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구조 다각화로 체질 개선…장기적 성장 발판 마련
정부 성공불융자, 투자위험 보증 등 정책적 지원 필요

[이투뉴스] "정유사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최근 하나둘 퇴사한다고 한다. 국내 정유사의 미래가 어둡다 판단해 새 길을 찾는 것이다. 정유사들이 정말 어려운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동산 원유를 수입해 정제마진으로 수익을 내던 정유사가 변화하는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한계에 부딪힌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에너지분야의 한 교수가 최근 에너지 시장을 전망하며 한 말이다. 그 교수는 국내 정유사의 한 임원과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퇴사 물결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며 정유사가 직면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정유사의 어려움은 각종 지표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지난 2분기 실적 발표에서 국내 정유 4사 중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나머지 3곳 모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오일뱅크 만이 매출액 5조2167억원에 영업이익 394억원을 기록했다. 업계 1위인 SK이노베이션은 매출액 16조4937억원, 영업손실 503억원을 냈다. GS칼텍스는 10조1967억원 매출에 710억원을 영업손실로 냈고, 에쓰오일 역시 7조4188억원 매출에 54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적자로 전환했다.

▲ 정유사의 수출용 컨테이너 출하기지에 윤활유가 가득차 있다.


◆정유사 불황 2년 넘게 지속

문제는 정유사의 실적 악화가 2분기에 한해 일시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정유사의 불황은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고 했지만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정유사의 불황이 국내 정유사 만에 국한된 건 아니다. 세계적인 정유사들도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국의 엑손모빌은 순이익이 20% 감소했고, 영국의 BP도 8% 감소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국내 정유사들은 순이익이 70%가 넘게 감소했다. 상대적으로 감소폭이 매우 크다는 점이 위기를 논하게 한다.

국내 정유사의 이익이 큰 폭으로 떨어진 데는 정유 마진 감소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국내 정유사들의 정유 부문이 총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적으로 75%를 이상 된다. 총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유부분의 영업이익률이 지난 2년 사이 3%대에서 1%대로 삼분의 일로 줄어들자 정유사들이 줄줄이 적자로 전환됐다.

여기에 정유 부문의 실적 부진을 만회해 주던 석유화학 부문에서도 시련이 닥치며 정유사의 시름을 더했다. 세계적 경기침체가 최대 소비시장인 중국 경제에 덮치며 석유화학 분야를 좌절케 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경기가 개선되고 있다지만 중국 경기 회복 및 소비 증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중국이 그간 자체 생산시설을 대폭 늘려 국내 정유사들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낮춘 점도 잿빛 전망에 한 몫 한다. 중국에 직접 PX공장을 설립하는 등 중국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국내 정유사들은 현재로서는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사업구조조정, 인력 감축 등 몸집 줄이기

탈출구를 찾지 못한 정유사들은 사업구조조정 및 인력 감축 등 몸집 줄이기를 시작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40~50대 직원들을 중심으로 명예ㆍ희망퇴직 등의 구조조정을 했다. 희망퇴직자들에게는 현대오일뱅크 직영주유소 위탁운영권을 줘 보상에 나선 것. GS칼텍스는 지난 5월 석유화학사업본부와 윤활유사업본부를 1개 본부로 통합하고 경영지원본부를 폐지하는 등 본부 조직을 7개에서 5개로 감소하고, 임원수도 59명에서 50명으로 줄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비핵심 자산 매각에 나섰다. 9월 초 SK이노베이션 계열사인 SK유화를 SK케미칼에 290억원에 매각했다. SK유화는 2008년 SK케미칼로부터 매입한 회사로, 페트병과 폴리에스터 옷감 원료로 쓰이는 PTA에 사용되는 DMT를 생산하는 업체다. 최근 PTA 시황이 좋지 않아 적자가 누적되며 PTA설비 가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이 해당 사업을 정리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장기적 시각에서 체질 강화 이뤄야

전문가들은 정유사들의 출구는 장기적인 시각으로 체질 개선을 이루는 것이라고 주문한다. 국내 정유사들이 정유 부문 쏠림에서 벗어나 사업구조 다각화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국내 정유사들의 순이익이 70% 이상 감소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감소 폭이 적은 글로벌 정유업체들은 앞서 정유부문 외 자원개발 등 사업 다각화를 이뤘다는 점을 새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정유사들도 체질 개선 노력을 보이고 있다. GS칼텍스는 최근 생산이 늘고 있는 미국산 콘텐세이트(초경질유)를 수입해 주목을 받았다. 미국산 초경질유는 생산이 늘고 있지만 국내까지 운송료 등을 고려할 때 경제적 부분에서 아직 손익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산 초경질유를 수송할 경우 중동산 원유보다 배럴당 3.5달러의 추가비용이 소요된다.

더욱이 GS칼텍스는 공급사인 미국 엔터프라이즈 프로덕츠 파트너스로부터 낙찰받은 초경질유를 일본 미쓰이상사로부터 비싼 가격에 재구매해 많은 시선을 받았다. 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가 미쓰이상사와 1차 입찰에 참여했다가 엔터프라이즈의 고가의 판매가격 제시에 입찰을 포기했었던 바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에너지경제연구원은 GS칼텍스가 비싼 가격에 미쓰이로부터 재구매 한 것은 향후 미국산 초경질유 수출 물량 확대에 대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동에서 벗어나 원유 수입처 다변화를 계산한 투자라는 것이다.

▲ sk이노베이션 석유개발 광구인 미국 오클라호마주 그랜트 카운티와 가필드 카운티 생산 광구에서 원유가 생산되고 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비전통자원 개발에 적극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지난달 셰일혁명의 본거지인 미국에서 셰일가스∙오일을 비롯한 비전통자원 개발사업에 본격 참여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구 부회장은 "미국 석유개발 법인을 셰일 등 비전통자원개발 사업의 글로벌 전초기지로 발전 시키겠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6월 오클라호마, 텍사스 생산광구를 인수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오클라호마 광구에서 생산하는 원유와 가스의 약 15%는 셰일층에서 시추하고 있다"며 사실상 셰일자원을 생산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즉 국내 기업 중 해외 자원광구에서 셰일가스∙오일을 직접 생산하는 곳은 SK이노베이션이 유일하다.

정부도 정유사들이 사업 다각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공불융자와 투자위험 보증 등은 실패의 경우가 많은 자원개발 사업 시 초기 투자비를 정부로부터 빌리고 성공하면 수익에 비례해 갚도록해 기업들이 해외 자원개발에 나서는 데 겪는 위험 부담을 크게 줄여준다. 관련 재원을 보다 많이 확보해 줘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윤애 기자 paver@e2news.com

<ⓒ이투뉴스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빠르고 알찬 에너지·경제·자원·환경 뉴스>

<ⓒ모바일 이투뉴스 - 실시간·인기·포토뉴스 제공 m.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