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단돈 1만5000원과 두 권의 시집을 들고 무모한 전국일주에 나섰던 고교시절 때 일이다. 히치하이킹, 그것도 안 되면 무작정 걷기, 날 저물면 교회나 기차역 노숙 등으로 버티며 가까스로 동해를 거쳐 태백까지 흘러들었다. 그런데 장성동 진폐병원을 둘러본 뒤 저물기 전 완행열차를 타고 영주로 이동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수중에 남은 돈이 3000원밖에 없었다. 어차피 무전여행을 생각했던 터라 각오는 했지만  막상 갈 곳 없는 탄광촌에 고립될 처지가 되니 앞이 캄캄해졌다. 당시 태백역~영주역 구간의 기찻삯으로는 가진 돈이 수천원 모자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쩔 줄 모르고 한두 시간을 서성이다가 어렵게 매표원에 앞에 섰다. “외상표를 끊어주면 훗날 꼭 갚겠다”는 말을 꺼낼 참이었다. 그런 나를 오랫동안 지켜봤던 것일까. 선한 인상의 50대 역무원은 “돈이 모자란데…”란 말이 입밖에 나오기 무섭게 개의치 말란 표정으로 차표를 건넸다. 물론 이름을 묻거나 언제까지 갚으란 얘기도 없었다. 지금까지도 당시 철도청에 빚을 지고 사는 이유다.

지난주 나주 혁신도시로 본사를 이전한 한전 등 공기업을 출입한 뒤 상경을 위해 어둑해진 광주송정역으로 들어섰다. 호남고속철도 개통을 3개월여 앞둔 송정역은 현 역사 인근에 번듯한 새 역사를 올리는 공사가 한창이다. 자동매표기 앞에서 KTX 표를 끊으려는데 문득 이십여년전 그날 그 장면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때 그가 건넨 차표 덕분에 모처럼 따뜻한 실내에서 곤한 잠을 청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경영효율을 중시하는 코레일은 최근 들어 부쩍 다양한 요금제와 할인상품을 내놓는 모양이다. KTX열차의 경우 승차율에 따라 운임을 최소 15%에서 최대 30%까지 할인해주는 요금제를 운영 중이다. 그러면서 영동선과 같은 일부 적자노선은 민간에 개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소식이다. 언젠가 전력도 통신이나 철도처럼 경쟁도입이 불가피해 보인다. "수개월째 전기료를 내지 못한 공장을 단전하러 갔다가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한전 직원의 마음씨도 머잖아 옛 이야기가 될 듯 싶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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