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주유소공급가보다 전자상거래 가격 높아
정부, 경쟁촉진 위해 전자상거래 제도개선

[이투뉴스] 정부와 정유사 간의 전쟁이 다시시작 됐다. 정유사들이 가격결정권을 쥐고 있는 기존시장을 벗어나 새롭게 만든 '석유제품 전자상거래'시장이 정유사 참여 3달만에 '도로 기존시장'으로 회귀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바로 잡기 위해 관련 제도 개선에 나선다고 예고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자상거래 시행기관인 한국거래소가 구체적 시스템 변경을 마련했으며, 이를 전적으로 수용할 것"이라는 입장이며, 한국거래소는 "거래소가 할 시스템 정비는 마쳤다. 산업부가 이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한다. 종합하면 제도개선 준비는 완료됐으며, 이번 달 안에 관련 내용이 공개될 전망이다.
 
정부가 정유사 본격 참여 3개월 만에 '제도개선' 칼을 빼든 이유는 제도 도입시 목표와 제도 운용 사이의 간극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3월 '다수 공급자간 가격경쟁을 통한 공급가격 인하 효과'를 목표로 전자상거래를 개설했다. 하지만 최근 '다수 공급자'는 '정유4사 공급 쏠림'으로, '가격경쟁'은 '정유사-전속대리점 간 통정매매'로 바뀌었다. '공급가격 인하'는 '평균가격 증가'로 귀결됐다.

◆정유사 전자상거래 가격 높을 이유 없다
'평균가격 상승'은 전자상거래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정유사가 수입사 등 타공급사보다 월등히 높은 가격으로 휘발유, 경유를 공급해 전자상거래 평균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 한국거래소의 월간동향에 따르면 8월 전자상거래 평균가격은 휘발유가 1809.2원이며, 경유는 1599.2원이다. 정유사 공급가격은 리터당 각각 1823.0원과 1624.5원으로, 타공급사의 1773.1원, 1570.8원보다 49.9원과 53.7원이나 높다.

문제는 정유사의 공급가격이 이렇게 높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유사는 전자상거래 참여시 기존 시장에서 지출되는 영업비용 등 경비가 상당히 줄어든다. 또 같은 휘발유, 경유를 전자상거래 내에서 거래시 리터당 16원의 수입부과금 환급도 받는다.

정유사가 경비도 줄고 수입부과금 환급도 받는데도 불구하고, 타 매도자보다는 물론이고, 정유사의 주유소 공급가(휘발유 1813.4원, 경유 1625.7원)보다 전자상거래 내 공급가(휘발유 1823.0원, 경유 1624.5원)를 높게하는 이유에 대해 의구심이 일고 있다. 

7월과 8월 두달간, 4대 정유사는 21억9000억원을 환급받았다. 정유사별 환급금은 현대오일뱅크가 8억8667만원, 에쓰오일 7억9468만원, SK에너지 4억2475만원, GS칼텍스 9384만원 순이다.

 
◆정부, 정유사 간 경쟁 촉진에 심혈
정부는 가격이 높은 이유를 '경쟁' 부족과 '전자상거래 무력화'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는 눈치다. 산업부 관계자는 "경쟁 촉진으로 가격인하를 이끌기 위해 제도 개선을 논의 중"이라며 "이번 달안에 종목광역화, 협동조합을 통한 공동구매 활성화 등 여러 방법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종목광역화는 '종목=지역'을 뜻하며, 한 종목에 최소 2개 이상의 저유소가 포함되도록 이를 넓혀 경쟁 촉진을 통한 가격인하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구매 최소단위인 2만리터를 채우지 못해 소외됐던 주유소 사업자들이 모여 공동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전자상거래 개설 이후 소규모 주유소들이 줄곧 요청한 제도개선 내용이기도 하다.

한국거래소도 최근 이와 같은 의견을 나타냈다. 김원대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 상무는 "경쟁매매 종목에서 경쟁 주체인 매도자 수가 제한된 곳은 종목광역화를 통해 매도자 수를 늘리던지, 그도 안 되면 해당 종목 폐지도 고려하고 있다"며 "기존 시장이 정유4사 독과점 구조에서 올바른 경쟁이 실종돼 문제였다면, 전자상거래에서는 정유4사가 활발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나갈 것이다"고 강조했다.

김 상무는 또 "지금까지 기존 시장에서 가격결정권을 쥔 정유사의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전송공급계약 등 비가격적, 불공정 경쟁이 주를 이뤘다"며 "전자상거래는 이런 것들을 제거하고 가격만으로 경쟁할 수 있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유사 전속대리점이 통정매매 주범
정유사의 경쟁 촉진이 다일까? 아니다. 전자상거래에 매도자(정유사, 수입사 등)가 있다면 매수자(주유소, 대리점)도 있다. '매도자' 뿐아니라 '매수자'도 고려해야 한다. 정유사는 전자상거래 본격참여 조건으로 폴주유소의 거래 제한을 요청했다. 혼합판매계약을 체결한 주유소는 진입 가능하다는 단서조항을 달았지만, 혼합판매계약 전환은 정유사의 직간접적인 방해행위로 한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폴주유소를 모두 차단하고 남은 매수자는 단출하다. 알뜰주유소, 자영주유소 등 정유사 폴을 달지 않은 주유소들과 대리점 이렇게 두 주체다. 이중 특이한 점은 '정유사 폴 주유소'는 거래가 차단된 가운데 '정유사 전속 대리점'은 여전히 허용된다는 것. 이들은 정유사가 전자상거래에 내놓은 고가 물량의 구매자로 변질됐다. 한국거래소는 이같은 거래 행위를 '통정성매매'라고 진단한 바 있다.

