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전력산업연구센터장 / 경제학박사

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전력산업연구센터장

[이투뉴스 칼럼 / 이창호]  벌써 수년째 전력수급 불안이 지속되고 있고, 이로 인해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수급불안의 원인은 공급 측에도 일부 있지만 전력수요의 빠른 증가이다. 낮은 전기요금이 결국 산업체나 서비스업으로 하여금 전기를 더 사용케 하는 유인을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해서 늘어나는 수요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 공통의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물론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하면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러나 얼마만큼을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시원한 답을 듣기 어렵다. 단지 요금이 낮아서 전기를 많이 쓰니 50%나 갑절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전기요금 문제는 단순히 총 요금수준을 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용도별 수준이나 요금체계가 더욱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요금산정 기준과 객관적인 데이터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요금, 가격, 원가, 비용과 같은 용어는 비슷하게 사용되기도 하지만 의미나 쓰이는 용도가 조금씩 다르다. 전기재화를 일반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경우 대부분의 국가에서 ‘요금표(tariff)’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소매요금은 일반적으로 원가에 이윤 즉 일정한 마크업을 더해서 설정하게 되며, 수준과 산정절차의 적정성에 대한 검토를 거쳐 독립적 규제기관의 승인을 받아 시행한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공급되는 상품은 가격(price)을 통해 거래된다. 원가방식과 가격은 메커니즘은 다르지만 수준을 결정하는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받으므로 수급여건에 따라  초과수익을 얻거나 반대로 손해를 보는 경우도 왕왕 있다. 가격결정에는 소비자가 느끼는 효용이나 재화의 가치가 영향을 미치지만, 가치와 가격이 꼭 같이 가지는 않는다. 소위 ‘물과 다이아몬드의 역설’이다.

최근 들어 전기요금 문제를 가지고 많은 토론과 논의가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주장이 많아 자칫 탁상공론에 머물지 않을까 우려된다. 단순히 한전에서 제시하는 원가만 메워주면 되는가? 아니면 그것만으로는 효과가 적을 것 같으니 원가보다 더 많이 올려야 하나? 전력회사에 초과수익을 줄 수 없으니 세금도 올리고 이런저런 부담금을 부과해서 지금보다 곱절쯤 올리면 될까? 사실 말하긴 쉽고 방향성은 맞는 것 같지만 구체적인 해법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소비자에게 부담을 주는 요금인상을 합당한 논리나 정당성 없이 추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택용이나 업무용, 산업용, 농사용 간의 형평성이나 용도 내에서 사용량에 따른 요금차이까지 들어가면 비용분석도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복잡한 요금외적 문제와 연결된다. 따라서 요금문제가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객관적인 비용평가와 비용배분의 원칙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전기요금 수준이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왜 이렇게 낮은 요금으로 공급할 수 있는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이 많아서 낮다는데 정말 그런가? 아니면  발전소 건설비나 운영비가 다른 나라보다 턱없이 낮다는 건가? 그도 아니면 공급비용의 60~70%를 차지하는 연료를 값싸게 사오고 있는 건가? 낮은 전기요금의 배경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전기란 발전소에서 연료를 사용하여 생산하고 송배전설비를 통해 사용자에게 공급한다. 발전만 보자면 설비는 원자력, 석탄, 가스로 대별되고 돈이 드는 연료는 석탄과 천연가스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나라 전력생산비를 설비와 같은 고정비와 연료비로 구분하면 그 비중이 대략 1대 2 정도이다. 발전연료의 거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형편에서 원자력 30%를 제외한 화석연료의 구입에 지불하는 비용은 낮지 않을 것이다. 특히 연료비의 약 60% 이상을 차지하는 천연가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사다 쓰고 있는 나라중의 하나이다. 설비건설이나 운영의 효율성이 높다 하더라도 핵심설비 도입이나 제작, 인건비 수준 등에서 우리라고 턱없이 낮을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선진국과 우리의 공급비용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전력산업의 많은 문제가 이에 대한 답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발전입지, 원전건설, 수명연장, 송전선 확장, 환경문제, 사회적 갈등 등 직접비용에 포함되지 않은 많은 사회적비용이 간과되고 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소위 ‘외부효과’ 현상에 의해 전력부문의 ‘외부비경제’가 제대로 보상되거나 반영되지 않는 비용 형태로 사회의 다른 부문이나 미래로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비용이 제대로 평가되고 반영된다면 전력공급비용의 수준이 지금과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무작정 올리자는 주장보다는 객관적인 자료와 평가를 통한 접근이 선행되어야 한다. 전원별 설비비 산정은 적절한지, 포함되지 않은 사회적비용은 어느 정도이고 어떤 방식으로 요금에 반영해야 하는지, 용도별 요금구조와 체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 등 이제 제대로 된 평가와 검증을 서둘러야 할 때다.

아울러 우리의 전력산업에서 결여된 이러한 기능을 서둘러 제도화해야 한다. 규제산업에서 사업자 자신이 값을 매기고 시행하고 평가하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아무리 정부가 감독을 한다하더라도 요금에 대한 투명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지금과 같은 논란과 비판이 앞으로도 되풀이 될 것이다. 우리도 이제 독립성과 전문성과 갖춘 전문기관의 육성과 규제기능의 설치를 통해 전력산업의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력정책분야의 전문가집단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독립적인 위상을 부여하고 이에 맞는 역할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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