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탱고 현상 심화ㆍ유종간 가격차 축소 등

올해 국제석유시장은 지난해에 이어 고유가 추세가 지속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시장의 변동성이 컸던 한 해였다. 연초 두바이기준으로 배럴당 55달러 수준이던 국제유가는 예상치 못 한 이란 핵문제 등 지정학적 불안요인이 가중되면서 8월 초에는 배럴당 70달러 선을 넘어서는 등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공행진을 계속할 것만 같았던 국제유가는 9월 중순까지 한 달여간 20% 가량 급락하면서 이후 최근까지 배럴당 55~60달러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석유시장은 2003년 이후 구조적 상승요인이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산유국의 공급불안 등 일시적 돌발요인이 작용해 지난해 이상의 고유가 수준이 유지된 해"라고 평가했다. 이에 본지에서는 올해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석유시장의 특징을 살펴봤다.

 

올해 석유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연초부터 시작된 지정학적 요인으로 유가의 변동성이 크게 증대했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 시작과 동시에 불거진 이란 핵문제와 돌발적인 이스라엘-레바논 사태 등으로 인한 공급차질 우려감으로 석유시장의 리스크프리미엄에 따른 시장 변동성이 어느 때보다도 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석유공사 해외조사팀의 이상미 대리는 "산유국의 정정불안에 따른 석유시장의 불안감이 더욱 가중된 것은 지난 2003년 이후 석유시장의 구조적 변화로 인해 잉여생산여력이 제약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재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잉여생산능력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일산 100만배럴 내외에 그치고 있어 조그마한 공급차질 우려감에도 유가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 캠브리지 에너지연구소(CERA)는 개발비용 증대와 타이트한 수급상황 하에서 이란 핵문제 등 지정학적 불안요인으로 올해 들어 지정학적 위험비용이 배럴당 20달러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콘탱고 현상이 심화된 석유시장

 <용어설명> 콘탱고(contango)
선물가격(先物價格)이 현물가격(現物價格)보다 높거나 결제월에 멀수록 높아지는 상태로 선물고평가(先物高評價)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선물은 이자와 창고료·보험료 등 보유비용이 소요되므로 현물보다 가격이 높고, 결제월이 먼 것이 가까운 것보다 가격이 높다. 이런 상태의 시장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데, 흔히 정상시장(正常市場)이라고 한다.

올해 석유시장의 또 다른 큰 특징은 석유시장의 가격구조에서 콘탱고(contango, 선물가격이 현물가격보다 높은 상태) 현상이 심화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석유시장은 현물시장가격이 선물시장가격보다 높은 상태를 보이는 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난 2004년 말부터 시장의 콘탱고 현상이 지속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견해를 보이고 있으나 '석유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임지수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의 콘탱고 심화 현상은 잉여 생산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저장비용 상승 및 향후 유가강세에 대한 기대심리가 반영된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가급락에 대비한 OPEC의 신속한 대응조치 또한 올 한해 석유시장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9월 중순 이후 OPEC은 유가가 급락하자 10월과 12월 두 차례 총회를 통해 총 일산 170만배럴 감산을 결정하는 등 신속하게 대응하면서 유가하락을 저지했다. 11월부터 시행된 OPEC의 감산 이행규모에 대해서는 기관별로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OPEC은 합의된 감산물량의 60% 이상을 성공적으로 감축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미 대리는 "OPEC은 12월 총회에서는 추가감산을 단행해 내년도 상반기 석유시장 공급과잉 현상으로 인한 수급불균형 심화 및 소비국 재고 증대를 우려해 선제방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내년부터 앙골라가 OPEC의 회원국으로 신규 가입한 점은 OPEC 공급능력이 제고돼 앞으로 석유시장 통제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는데 일조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종간 가격차 축소
유종 간 가격차가 축소됐다는 점도 올해 석유시장의 특징으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세계대표 3대 유종인 두바이유ㆍ브렌트유ㆍ서부 텍사스 중질유의 가격은 품질ㆍ구매시장 등에 따라 가격차이가 발생했다. 통상 브렌트유는 두바이유보다 배럴당 1.5~2달러 정도 높고, 서부 텍사스 중질유는 두바이유보다 3~4달러가 높다.


