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세제개편 앞두고 '정면 돌파' 한 목소리
"전기稅 신설하되 세수중립으로 수용성 높여야"

[이투뉴스] 지난해 국내 2인 이상 가구의 한달 평균 전기요금은 4만6000원이다.(통계청) 그런데 가계지출에서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년전(1.5%)보다 오히려 1%P 낮아졌다. 같은 기간 가계지출은 21만4700원에서 32만1700원으로 상승했고, 경유가격은 2001년보다 2.8배 급등했지만 전기료만은 예외였다. 값싼 전기를 공급하는 일이 산업과 국민경제에 보탬이 된다는 정부·정치권의 맹신 탓이다.

이렇게 싼값에 풍족한 에너지를 누려온 국민과 산업계는 자신도 모르게 ‘전기중독자’가 됐다. 상업·주거시설마다 심야보일러와 전기냉난방기(EHP) 열풍이 불었고, 철강 등 제조업체들은 앞다퉈 무리한 설비증설에 나섰다. 그 결과 2001년 3.6%에 머물던 제조업의 전기 가열·건조설비 비중은 2010년 39.0%로 급등했고, 반대로 가정·상업부문의 등유·경유 사용량은 1997년 100만배럴에서 2011년 25만배럴로 급감했다.

부작용은 생각보다 컸다. 대규모 발전소가 추가 건설됐지만 공급을 앞서는 수요증가로 여름·겨울마다 전기가 모자랐다. 값싼 경부하 요금 탓에 고수요가 지속되는 부하평준화가 나타났고, 이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한밤에도 값비싼 LNG발전소를 돌리는 촌극이 빚어졌다. 그 사이 국제 연료가격이 2~3배씩 뛰었지만, 당국은 요금 현실화 대신 ‘기저설비부족론’을 앞세워 대규모 전원 확충에만 목을 맸다.

그렇다고 산업 경쟁력이 나아진 것도 아니다. 자원부국인 미국은 지난해 1000달러의 부가가치(GDP)를 생산하면서 322kWh의 전력을 썼다. 하지만 석유·석탄·가스를 사실상 전량(97%) 수입하는 한국은 같은 재화를 만드는데 476kW의 전기를 쓰고 있다. OECD 평균이 260kWh임을 감안하면 갑절의 비효율이다. 지난해 국내 에너지수입액은 1700억달러로, 주력업종(반도체·자동차·기계) 수출 총액(1400억달러)보다 많다.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에너지가격이 저렴해야 한다는 정부와 산업계의 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을 얻기 어렵게 됐다. 이런 가격구조를 끌고 가면 갈수록 산업전반의 비효율과 무역수지 불균형만 심화될 뿐이다. 여기에 통제할 수 없는 수요증가, 사회적 수용성 저하에 따른 공급능력 확충 지연까지 겹치는 상황은 전문가들이 꼽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뒤늦게 정부는 공급위주 에너지정책을 수요관리 중심으로 전환하고, 원가에 기반한 가격체계를 만들어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향후 에너지가격은 세제개편과 전원비율(Mix) 재조정에 따라 지금보다 크게 상승할 공산이 크다. 정부 스스로 득(得)보다 실(失)이 커지는 '값싼 에너지 시대'의 종언을 고한 셈이다.

물론 예상가능한 저(低) 가격체제의 관성과 국민적 조세저항은 만만찮은 난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이야말로 왜곡된 소비구조를 바로잡고 난마처럼 얽힌 에너지산업의 부조화를 해결할 수 있는 호기라고 말한다. 정부가 과거처럼 눈치만 살피다 실기(失期)하지 말고 정공법으로 산적한 현안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창섭 에너지기본계획 민관워킹그룹 위원장(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은 "이 와중에도 전기수요는 계속 늘 정도로 에너지부문의 왜곡은 보면 볼수록 심각하고 시급한 사안"이라며 "전기요금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조만간 세수 이슈로 전환될텐데, 이때 정부는 가격세제로 정면 돌파하되 가능하면 세수중립으로 조세저항을 완화하고 국민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위원장은 "사실 더 큰 난제는 이 과정에 한전과 발전사, 가스공사, 민간발전사 등의 에너지사업자간 수익률을 조정하는 것인데, 이는 정부의 공학적 역량이나 조정능력을 전제로 한다"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지만 정부가 분명한 명분을 갖고 여론의 지지를 얻어 밀어붙인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과 교수는 "지난 십수년간의 탈석유화와 전기화는 유류에 대한 중과세와 전기에 대한 비과세가 근본적 원인"이라면서 "(에기본)권고안에서는 다소 약하게 언급됐지만 전기에 대한 과세를 신설하지 않으면 현재의 수급위기는 원가를 현실화한다고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그런 측면에서 발전용에 한정해 유연탄에 과세를 신설해야 하고, 부담이 덜한 원자력도 에너지원간 공평과세를 실현할 필요가 있다"며 "기획재정부는 세수증대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석유제품의 중과세를 덜어 세수중립을 꾀하고 에너지만큼은 세제조정 결정권을 산업부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의지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윤기돈 녹색연합 처장은 "정부가 전환수요에 대해 제대로 시그널을 주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전체적으로 에너지비용이 제대로 지불되고 있는지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물가나 산업경쟁력을 이유로 그 비용을 미루면 언젠가 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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