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평균 340명 투입 4개월째 고군분투
연내 3호기, 내년 4호기 가동 가능할 듯

▲ 신고리원전 3,4호기

[이투뉴스] “뜯어낸 케이블(전선)이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바라보면 마음이 너무 착잡합니다. 하지만 한국 원전의 안전의식 수준이 예전보다 나아진 방증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 신고리원전본부 A차장)

18일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한수원 신고리원자력본부 신고리 제2발전소. 공정률 98%의 신고리원전 3호기는 겉으로 보기에 당장이라도 전력을 생산해도 문제가 없을 듯 했다. 실제 이 원전은 작년 10월 시험성적서 위조 의혹을 받아온 JS전선의 케이블이 재시험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기 직전까지 핵연료 장전만을 앞둔 상태였다.

그러나 국내 최초의 1400MW급 원전(APR 1400)인 이 발전소 내부는 그날 이후 원전 역사상 전례가 없는 케이블 교체작업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주요기기와 핏줄처럼 연결된 문제의 케이블을 솎아내느라 마감이 끝난 천정 배관과 바닥이 다시 해체됐고, 외관이 멀쩡한 새 케이블(위조 케이블)이 수톤씩 야적장에 폐기물로 쌓이고 있다.

한수원은 현재 하루 평균 34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4개월째 기존 케이블 철거작업을 벌이고 있다. 오전 7시에 시작된 작업은 오후 6시를 넘겨 야간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7조원(신고리 3,4호기 합계)이나 들인 1400MW급 원전 2기가 제때 가동되지 못해 입는 전력판매 손실액이 하루 십수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물론 케이블 재설치에 드는 약 900억원의 비용은 별도다.

납품가 120억원대 위조부품이 적어도 수십배의 국가적 손실을 끼친 셈이다. 이날 취재진이 둘러본 신고리원전 3호기 내부는 곳곳에서 진행되는 동시다발적 작업으로 어수선했다. 케이블 다발이 부착된 건물 통로 천정을 따라 작업용 비계가 가설돼 있고, 바닥에선 나사 풀린 철제 보호판넬이 발길에 채였다. 세계 최초 디지털 기술을 자랑하는 주제어실도 기존 케이블 철거과정에 바닥이 일부 뜯겨졌다.

현장 인력에 따르면, 발전소 내부에 얽히고 설킨 케이블을 철거하는 작업은 새 원전에 케이블을 포설하는 작업보다 배 이상 까다롭다. 이미 배관을 따라 설치된 수십가닥의 케이블에서 교체대상 케이블을 별도 구분해 철거해야 하는데다, 벽과 벽 사이 씰링(막음작업) 구간이 많아 여간 작업조건이 어려운 게 아니다.

 
사람으로 치면 주요장기와 연결된 혈관에서 따로 신경만을 뽑아낸 뒤 그 자리에 새 신경을 삽입해 정상 반응을 확인한 후 봉합하는 수술과 같다. 한수원은 지난해 10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해당 케이블 재시험 불합격 통보 직후 철거작업에 착수해 최근 3호기 작업을 완료했고, 현재 4호기도 60% 이상 문제의 케이블을 걷어냈다.

신고리원전 3,4호기에 그물망처럼 설치된 케이블 길이는 무려 7300km. 서울-부산을 무려 아홉 번이나 왕복하는 길이다. 이중 교체대상 케이블은 3호기 580km, 4호기 562km 등 모두 1142km. 한수원은 미국 L사(社)에 주문한 케이블이 납품 되는 즉시 신규 케이블 재설치에 나서 3호기의 경우 예정대로 오는 10월께 교체공사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상업운전은 이후 원안위 운영허가가 떨어져야 한다.

신고리 3호기는 한국 고유 노형인 APR1400을 채택한 최초의 원전인데다 아랍에미리트(UAE) 수출원전의 시범모델로, 이전 원전 대비 안전성과 경제성을 크게 높여 해외 경쟁사들의 관심과 시샘을 동시에 받았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기준을 초과하는 자연재해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현존 최고의 안전원전'이란 평도 나온다. 하지만 축배를 들기도 전 불거진 이번 사건에 산업계가 잃은 신뢰는 적지 않다.

신고리원전 관계자는 "현재 4호기 케이블 철거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당초 계획한 일정대로 연내 안정적 전력수급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아픔과 상처가 있겠지만,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한 우리 원전 산업이 이번 일을 계기로 한층 성숙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울산 울주=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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