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에너지기본계획 개정안, 어떤 내용 담겼나
에너지시장 전면 자유화로 경쟁·효율 촉진

[이투뉴스] 에너지수급 여건상 한국과 일본은 여러모로 닮은 꼴이다. 에너지·자원을 사실상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실도 그렇거니와 남북으로 갈린 한국의 지정학적 공급여건은 섬나라 일본과 다를 게 없다. 여기에 원자력을 기저전원을 가져가는 정책도 유사하며, 에너지시장의 구조개편과 시장개방을 추구하는 방향성도 흡사하다. 이 때문에 일본의 에너지정책은 종종 국내 정책의 모델이 되고 있으며 일정 시차를 두고 국내 정책에 흡수 반영되기도 한다.

한국 에너지정책의 참고서이자 반면교사 대상이 되고 있는 일본 에너지정책이 지난 2월말 에너지기본계획 3차 개정안을 통해 또다시 큰틀의 변화를 시작했다. 일본 에너지기본계획은 에너지정책기본법에 따라 수립되는 향후 20년간의 정책계획으로, 2003년 초안 수립 이후 2007년 1차 개정과 2010년 2차 개정을 거쳐 이번에 3차 개정안을 마련했다. 우리나라의 2차 에너지기본계획과 동일한 법적 위상을 지녀 양국 정책 방향을 비교·분석하는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개정안의 주요내용과 의미를 들여다봤다.

"기책(奇策)은 안 통한다" 에너지정책 급선회 
"에너지는 인간의 모든 활동을 지탱해주는 기반이다. 안정적이고 사회적 부담이 적은 에너지공급을 실현하는 에너지 수급구조의 실현은 일본이 더 큰 발전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일본의 에너지수급구조는 취약성을 안고 있으며, 특히 동일본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직면한 과제를 극복하기 위한 수급구조의 개혁을 대담하게 추진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일본 에너지기본계획 개정안중 에너지정책의 기본 관점인 '3E+S'를 재확인한 대목에 서술된 내용이다. 

'3E+S'는 안정성(Safety)을 전제로 에너지안보와 안정적공급(Energy Security)을 우선 시 하면서 최소한의 경제적 부담(Economic Efficiency)과 환경성(Environment)을 도모한다는 일본 에너지정책의 기본방향을 함축하고 있다. 에너지안보를 최우선 가치로 안정적이고 경제적이면서 환경부담을 최소화하는 에너지공급을 추구하는 우리의 정책 방향과도 외연상 다를 게 없다. 다만 일본은 자민당 집권 이후 민주당의 탈원전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이번 개정안에 강한 원전 재가동 의지를 담은 것은 특징이다.

일단 개정안은 "(동일본) 대지진 이전의 에너지전략을 백지화하고 재검토한다"는 대전제를 분명히 하고 있다. 또 정부 및 원자력사업자가 '안전신화'에 빠져 비참한 사태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하며 원전의존을 가능한 한 낮춰야 한다고도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여기까지다. 이후는 소위 아베노믹스에 힘입은 경기회복 동향과 2020 도쿄 올림픽 등의 국제적 이벤트를 거론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안정적 에너지수급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적화된 에너지 수급구조를 도출하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에너지정책에 기책(奇策)은 통하지 않는다"며 현실적인 대처를 주문하고 있다. 여기서 현실적 대처란 LNG 등 화석연료 수입 급증으로 심화된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정지 원전의 조기 재가동을 의미한다. 일본의 무역수지는 원전 정지 이후 2011년 31년만에 적자전환한 뒤 지난해 11조5000억엔의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또 동경전력 등 6개 발전사가 연료가격을 이유로 전기료 인상에 나서면서 가정용 표준세대 요금이 20%가량 상승했다.

원자력·석탄을 중요 기저전원으로 재정의
자민당 정권은 이런 배경에서 에너지원별 정책방향을 다시 짰다. 우선 원자력은 안전성 확보를 대전제로 중요 기저전원으로서 재가동을 추진하되 재생에너지 도입 및 화력발전 고효율화 등에 따라 그 의존도는 낮춰나간다는 계획이다. 

