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첨두 발전원가差 커 전원경쟁 불가
韓 특수성 고려 맞춤형 정책 수립 필요

[이투뉴스] 한 나라의 에너지믹스(Energy Mix)는 에너지정책과 안보를 실현하는 전략계획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에너지믹스의 핵심이 되는 전원믹스는 석유, 가스, 자원 등 다른 1차 에너지 정책계획과 신재생에너지 보급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항상 주요이슈로 다뤄진다.

하지만 국내 전원믹스는 줄곧 상위 정책과 정합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정책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실제 전원믹스가 큰 편차를 보이고 있는데다, 관련정책 수립 때마다 손을 대다보니 하위 및 유관계획의 연쇄 부실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정책과 전원믹스의 괴리와 원인, 개선방향 등을 짚어보고 에너지안보에 특히 취약한 우리나라가 어떤 조합의 믹스를 가져가야 할지 살펴봤다.

원자력·신재생 동시 확대, '녹색뉴딜' 전략의 부조화  
1차 에너지기본계획 기본안 작업을 수행한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08년 당시 2030년의 적정 전원믹스(설비기준)를 원자력 37~42%, 석탄(유연탄)화력 29.9~34.8%, 가스(LNG) 17.7~17.8%, 신재생에너지 8.7% 등으로 제시했다. 불과 1년새 두 배 가까이 오른 국제유가에 적잖이 놀랐던 터라 ‘의지할 건 원자력 밖에 없다’는 기류가 강했다.

2007년말 기준 국내 원별 설비비중(전체 68.2GW)은 원자력 26.0%(17.7GW), 석탄 30.0%(20.4GW), 가스 26.3%(17.9GW), 석유 7.9%(5.4GW), 신재생 2.2%(폐기물 포함) 순을 기록했고, 연간 발전량(40만3125GWh) 비중은 석탄 38.4%, 원자력 35.5%, 가스 19.5%, 석유 5.3% 순으로 나타났다.

이후 공청회와 국가에너지위원회를 거치면서 최종 전원믹스는 다소 변화를 겪었다. 원전은 연구원이 제시한 최고값에서 1%p 낮춘 41%로, 신재생은 원안보다 2%p 높인 11%로 그 비율을 높였다. 원자력 중심의 전원정책에 대한 반대 여론을 누그러뜨리는 과정에 도출된 타협안이었다. 

한국의 전원계획은 같은해 4차 전력수급계획부터 2010년 5차 수급계획, 지난해 6차 계획까지 이 믹스를 근거로 원전과 신재생을 동시 확대하는 기조를 유지했다. 고유가와 기후변화 대응은 원자력으로, 미래 신성장 동력 육성은 신재생으로 각각 역할을 구분했다.

하지만 '녹색뉴딜'을 외쳤던 정부는 국제 에너지시장의 급격한 변화로 불과 5년만에 포트폴리오를 원점에서 다시짜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와 원전 산업계 비리로 원자력의 입지는 크게 위축된 반면 북미지역 셰일가스 개발은 1차 에너지원간 상대가격을 완전히 뒤바꿔 놨다.  

이 기간 유럽 경제위기로 탄소가격은 폭락했고, 그리드 패리티를 운운하던 신재생은 성장판이 막혀 또다시 정책지원만을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또 내부적론 비가격 정책에 의존한 수요관리로 전력소비가 급증해 수급불안이 가중됐고, 원전석탄화력 중심 전원믹스는 송전망 포화와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다.  

5년만에 뒤바뀐 에너지시장…원점서 정책 재검토
2차 에너지기본계획은 이같은 여건 속에 수립된 2035년까지의 최상위 정책계획이다. 정부는 지난해 이 계획을 수립하면서 공급위주 에너지정책을 수요관리로, 중앙집중식 공급시스템을 분산형으로 각각 전환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원전비중은 국민 수용성을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원칙에 따라 정(政)·산(産)·학(學)·민(民)으로 구성된 60여명의 이해관계자(민관워킹그룹)는 50여차례의 회의를 거쳐 작년 10월 2차 에기본 권고안을 발표했다. 물론 관심사는 쟁점이 됐던 전원믹스로 쏠렸다.

워킹그룹은 권고안에서 26% 수준인 원전 비중을 29%로, 2.7% 수준인 신재생은 11%로 각각 높일 것을 주문했다. 또 2035년까지 발전량의 15%를 분산형 전원으로 공급할 것을 권고했다. 단 석탄화력과 LNG의 비중은 차기 전원계획인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결정을 유보했다.

이에 따라 원별 전원믹스는 1차 에기본(2008) 당시 원자력 41%, 석탄화력 32%, LNG 19%, 신재생 11%에서 6차 전력수급계획(2012)상 원자력 27%, 석탄화력 34%, LNG 28% 등으로, 또다시 2차 에기본(2013)에서 원자력 29%, 신재생 11%로 5년안에 두차례나 수정되는 변화를 겪었다.

