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조 환경운동연합 국토정책팀 간사

환경보다 수입차 업계 배려인가


EU와 통상문제 우려했다면 구체적으로 밝혀야
지난해 12월21일 환경부가 또 다시 수입 자동차에 대한 특혜성 조치를 발표했다. 2006년 1월 수입 휘발유 자동차에 대해 ‘3년 간 배출가스 기준 유예’라는 특혜를 준 데 이어 이번엔 ‘배출가스 자기진단 장치(On-Board Diagnostics : OBD)’ 부착 시행을 2년 간 유예했다. OBD 부착 시행을 불과 열흘 남기고 주한유럽상공회의소의 제안을 모두 수용해 규정을 변경한 것이다.

 

환경부, 유럽 자동차업계 특혜

사실 수입 자동차에 대한 OBD 부착 시행은 이미 한 차례 유예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국내 휘발유 자동차의 경우 2005년부터 매년 총 출고의 10%(2005년), 30%(2006년), 100%(2007년 예정)의 비중으로 OBD 부착이 시행돼 왔다. 반면에 수입 자동차의 경우에는 2년 간 부착 유예라는 특혜를 준 뒤 2007년부터 OBD 부착을 100% 적용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었다.

이런 환경부의 조치 때문에 대부분의 수입 자동차 업체들은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미국식 OBD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디젤 자동차로 전환하는 등 자구책을 준비해 왔다. 그러나 일부 수입 자동차 업체들은 OBD 개발과 같은 대안을 모색하기보다는 주한유럽상공회의소와 유럽연합(EU) 자동차분과위원회를 통해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만 했다.
결국 환경부의 조치는 3년 간 OBD 부착을 유예해 준 수입 자동차 업계에 2년이라는 시간을 덤으로 얹어줌으로써 말 그대로 ‘특혜’를 주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더구나 이런 환경부의 조치는 그간 큰 노력을 기울이며 환경변화에 대비해 온 수입 자동차 업체들로부터 일관성이 결여된 정책이라는 비웃음도 살 게 뻔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환경부는 유럽을 상대로 한 수출차량과 수입차량의 금액 비율이 8 대 1이라는 것은 무시하고 30 대 1인 판매대수 비율만 부각시켜 ‘유럽과의 통상문제가 우려돼 유예조치를 실시했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환경부는 정작 어떤 ‘통상문제’가 우려되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기업이 떼쓰면 다 들어주는 환경부

환경부의 이번 조치로 시민들은 더 많은 자동차 배출가스를 마시게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국내외에서 환경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땅으로 떨어진 점이다. 한 마디로 ‘기업이 떼쓰면 다 들어준다’는 인식을 국내외에 널리 알린 것이다.
지난 2003년 12월 환경부는 자동차 배출가스로 인한 대기오염을 저감시키기 위해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을 강화하고 OBD를 부착하도록 대기환경보전법을 개정했다. 2004년 6월에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에 OBD 부착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해 OBD 부착 시행의 중요성과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이 떼만 쓰면 이런 정책은 항상 뒷걸음했다. 2004년 ‘현대자동차 3.5t 이하 경유 상용차에 대한 배출가스 허용기준 2달 유예’, 2006년 ‘수입 휘발유 차량에 대한 배출가스 허용기준 3년 유예’, 2006년 ‘GM대우 경상용차 다마스, 라보에 대한 배출가스 기준 유예 요구’ 그리고 이번 OBD 부착 유예까지 열거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디젤 자동차의 OBD 장착은 예정대로 2007년부터 모든 차량을 대상으로 시행하면서, 휘발유 자동차 중 수입 자동차에 대해서만 OBD 장착을 유예해주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목표를 상실한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 따라 쉽게 정책이 좌지우지되는 이런 상황은 환경부 스스로 자신의 존재이유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환경부의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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