그러나 올해 4분기 이후 이들 유종 간 가격차가 현격히 축소됐으며 브렌트유는 서부 텍사스 중질유에 비해 오히려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상미 대리는 "이들 3대 유종 간 가격차가 축소된 이유는 서부 텍사스 중질유가 약세를 면치 못한 반면 브렌트유와 두바이유는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석유공사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두바이유 강세는 고유가로 인해 미국 등 선진국의 석유수요는 정체하거나 감퇴상태를 보인 반면 상대적으로 오일머니 유입으로 경기호황을 맞고 있는 중동의 석유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추세에 있으며 중국 등 아시아 개도국의 수요 강세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 초 급부상한 이란 핵문제로 인해 중동산 원유 공급차질에 대한 우려감이 높아진 점도 두바이유 강세의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반면 서부 텍사스 중질유는 미국의 수요정체와 높은 재고수준 등으로 인해 약세를 보였다.


한편 내년도 석유시장은 세계석유수급ㆍ지정학적 요인ㆍOPEC의 시장정책ㆍ투기자금 동향 등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특히 내년도 수급상황은 올해보다 다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타이트한 수급 구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마땅한 투자 대상을 찾지 못한 국제 석유산업

 

올해 국제 석유산업은 석유개발 부문에서 석유회사들과 소비국들은 산유국 자원통제 강화에 따른 접근ㆍ투자기회 제한으로 매장량 확보에 더욱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유가에 따른 이익창출에도 불구하고 산유국의 자원통제와 소비국의 '전략적' 자원 확보 경쟁, 해외자원개발(E&P) 비용 증가 등으로 마땅한 투자 대상을 찾지 못했다.


아울러 고유가 및 산유국 영향력 증대 등 시장환경 변화에 따라 새로운 '자원내셔널리즘'이 득세한 한 해였다.
실제로 베네수엘라는 세금ㆍ로열티율 인상 등 계약조건 강화와 계약형태 변경을 통한 국영석유사 참여 확대 등 석유자원에 대한 국가 통제를 주도했으며 러시아도 주변지역 영향력 강화를 위해 1월 초 우크라이나 가스공급을 전격 중단함으로써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유럽의 공급안보까지 위협하기도 했다.


또한 올 한해 국제 석유산업은 중국 등 신흥 소비대국 국영석유사들이 자국 소비증가 및 생산정체에 따라 공격적인 해외 진출전략을 추구함으로써 석유자산 확보 경쟁을 격화시켰다. 이와 관련 투자 활성화에 따른 기술인력, 자재 및 시추선 부족으로 해외자원개발 비용이 크게 상승해 평균 개발비용은 석유환산배럴(BOE)당 13~15달러를 기록했다.


따라서 석유회사들은 이 같은 환경변화에 대응, 장기성장을 위해 높은 리스크와 낮은 수익률을 감수하면서 프론티어 지역 및 분야에 진출했다. 우리나라도 석유공사를 선두로 고유가 및 기술발전으로 경제성이 크게 개선되고 있는 오일샌드 등 비전통 석유개발 참여로 스펙트럼을 확대했다.


한편 국내 석유산업, 특히 정유부문은 고도화설비 비율이 향후 관건이 될 전망이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국내 정유산업은 고도화설비 비율이 낮아 국제 정제마진의 회복 여부에 따라 경영실적이 좌우되는 경향을 보여왔다"면서 "따라서 올해보다 내년에 실적이 나아질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재중 우리투자증권 연구원도 "내년 내수 정제마진은 올해에 비해 5% 감소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그 이유로 "정유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의혹 조사 등에 따라 국제시세 변동폭에 못 미치는 가격 인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 정유사들의 매출대비 영업이익율은 지난 상반기 5.4%를 기록, 작년에 비해 0.6%포인트 하락한 데 이어 3분기에는 4.1%로 작년 동기의 5.8%에 비해 크게 꺾이는 등 좋지않은 환경을 맞고 있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