는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도 이를 명시, 분산형 전원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분산형 전원이 경제성을 확보 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와 편익을 고려한 보조금 등의 지원제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국가적인 측면에서 에너지 효율성 확보, 송전망 포화문제 해소 등 전력시스템 안정화, 온실가스 저감효과 등을 감안할 때 분산형 전원 필요성은 명백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중앙집중형 전력체계를 만든 주범인 송전손실 및 송전비용을 정확하게 재산정, 이를 급전 및 계통운영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유명무실한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는 송전비용을 현실화, 분산형 전원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를 토대로 전원계획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태일 지역냉난방협회 부회장은 “분산형 전원은 전력계통 안정화에도 기여하는 것은 물론 에너지이용효율 향상, 온실가스 감축 등 모든 부분에서 기존 중앙집중식 공급시스템보다 낫다”면서 “유럽처럼 송전비용을 100% 반영한 송전망이용요금제 도입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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