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주문 불구 政 핵심 쟁점 미루기 일관
산업환경 급변속 구조변화 최적기 실기 우려

▲ 지난 9월 4일 서울 삼성동 옛 한전 본사 대강당에서 열린 에너지신산업 대토론회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신산업 시연회장을 방문해 조환익 한전 사장으로부터 전기차 충전 및 v2g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투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에너지신산업 육성을 위해 “민간의 진입장벽과 규제를 과감히 허물어야 한다”고 주지하고 있다. 또 “기업이 적극 투자할 수 있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정부와 공공부문의 역할이 중요하다”, “규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빨리 푸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지론을 설파한 바 있다. (에너지신산업 대토론회 발언 中)

이같은 ‘대한민국 선장’의 완곡한 주문을 우리 행정부는 얼마나 이행하고 있을까. 에너지산업을 둘러싼 내외부 환경은 시시각각 변화하는데 “시장으로, 미래로, 세계로” 나아가자는 대통령의 당부를 ‘몸통’인 정부는 얼마나 재빠르게 행동과 실행으로 뒷받침 하고 있는걸까. 언뜻 볼 때 정부의 움직임은 과거보다 기민하고 민첩해 보인다.

이미 하반기에 ESS(전력저장장치), 스마트그리드, 전기차 및 V2G(Vehicle-to-Grid) 보급확산을 위한 제도정비를 완료했고, 전력 소비자가 ‘아낀 전기’를 내다팔 수 있는 수요자원시장을 개설했다. 하지만 혁신의 요체이자 신산업육성의 선결과제라 할 수 있는 핵심사안에 있어선 여전히 미적이며 ‘시간끌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단기간에 보여주기 좋은 소위 이들 ‘액세서리 상품’만 진열대에 잔뜩 올려놓은 채 산업혁신의 방아쇠가 될 전력 판매시장 경쟁도입은 ‘금기어(禁忌語)’로 다루고 있고, ‘소비자 보호’란 명분으로 이뤄지는 정부의 시장개입은 되레 과거보다 주도면밀해지고 변화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서다.

15일 전력산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작년 9월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의뢰한 ‘전력산업 발전방안’ 용역안의 중간보고서를 최근 제출받아 검토한 뒤 현재 연구원 측에 해외사례 추가분석 등 보완을 요구한 상태다. 이 과정에 당초 올해 3분기로 예정돼 있던 보고서 완료시점은 4분기로 한차례 연장됐고, 현재는 연내 완료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산업부 당국자는 보고서 완성이 지체되고 있는 배경에 대해 “보완작업중 연구책임자가 연구원 행정프로세스상 갑자기 바뀌는 일이 있었고, 연말이라 마무리중인데 최종본은 아직 넘어오지 않았다”면서, 최종보고서 완료시점에 대해선 “완성도를 높여달라고 주문한 상태인데, 보완을 지속 요청할 수 있으므로 시한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해당보고서의 완성시점과 내용을 놓고 산업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정부가 한전이 독점한 전력 소매시장을 민간에 점진 개방한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에서 이 보고서가 급변하는 전력산업 환경을 폭넓게 짚어보고, 이를 토대로 우리 산업이 어떤 전략과 방향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지를 다룬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2004년 배전분할 중단 이후 모처럼 정부가 전력산업 구조변화에 대한 원론적 방향설정을 재점검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용역보고서가 아닌 향후 정책방향에 대한 일종의 지침서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 하지만 정부는 이같은 관심에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호소하며 특정의도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산업부 핵심당국자는 “이번 연구의 목적은 처음부터 글로벌 동향이 어떠냐를 짚어보는 것이었지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청사진이나 아이디어 제시가 아니었다”고 전제한 뒤 “중요한 보고서이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그런 내용은 분명 아니다”고 재차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중간보고서를 점검한 결과 영국, 미국 등 전형적인 일부국가 사례들에 치우친 면이 있어 우리나라와 경제산업 및 전력구조가 유사한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등은 어떻게 변했고, 그런 글로벌 동향에 비춰 에너지신산업 육성 등 우리정책이 길을 잘 가고 있는지를 팔로업하는 보완을 요구한 것”이라며 별도의 보고서 발표계획도 없음을 시사했다.

산업부의 이같은 수세적 해명에 대해 경쟁촉진과 시장개방을 위한 규제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산업계와 일부 학계 진영은 정부가 정치권 내지는 야당 측을 지나치게 의식해 몸을 사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쟁점화 될 것이 두려워 건설적인 논쟁기회조차 갖지 않고 시간만 끌고 있다”는 것이다.

학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필요하다면 국회와 얘기하면서 대안을 수렴해가야 하는데, 지금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일단 쟁점화 돼 시끌벅적해지는 상황자체를 꺼리고 있다”면서 “전력수급 여건이나 변화를 수용하는 국민의식 수준으로 볼 때 지금이 구조적 변화의 최적기인데 '몸통'인 주무부처는 요지부동하면서 그 기회를 잃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 관계자는 “최종 의사결정은 정부 몫이 아니더라도 주무부처가 의지를 안보이면 청와대가 해보자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 지금처럼 당장 1~2년내 성과에 급급해 본질을 건드리지 않고 계속 간다면, 종국엔 급변하는 외부요인에 의해 어설픈 수동적 변화를 맞게 되고 시장선점 기회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감한 정책변화와 ‘속도전’ 강조하는 대통령의 주문과 달리 정부의 ‘시간끌기’ 신공은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부문에서도 유사한 병폐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애초 연내 골격을 잡기로 일정이 잡힌 법정계획인 7차 수급계획은 원전 이슈와 맞물려 사실상 내년 하반기로 1년 이상 일정이 지체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정부는 전력당국 측에 당분간 수급계획 작업을 유보하도록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올초 산업부는 이번 7차 계획부터 수급계획을 정책계획으로 전환한다는 방침 아래 기존처럼 건설의향평가로 발전사업을 인가하지 않고 전기위원회의 인·허가만으로 계획 반영여부를 결정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발전업계 한 관계자는 “말로는 시장의 자율로 경쟁을 제고한다면서 여전히 정부는 시장진입 또는 퇴출, 심지어 수익부분까지 깊숙이 계속 관여하겠다는 심산”이라며 “모든 것을 다 쥐고 하겠다는 것과 필요 시 최소한의 개입으로 촘촘히 규제하는 것은 차원과 수준이 다른 얘기다. 정책 선진화에 대한 기대를 진즉에 접었다”고 푸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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