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전력산업연구센터 센터장(경제학 박사)

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전력산업연구센터
센터장(경제학 박사)
[이투뉴스 칼럼 / 이창호] 올겨울 유난히 빨리 찾아온 추위에도 불구하고 전력수급은 별문제가 없이 넘어갈 것 같다. 수년 동안 전력산업을 옥죄던 수급 불안, 요금 정상화, 송전망 확장, 원전 등 난제들 중 원전문제를 제외하고는 그런 대로 봉합된 상태다. 현재 우리의 발전설비 규모는 9300만kW로 대체로 8800∼9000만kW의 공급능력을 확보하고 있어 올 들어 지금까지 최대수요인 7960만kW에 견주어 볼 때 약 1000만kW 수준의 예비력을 확보하고 있다. 전기요금 정상화도 지속적인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해 한전의 전력 구매비용이 상당부분 줄어 현시점에서 요금 인상을 주장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송전망 문제는 밀양사태 등이 마무리됨으로 인해 일단 당면한 현안은 봉합된 상태다.

우리나라에서 전력산업의 문제가 지금처럼 사회적, 정치적 이슈로 등장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고 중요한 문제들이 그동안 우리의 독특한 전력산업구조와 관리체제로 인해 국민들의 관심밖에 있었다. 사실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나 9·15 정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전력은 정부, 전력회사 등 관련된 집단의 내부적인 문제에 머물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전력이나 에너지문제가 더 이상 몇몇 집단과 소수의 ‘관할’이었던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요즘 굵직굵직한 큰 사건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지금은 소위 전문영역에 속하던 것들이 순식간에 대중화되고 일반화되는 실시간 정보화 시대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쏟아내는 엄청난 정보, 전문가나 관련자들의 설명으로 누구라도 관심만 있으면 반전문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전력이나 에너지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전력이나 에너지의 의사결정에서 사회적 합의 내지는 공감대가 미치는 영향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 전력산업의 구조와 시스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해당사자나 전문가 몇 사람에 의해 그때그때 상황논리로 결정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대체하거나 작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겪었던 문제를 되돌아보자. 낮은 전기요금으로 인해 전력수요는 늘어나고 공급설비는 부족해지는 수급불안이 야기되었다. 결국 수요관리와 더불어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추가설비를 건설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요는 수그러들고 속속 발전소들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언제 그랬느냔 듯이 이제는 공급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공급과잉을 우려하게 되고 조만간 발전원가가 높은 발전소는 가동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발전사업자들은 수익이 줄어든다고 아우성을 치게 되고 이제는 남아도는 설비가 골칫거리가 된다. 수급상황에 의해 어느 정도의 조정이 이루어지겠지만, 설비과잉에 따른 공급비용의 상승은 누군가 부담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현실적인 상황에 지나치게 고려하여 개입하면 이미 마련해 놓은 정책방향과 계획을 수정하게 되고 결국은 ‘boom and burst’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지금 우리 전력산업은 수요 중심, 분산형 시스템, 친환경, 안전 및 안정공급이라는 정책목표를 정하고 그동안 공급 중심, 집중형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정책 목표에 이르게 되기까지는 세계 에너지시장이나 정책 추세, 사회적 수용성과 니즈, 기술진보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결국 국가나 사회의 의사결정과정에 이미 과거와는 다르게 훨씬 많은 참여자들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러한 목표를 구체화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기준과 절차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정책목표는 그저 담론에 머물고 실행방안은 또다시 과거의 틀에서 이루어진다면 정책이나 제도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햇볕 날 때 우산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 수급이 안정되고 발등의 불이 잠잠할 때 앞날을 대비한 전력-에너지시스템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전력산업에는 아직도 수면아래 있는 난제들이 적지 않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전력의 수급여건과 현실은 상당히 심각하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이 산재돼 있어 사회적인 갈등과 엄청난 비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와 같은 전력공급 방식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이미 해법을 찾고 있다. 우선 수도권의 수급불균형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대규모 발전과 송전 확장 문제도 따지고 보면 수도권의 공급력 부족에 기인한 바 크다. 또한 수요관리, 에너지절약, 분산전원의 문제는 전력-에너지산업의 핵심 아젠다이다. 이 문제는 개별적인 해법보다는 수요측 자원의 확보, 사회구성원간 에너지 분담이라는 큰 틀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여기에 스마트기술의 결합도 가시적인 성과로 구체화가 필요하다. 만약 이러한 난제들이 해결된다면 그동안 닫혀있던 전력산업이  변신하고 새로운 산업으로 나갈 수 있는 커다란 동력이 될 것이다. 이제 그동안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만든 전력산업의 밑그림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서둘러 실행을 위한 제도와 세부기준을 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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