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진출 후 중소기업 45곳→3곳만 명맥…말뿐인 상생
시장규모 200억 불과한데 막강한 영업력·자금 앞세워 잠식

[이투뉴스] 경제성, 친환경성과 함께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보급사업에 힘입어 활기를 띠고 있는 목재펠릿보일러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추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사안이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펠릿보일러 시장을 놓고 초기부터 참여해 시장을 키워온 중소기업들과 뒤늦게 뛰어들어 막강한 영업력과 자금을 앞세워 시장을 잠식하는 대기업과의 마찰이 어떤 식으로든 교통정리가 이뤄질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귀뚜라미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 연구원들의 특허권 가로채기, 재단의 장학사업 의혹으로 최진민 그룹 회장이 사퇴하는 홍역을 치른데 이어 국가대표 보일러 표현을 놓고 벌이는 소모적 논쟁,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한 끊임없는 소송 등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는 귀뚜라미가 이번에는 시장규모가 약 200억원에 불과한 펠릿보일러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에 전면적으로 제동을 걸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목재펠릿보일러 시장에 진출한 대기업은 귀뚜라미와 경동나비엔 2곳이다. 이 가운데 특히 그룹 매출이 6000억원에 가까운 귀뚜라미가 펠릿보일러 산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 결국 말로만 중소기업과의 상생발전을 외치는 게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대기업 중 한 곳인 경동나비엔은 중소기업과의 상생발전에 동참하겠다며 사업을 정리할 뜻이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귀뚜라미는 그럴 수 없다며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박근혜대통령이 강조하는 중소기업 육성과 궤를 같이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관계를 제로섬(zero-sum) 게임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플러스섬(plus-sum) 게임으로 전환하는 이른바 ‘동반성장 3.0’의 국가정책과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과거 귀뚜라미가 기름보일러를 중속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혜택을 받은 것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귀뚜라미의 행보에 명분과 논리 모두 빈약하다는 견해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내 산업로(爐)와 펠릿연소기 제조업체의 단체인 한국산업로공업협동조합은 지난해 9월 동반성장위원회에 목재펠릿보일러의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을 신청했다.

이후 동반성장위원회는 내부 서류검토와 외부 전문기관의 적합성 용역, 중소기업 측 의견수렴을 위한 간담회, 대기업 측 의견수렴을 위한 간담회에 이어 중소기업·대기업·외부전문가 동반성장위원회 조정위원 합동회의를 2차례 실시했고 오는 20일 3차 회의를 앞두고 있다.

◆中企가 시장 형성하자 대기업 진출
친환경성과 저렴한 연료비가 강점인 목재펠릿은 산림청이 신재생에너지 보급사업 일환으로 2008년 목재펠릿보일러 시범사업에 나서 2009년 가정용 목재펠릿보일러, 2011년 산업용 목재펠릿보일러 보급사업을 전개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산림청이 시범사업을 실시한 2008년 이전부터 제품 시판을 준비해 2009년 산림청과 에너지관리공단을 통해 보급사업이 이뤄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했으며, 대기업은 2009년부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산림청의 목재펠릿보일러 보급사업 인증 및 등록업체와 농림부의 농업용 목재펠릿보일러 사업 참여업체 목록을 근거로 살펴보면 45개 중소기업과 2개 대기업이 등록돼 있다. 그러나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대부분 중소기업은 재정을 견디지 못하고 사실상 사업을 접어 2012년부터는 넥스트에너지코리아, 규원테크, 일도바이오 등 3곳만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동반성장위가 의뢰한 연구용역에 따르면 중소기업 제품과 대기업 제품 간 품질·성능 등 기술수준 격차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기술적으로는 중소기업이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중소기업인 넥스트에너지가 최초로 유럽인증(CE)을 취득했으며, 역시 중소기업인 규원테크가 업계 최초로 펠릿보일러 인증을 획득했고, 펠릿난로 또한 중소기업에서 CE인증을 최초로 진행 중이다.

에너지효율도 마찬가지다. 펠릿보일러 최고 효율은 넥스트에너지가 95.4%로 귀뚜라미에 비해 2~3%높으며, 귀뚜라미와 규원테크의 효율은 비슷한 수준으로 조사됐다.

특허나 실용신안 보유특허 현황에서도 이 같은 기술적 성과가 잘 드러난다. 특허정보넷인 키프리스에 따르면 목재펠릿보일러에 대한 특허 및 실용신안의 경우 모두 62건이 출원돼 중소기업이 50건, 대기업이 12건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판매실적을 살펴보면 모두 2200대가 판매된 가운데 넥스트에너지가 1032대로 1위를 차지했으며, 귀뚜라미 678대, 규원테크 280대, 경동나비엔 179대, 일도바이오 31대 순이다.

결과적으로 대기업이 기술수준은 뛰어나지 못하면서 막강한 영업력과 자금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이 일궈놓은 텃밭을 잠식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업체 기술력 살리는 당위성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을 신청한 한국산업로공업협동조합 측은 첨단기술과 큰 자금이 필요하지 않은 작은 시장까지 대기업이 진출해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면서 시장을 뺏으려는 것은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려는 정부정책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신청 배경을 설명했다.

이 같은 견해는 유관기관을 비롯해 연구기관, 민간기관의 해당산업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진출할 만큼 시장규모가 크지 않을뿐더러, 첨단기술을 필요로 하는 품목도 아니고, 제품 생산라인 구축을 위해 많은 금액의 설비투자가 진행돼야 하는 산업도 아니라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시장규모 수준은 대기업이 축소 혹은 이양을 할지라도 중소기업 영역에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연구기관 관계자는 “대기업의 경우 기존의 판매망을 활용하고, 자동화 시설로 제조단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보급률을 높이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은 향후 시장을 내다보고 제품을 연구하고 있는데다 기술력도 대기업보다 뛰어난 실정”이라며 “대기업 제품에 대한 불만신고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고, 또 시장규모가 적은데다, 중소기업이 수요에 맞게 공급할만한 여건이 된다는 점에서 중소기업 제품만으로 시장을 형성하는데 무리가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을 때의 경쟁력 강화 가능성에 대해 “제품개발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열의가 뜨겁고, 사후관리에도 이상이 없는데다 국가보전사업으로도 명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앞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 가능성은 높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산업 전반에 걸친 파급효과에 대해서도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긍정적인 영향이 기대됐다. 민간기관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의 자금력을 앞세운 단가인하 경쟁이 없다면 오히려 중소기업이 제값을 받고 팔수 있는 계기가 돼, 그 수익을 제품개발로 환원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리라 본다”고 전망했다.

또한 “스몰자이언츠라는 용어가 있듯, 이 분야에서 중소기업이 지속적으로 역량을 발전시키고 기술을 개발한다면 내수시장 뿐만 아니라 글로벌 이슈인 기후변화협약의 일환으로 동남아시아 수출 등을 통한 시장확대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채제용 기자 top27@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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