전자상거래 내 매수는 8월 기준으로 대리점이 81.2%(1억8369만리터)를 차지한다. 이는 17.5%(3976만리터)인 주유소의 4.6배나 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전자상거래 내 대리점 거래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 "혼합판매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여론도 상당히 높다.  
 
정유사 본격 참여 4개월 차, 정부는 정유사의 경쟁촉진과 대리점 및 혼합판매 주유소 수 증가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매월마다 전자상거래 내 정유사 비중이 크게 늘어가는 가운데 전자상거래의 성패는 앞으로 몇 개월간 정부 정책에 달려있다.

정부가 정유사를 전자상거래 내에서 다수 공급자 중 한 주체로 전락시킬 것인가, 기존 시장처럼 독과점을 통한 가격결정권자로 되돌릴 것인가.


<인터뷰>김원대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 상무
"경쟁없는 고가 대량매매 의미 없다"

통정매매 못하도록 광역화, 석유공사 역할 확대도 검토
주식시장처럼 매도주체별 실시간 가격변화 공개할 것

정부가 제도변경을 시사하는 가운데 석유제품 전자상거래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환될 지 묻기 위해 제도운용을 담당하는 한국거래소의 김원대 파생상품시장본부 상무를 만났다. 현장에서 석유제품 전자상거래를 지휘하는 김 상무의 지향점은 '완전경쟁과 정보공개' 두가지 키워드로 압축된다.

"정유사 참여로 거래가 증가했지만 경쟁매매 회피나 고가매매 등 석유전자상거래의 질적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있습니다. 특히 '경유(휘발유)-자가-서울' 종목과 같이 공급자가 특정 정유사 1개인 종목은 통정매매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해당 종목 폐지 또는 종목 광역화를 정부와 협의하고 있으며, 알뜰제품만 공급하는 석유공사가 정유사와 함께 경쟁하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중입니다"

김 상무가 구상하는 전자상거래는 '완전경쟁시장'이다. 정유사뿐 아니라 수입사, 대리점, 석유공사를 공급대열에 끌어들여 다수 공급자 간 매도 경쟁을 만들 계획이다. 종목 조정, 가격제한폭 변경과 정보공개 확대 등 참가자간 경쟁 유도 방안도 다각도로 검토중이다. 매도자 간 경쟁이 심화되면 가격은 자연히 떨어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지금은 제한적으로 평균 가격만 공개하는데, 유가 안정화라는 취지에 부합되도록 정유사 등 '매도 주체별 가격'을 공시할 계획 입니다. 소비자와 주유소사업자들이 어느 정유사 가격이 얼마나 높은지 등을 알 수 있도록 상세한 시장 정보를 공개한다는 것이죠. 주식시장에서도 누구든 단말기를 통해 삼성전자 주가가 어떻게 변하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석유전자상거래도 공개돼야 합니다"

매도자만 늘면 소용없다. 매수자가 충분해야 한다. 최근 전자상거래 내에는 대리점의 매수 비중이 70%가 넘는다. 김 상무는 전량공급계약, 폴주유소의 혼합판매 금지 등이 해소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부분은 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상무가 혼합판매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그의 경험 때문이다.

"지난해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정유사별 점유율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이런 것들이 가능성을 보여주죠. 그동안 장외에서는 가격을 통한 경쟁이 아닌 갑을관계 형성을 통한 전속공급계약 등 비가격, 불공정 경쟁에 치중됐습니다. 전자상거래는 이런 것들을 제거하고, 가격으로만 경쟁하게 할 것입니다"

한국거래소는 전자상거래 개설때 선물시장 도입 계획을 공개했다. 시기는 거래규모가 국내 소비량 대비 10%를 초과할 때다. 김 상무는 10%는 양적인 부분뿐 아니라 정유사 간 가격경쟁과 특정 참가자의 가격지배력 실종, 석유공사의 휘발유 공급, 거래량 10% 안정적 지속이 가능할 때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다수 참가자간 경쟁을 통해 형성된 가격이 아니므로 시장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거래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완전 경쟁을 통해 전자상거래 가격이 석유시장의 기준지표로서 신뢰를 확보해야 가능하다는 것.

"세계적으로 국내 석유전자상거래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미국 에너지부도 두 번이나 다녀갔죠. 유가문제는 대부분의 나라가 골치를 썪는 부분입니다. 정유사는 기반시설이니 다들 정부 지원에 힘입어 과점체제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자 과점기업이 유가를 좌우하는 모양새가 됐죠. 우리는 현재 한발 앞서 나가는 것이고, 이게 성공하면 외국에서 배우려 할 것입니다"

김 상무는 파생상품시장 부분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권위자다. 지난해 영국에서 발행되는 세계적 파생상품시장 전문지인 FOW(Futures & Options World)가 30년간 세계 파생상품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30인을 선정했는데 김 상무가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꼽혔다. 그는 선물(先物)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한국 주식시장에서 1991년 코스피200선물을 개발했다.

"시장의 안정적 정착과 참여자간 경쟁구도 확립을 통해 전자상거래가 유가안정에 기여할 수 있게 하자고 종사자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라며 김 상무는 인터뷰 중 수차례 '사명감'을 언급했다. 석유제품 전자상거래 정착을 꼭 이뤄내겠다는 다짐으로 들렸다.

이윤애 기자 paver@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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