당시 학계 전문가로 민간워킹그룹에 참여한 한 인사는 "원자력비중을 41%에서 29%로 축소한 것은 다양한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국민 정서를 반영한 조치"라면서 "특히 신재생은 현 시점에서 이를 높이거나 낮출 뚜렷한 근거를 찾지 못해 1차 에기본의 11% 그대로 승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2차 에기본은 지속적인 논란거리가 됐다. 공급위주 정책을 수요관리로 전환하겠다고 했으나 여전히 과거실적에 기초해 수요전망을 부풀렸고, 원전사고 위험 증가와 전력망 불안정성 심화에도 여전히 원전중심의 믹스를 유지했다는 게 시민단체 측의 지적이다.

반면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대응을 위해 이 정도 수준의 원전믹스를 가져가는 것은 에너지자원의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적 결정이며, 그나마 정책수립 과정에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한 것은 의미있는 진전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정책계획 수립방식은 '경직' 외부환경은 '급변'
과거 주요 전원믹스를 둘러싼 공방은 연내 수립될 7차 전력수급계획에서도 그대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전원계획은 상위계획인 에기본의 뱡향성에 맞춰 구체적 전원구성과 확충시기까지 세부적으로 다룬다. 언제 어떤 발전소를 지을지까지 결정해야 하므로, 진영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가치충돌이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 최근 에너지 산업계 안팎에서는 전원믹스의 적절성 논란에 앞서 지금까지 에너지정책과 믹스가 정합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정책이 추구하는 방향성과는 딴판의 전원이 구성되고 있다는 점부터 되짚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정책-믹스간 정합성 부재의 일차적 원인을 경직된 정책계획 대비 변동성이 높아진 외부환경으로 지목하고 있다. 정부는 직접 비용에 기반해 매우 엄격한 형태로 계획을 수립하지만, 이행단계의 주요 변수인 수요, 공급, 연료, 환경, 송전 등의 여건은 과거와 달리 불확실성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6차 전원계획은 석탄 21GW, 원전 15GW, LNG 12GW, 신재생 28GW를 각각 추가하겠다고 했으나 여러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면서 "원전의 경우 3년 정도씩 지연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공급자원과 수요자원도 생각대로 가지않아 수급불안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는 당국이 예측을 잘못했다기보다 에너지자원을 둘러싼 외부역동성과 미래 불확실성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라면서 "앞으로의 계획은 과거처럼 정책적 규제를 갖는 방식보다 원전, 신재생 등의 일부 정책자원을 제외한 나머지 전원을 시장전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전원계획 수립과정에 정부가 의욕만 앞세운 채 달성 불가능한 수요관리 목표와 신재생 확대계획을 상정하는 것도 천연가스 수급계획 등의 유관 계획의 부실화를 초래하는 원인이란 지적도 있다.  

윤원철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수요관리와 신재생을 정책계획으로 가져가는 것은 맞지만 과도하고 현실적이지 못한 목표 설정은 LNG발전과 수급계획의 과소추정을 유발하므로 반드시 제고해야 한다"면서 "향후 수급불안으로 수요를 LNG가 감당해야 할 상황이 되면 이는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원간 원가격차 큰 한국 특수성은 한계
그렇다면 이같은 지적처럼 정책전원만 정부가 결정하고 나머지 전원을 시장에 맡기면 정책-믹스간 부정합 문제는 해소될까. 전력당국은 우리나라처럼 화석연료 수입의존도가 높고 국제유가와 연동되는 가스도입 환경에선 전원간 경쟁적 시장환경 조성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견해다.

한전이 국제에너지기구(IEA)를 통해 수집한 OECD 16개국과 非OECD 4개국의 투자비와 연료비를 자료를 근거로 국가별 발전원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20개국의 원별 발전원가는 원자력이 가스의 81%, 석탄은 가스의 96%로 격차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건설업의 가격경쟁력이 높고 가스발전의 연료비가 다른국가보다 높은 우리는 석탄의 발전원가가 가스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전원간 경쟁이 불가능한 구조다. 일례로 미국의 발전원가(MWh당)는 원전 63.1달러, 석탄 80.2달러, 가스 79.7달러인 반면 한국은 원전 35.6달러, 석탄 68.5달러, 가스 91.7달러다.

가스발전원가를 100으로 봤을 때 원자력은 39, 석탄은 75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김해인 한전 전력수요연구팀 박사는 "우리나라는 국가적 특성으로 다른 나라보다 발전원의 원가격차가 커 전력시장에서 비시장적 규제로 기저설비의 수익을 규제하고 있는 것"이라며 "국내 전력시장의 경쟁도가 낮은 것은 시장운영이 어려운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데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김 박사는 "석탄과 가스발전간 원가가 비슷한 미국이나 영국의 상황을 우리와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면서 "현 시점에서 시장 활성화를 추진하려면 효율성뿐만 아니라 국내 전력산업의 여건을 고려해 맞춤형 규제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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