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서울 삼성동 한전 사옥 한 지붕 아래 지내다가 분가한 발전자회사들을 지켜보면 요즘 그런 비유가 떠오른다. 장성한 자식들이 독립해 하나둘 부모 곁을 떠나 듯, 자회사들도 모기업인 한전의 그늘을 벗어나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부모-자식 간 사이가 이럴진데 여섯 형제 사이는 두 말할 나위 없다. 불과 수년 사이 부쩍 소원해진 느낌이다. 발전산업 분할 이후 십수년이 흘러서이기도 하겠지만, ‘몸’이 멀어진 영향이 적잖아 보인다.

이태 전으로 거슬러 가보자. 발단은 타지에서 온 엄부 'JK'가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머리가 굵어서도 어미 품을 떠나지 않는 자회사들을 내심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때마침 가세(家勢)도 급격히 기울어 가장의 심기도 편치 않던 시절이다. 결국 중부, 남부, 남동, 서부 등 네 아들은 쫓겨나듯 정든 본가를 떠나야 했다. 공교롭게 막내 격인 동서와 호적을 파낸 거래소는 별채(별관)를 쓰고 있다는 이유로 퇴거명령을 피했다.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난 네 아들은 삼성동 2km 반경에 집성촌을 형성했다. 부근에 샛방을 구하지 못한 서부가 차선책으로 역삼동을 선택한 정도다. 한전가 특성상 수시로 만나 대소사를 논의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모자간, 형제간 마음의 거리는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 지붕 아래 엘리베이터만 타면 수시로 만날 수 있던 예전과 비교해 눈에 띄게 왕래가 줄었다. 여기에 수시로 성적표를 내밀며 형제간 경쟁을 유도하는 큰집 덕분에 관계는 하루가 다르게 서먹해졌다.

"늘 비교당하다보니 형제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옛정을 생각해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분루를 삼켰다"는 흉흉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돌았다. 또 그렇게 몇 해가 지나는 동안 자연스레 ‘원-캡코(One-KEPCO)'에서 태어나지 않은 식솔들이 늘어났다. 독립심이 강해진 일부 자회사는 조심스럽게 모기업을 향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불과 수년 사이 확연히 달라진 가풍이다.

올해를 기점으로 한전가는 또다른 형태의 세태 변화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남동과 동서는 삼성동을 떠나 진주와 울산 시민이 됐다. 일찍이 자아가 남달랐던 한수원은 한차례 모진 시련을 겪긴 했지만 여전히 세를 불리며 모기업만큼 덩치를 키우고 있다. 올 연말엔 한전이 나주로 떠나고, 늦어도 내년 하반기까지 나머지 자회사도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진다. 이렇게 몇 해가 더 흐르면 한전가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이 세상 이치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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