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나는 필요하다면 학계가 쓴소리를 해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책이나 정부 비판적인 주제발표를 요청하면, 취지는 좋지만 나서지는 않겠다고 하더라. 연구비도 받고 하다보니 꿀먹은 벙어리가 돼 아무소리도 못하고 있다. 날카로운 비판을 주저한다. 사실은 책임 회피다. 목소리를 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걸 안하는 거다.”

학계의 소신있는 정책 비판이 아쉽다고 운을 떼자 전력·계통분야 중진인 문영현 연세대 전기공학부 교수가 인터뷰 석상에서 털어놓았던 한탄이다. 연구용역 수주 압박에 내몰린 교수사회의 비루한 현실이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문 교수의 직설적 비판처럼 유독 전력·에너지 분야 학자들의 정부와 정책 비판은 최근 수년간 뚜렷히 약화되고 있다.

자칭타칭 ‘최고의 지성집단’이라는 학계의 침묵은 일종의 학습효과 탓이다. 특히 정부나 막강한 이해집단을 겨냥한 비판은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어느날 갑자기 정책자문단 풀(Pool)에서 이름석자가 사라지거나 대규모 연구개발사업에서 홀로 배제될 수 있다. 한동안 재야투쟁을 벌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의도적인 집단따돌림 뿐이다.

그러니 애초 독야청정 독자생존이 불가능하다면, 소위 말을 삼가고 상황변화에 민첩하게 처신하는 게 상책일지 모른다. 최근 이 정부가 ‘옥동자’로 키워내기로 작정한 ESS 문제를 다루면서 다시 한 번 전력·에너지계에 만연한 학자들의 보신주의를 절감했다. 자문을 구한 학자 가운데 실명보도에 동의한 몇몇 교수를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에게서다.

'말 못할, 말하지 않는' 사연은 다양했다. 가장 흔한 것은 난처한 입장을 이해해 달라는 거절형. "문제가 좀 있다는 건 알지만 지금 관련된 일을 봐주고 있어 대외적으로 발언하는 게 곤란하다"는 식이었다. 또 일부 인사는 "모처럼 의욕적으로 해보려는 것 같던데 벌써 김을 뺄 것 있겠냐"며 대놓고 정부를 두둔하기도 했다. 어쨌든 특정사안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은 개인의 자유이고 나름의 처세다.

하지만 정부-산업계-기관 사이에 끼어 비판기능을 상실한 학계는 스스로 집단지성의 권위와 명예를 좀먹는 것이 아닌가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더 정확히는 중진교수의 지적대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잘못된 것을 잘못했다고 주저없이 말하는 그런 입바른 학자가 갈수록 그립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이투뉴스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빠르고 알찬 에너지·경제·자원·환경 뉴스>

<ⓒ모바일 이투뉴스 - 실시간·인기·포토뉴스 제공 m.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