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최근 한전이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강도높은 경영혁신을 요구하는 외부압박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본사 인력 10%정도를 슬림화한 것이 이번 개편의 본질은 아니다. 공기업 한전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지(공공성), 이 시대가 요구하는 한전의 모습은 무엇인지(사업성) 나름 고민하고 그 결과를 새 틀에 일정부문 반영했다는 게 핵심이다.

전력계통본부를 만들어 TO(Transmission Owner)로서의 본분을 챙기기 시작한 것, 신성장동력본부를 꾸려 스마트그리드나 ESS와 같은 미래사업을 끌어안기 시작한 것이 그렇다. 혁신이니, 창조경제니 하는 수사(修辭)보다 이런 작은 변화의 시도가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사실 오늘날 한전의 위기는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 8할 이상이다. 먼저 경영측면의 눈덩이 부채는 이들이 전기요금 결정권을 쥔 채 정치적 판단에 의해 요금을 억누른 결과다. 원가보다 낮은 비용으로 재화를 팔아 버텨낼 기업은 지구상에 없다. 또 공기업 부채는 시차를 두고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 된다.

포퓰리즘이란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국민을 기만하더니 이제와 방만경영을 운운하며 공기업에 책임을 떠넘기는 게 요즘 이들의 행태다. 물론 한전을 비롯한 공기업들의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눈높이와 기대수준에 걸맞는 효율성과 윤리의식을 갖췄는지 자문자답해봐야 한다.

미완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지속적으로 야기하는 혼란도 한전 위기의 또다른 한축이다. 전력산업 내에서 한전의 위상은 갈수록 위축되는 모양새다. 전기가격은 정부가 결정하고, 수급기능은 전력거래소 몫이며, 시장형공기업으로 분가한 발전자회사들은 이미 통제권을 벗어나 있다.

이런 상황에 한전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10년 넘은 전력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리자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지만 적어도 각 부문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는 중간 정리가 필요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야 한전의 역할과 권한이 명징해지고 이들의 미래설계가 구체화된다. 물론 외부환경은 시시각각 변하는데 여전이 굼뜨고 수세적인 한전의 대응은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한전의 이번 조직개편은 난마처럼 얽히고 설킨 전력산업 속에서 한전의 변화의지를 조금이나마 확인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앞으로 전력계통은 전력수급만큼이나 중요한 책무가 될 것이다. 분산형 전원 확대와 스마트그리드 등의 미래 에너지 인프라 확충은 튼튼하고 안전한 전력계통 기반위에서 실현 가능한 일들이다. 조환익 사장이 강조하는 역발상에 비유하면 이같은 흐름은 위기가 아니라 한전이 미래 에너지체제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내부 여건도 나쁘지 않다. 지장(智將)과 덕장(德將)의 면모를 겸비한 조 사장의 리더십이 조직이 순응하는 변화를 이끌고 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같은 변화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조직 혁신은 배가될 것이다. 하루 빨리 한전이 패배의식을 털어버리고 변화의 중심에 서기를 기대한다. 어차피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외부가 한전을 변하게 만들테지만 말이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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