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남식 외교안보연구원, 안보통일연구부 조교수

영국 유학시절 북해를 건너는 페리에 몸을 싣는 호사를 부린 적이 있다. 끝간 데 없는 논문 작업으로 학교와 집을 오가는 쳇바퀴 생활에 기진할 즈음이었다. 거리 여행사 창에 붙어있는 소위 ‘라스트미닛 세일’(Last minute sale)로 우리돈 7만~8만원에 북해를 왕복했던 것이다. 가난한 유학생이었지만 차가운 북해를 거쳐 스칸디나비아에 다녀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설레이고 행복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북잉글랜드의 뉴카슬 타인마우스 항구를 출발해 베르겐으로 가는 페리에서 바라본 한겨울 밤의 북해는 암흑과 절망과 한파의 바다였다. 마치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마주하는 사해(死海)가 이름 그대로 죽음의 바다인 것처럼 북해 역시 아무 가능성없는 죽음의 밤바다였다. 추위를 더 견디지 못하고 객실로 내려가는 순간 갑자기 배 이물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궁금해서 뱃머리쪽을 쳐다보는 순간 나는 그동안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장관을 목도하고 있었다.


바로 해상 유전에서 솟아오르는 불기둥이었다. 칠흑같은 어둠은 이미 물러가고 없었고, 꽤 멀리 떨어져있음직한데도 그 열기가 온몸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새벽 두시경 그 차갑고 어두운 바다 북해 위로 솟아오르는 불기둥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뛰게하고 있었다. 갑판에 선 이들은 그 불기둥 사이를 지나는 선상에서 침묵으로 그 감동을 갈무리했다. 뱃고물편으로 불기둥들이 하나둘씩 멀어져가며 그제서야 마치 꿈에서 깨듯 사람들은 주섬주섬 이야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아무런 희망도 없어보이던 북해의 심연에서 인류를 살리는 불기둥이 솟고 있다. 절망의 극한에서 소중한 가치가 새어나오고 있다. 따지고 보면 열사의 땅 사막에서 솟아나는 원유와 한동안 잊혀졌던 바다 카스피해에 묻혀있는 탄화수소 자원들 그리고 동토의 시베리아 밑에 켜켜이 쌓여있을 에너지원들은 모두 절망의 자리를 비집고 자신들이 드러나길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아무 쓸모없고 죽은 줄만 알았던 사해 바다 그 짠 물과 진흙속에 막대한 미네랄과 자원이 품어져있다는 사실과 같은 맥락이다. 이제 인류에겐 버려진 땅과 바다와 하늘은 없다. 어느 곳이든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으로 그 속 깊숙이 숨겨진 가능성들을 짚어내야 할 지혜를 함께 나누어야 한다. 남들이 보아내지 못하는 곳, 그 가능성, 그 미래를 예리하게 통찰해내는 눈초리의 역할을 담당하는 선각자들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으며 그 역할을 기꺼이 수임하며 길을 여는 ‘에너지일보’가 되기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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