개정안은 "원자력은 뛰어난 안정공급성과 효율성을 지니고 있고 운전비용이 저렴하고 온실가스 배출도 없다는 점에서 안전성 확보를 대전제로 에너지수급구조의 안전성에 기여할 중요한 기저전원"이라며 "원전의 안전성은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전문적인 판단에 맡기고, 그 판단을 존중해 원전 재가동을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2013년부터 3년간 고정가격매수제를 통해 도입을 확대하되 향후 경제성과 균형을 이룬 개발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현 시점에서 공급안정성과 비용측면에 여러 과제가 존재하지만 온실가슬 배출하지 않고 국내 생산이 가능해 에너지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유망하고 다양한 국산 에너지원이라고 정의했다.

석탄과 LNG에 대한 평가도 다시 내렸다. 석탄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낮고 저렴하다는 점에서 중요 기저전원으로 재평가하고, LNG는 가격이 높으므로 과도한 의존을 피하되 열병합 등 전원 분산화용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에너지수급 측면에서는 고효율화와 수요관리에 방점을 찍었다. 우선 에너지 사용 효율화를 위해 2030년까지 고효율조명기기를 100% 보급하고, 신축주택의 제로에너지하우스를 실현하는 한편 BEMS 도입을 촉진키로 했다. 또 2020년대 초반까지 스마트미터 보급을 완료하고 수요관리사업자를 육성해 유연한 소비를 유도하는 수요관리 방안도 기본계획에 포함시켰다.

옥기열 전력거래소 전원계획팀 차장은 "일본 에너지정책은 외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 가능한 다층·다양화된 에너지수급구조를 지향하면서 필요에 따라 과감한 정책 추진력을 발휘해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하는 우리 정책 환경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전력·가스·열 에너지시장 구조개편 광풍 
일본은 에너지수급 구조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동시에 전력, 가스, 열공급 등 모든 에너지시장의 기존 장벽을 허무는 구조개편을 강도높게 추진하고 있다. 기술혁신에 따라 각 에너지원의 고효율화와 용도 다양화가 진행되면서 일정 조건 아래 효율적 분배에 이바지하고 있던 기존 산업구조가 오히려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을 낳는 구조가 되고 있다는 문제 인식이다.

우선 전력산업은 지역을 초월한 광역계통운영과 소매·발전의 전면 자유화가 추진되고 있다. 앞서 지난해 4월 일본 내각은 광역계통 운영과 소매·발전의 전면 자유화 및 법적 분리방식에 따른 송·배전 부문의 중립성 확보를 골자로 하는 '전력시스템 개혁방침'을 확정했다. 이와 관련한 1단계 전기사업법 개정안은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고, 올해와 내년에는 각각 2,3단계 개정법안이 제출될 예정이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대한 최종 정책완료 목표년도는 2020년까지다.

시장 완전 개방으로 전력공급의 안정성이 훼손될 가능성에 대비한 전력시스템 개혁작업도 병행 추진되고 있다. 일본은 계통운영자에 의한 조정 전원 조달제도나 소매사업자에 대한 공급력 확보 의무 부과, 광역 추진기관에 의한 발전소 건설 사업자 모집 및 지역간 연계송전선 인프라 증강 제도 등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공급 안정성을 높여나간다는 구상이다. 산업은 시장자유화로 효율을 극대화하고, 공급시스템은 적절한 규제개입을 통해 안정성을 담보한다는 양면 전략이다. 일본의 이같은 구조개편은 소매시장 개방을 검토하고 있는 국내 정책방향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시장 구조개편은 가스와 열공급 시스템도 예외를 두지 않고 있다. 일본은 전력보다 앞서 가스시장의 자유화를 추진해 현재 전체 수요의 65%를 개방했고, 이중 15%를 신규 사업자가 점유하고 있다. 일본은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소매의 전면자유화와 LNG기지 및 가스배관망에 대한 접근성 향상과 제도개편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에너지기본계획은 "가스시스템 개혁은 이용형태의 다변화를 촉진하는 것이 중요한 열쇠"라면서 "LNG열병합, 전력피크 완화용 가스공조 확대, 연료전지의 수소공급을 위한 원료로서의 역할도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밖에 개정안은 우리나라 지역냉·난방 사업에 해당하는 열공급 시장도 전력, 가스 시스템 개혁에 준하는 효율화 방안을 강구하고 사업방향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옥기열 차장은 "일본은 전력구조개혁을 기폭제로 에너지산업구조를 대전환하고 발전, 가스, 석유, 자원을 아우로는 종합에너지기업의 육성을 통해 효율성 제고와 경쟁력 강화, 국제시장 개척 등을 도모하고 있다"며 "지난 십수년간 구조개편 논의가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우리 실정에 비춰보면 상당히 파격적이며 강도 높은 정책 추진이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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