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한국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2004년 판매분할(소매경쟁) 중단 이후 시간이 그대로 멈춰있다. 그리고 미완의 이 구조개편은 소위 시장론자들이나 과거 ‘원 캡코(One Kepco ; 통합한전)’ 회귀를 이야기 하는 이들에게 공히 ‘잃어버린 10년’이다. 한쪽에선 기득권과 사회주의 편향적인 공기업주의가 연합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한탄하고 있고, 다른 쪽에선 국민편익 증진을 이루지 못한 지금까지의 노정은 도대체 누굴 위한 길이냐면서 구조개편 자체를 진즉 폐기처분해야 할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하고 있다.

어찌됐건 그렇게 양측이 지난한 논쟁을 주고받는 사이 우리의 전력산업은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 또는 정체기로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더 빠르게 전력산업의 내외부 환경이 변하고 있다. 전력수요는 성장판이 닫히고 있고 산업간 교차진출로 업종간 경계는 사라지고 있다. 게다가 전력사업의 불확실성은 오히려 증대되고 있다. 민영화 또는 국유화, 시장 또는 반시장, 경쟁 또는 독점 등의 과거와 같은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더 이상 소모적 논쟁을 지속할 시간이 없다.

변화된 세월에 걸맞은 진단과 처방이 제시되려면 전력산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전력수급계획 수립부터 가격결정, 산업육성에 이르기까지 정부개입을 최소하해야 한다. 대증요법을 동원해 손을 대면 댈수록 후진적 정책만 양산될 뿐이다. 전문성 없는 정부가 전력산업을 관치로 끌고가는 지난 십수년간 이미 수업료는 충분히 지불했다. 안정적 전력공급, 미래 경쟁력 확보 등 어느 것하나 이룬 것이 없다. 지금의 전력산업은 무능한 집도의(정부)가 배를 갈라 놓고 쩔쩔매면서 환자의 생명만 더 위태롭게 하는 형국이다. 나름 최선을 다했다며 서운한 맘이 들겠지만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수술대를 떠나는 게 맞다.

다행히 극심한 전력수급난이 해소되는 현 시점은 정부가 전력산업에서 손을 떼기에 최적기다. 일단 심폐소생술로 호흡가 맥박이 되돌아 왔으니 진단부터 처방까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시간을 번 셈이다. 진영을 떠나 집단지성을 결집하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부 관여없이 전력산업의 정상화는 가능하다. 정부가 할 일은 전력산업 주체들간 협진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수술실 밖에서 정치권의 간섭을 방어하고 보호자에 해당하는 국민들을 설득하는 일 뿐이다.

물론 전력산업이 당면한 현실은 여전히 위태롭다. 발전설비 규모 면에서 덩치는 몰라보게 커졌지만 이를 지탱해야 할 전력계통은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모르는 약체다. '시장으로, 세계로, 미래로'라는 그럴싸한 구호보다 기초체력에 해당하는 계통안정성을 먼저 보강해야 한다. 또 부존자원이 전무한 에너지수급 여건상 애시당초 불가능한 전원간 경쟁 체제 대신 국민 수용성을 높이고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에너지믹스 전략을 다시 수립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전력을 산업이나 경제의 종속 개념으로 보는 정부와 국민의 시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값싸고 질좋은 전기는 없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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