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악화 이유로 포퓰리즘 에너지가격 손질

[이투뉴스]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휘발유는 갤런당 약 45센트(한화 약 490원)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더 싸다. 쿠웨이트와 카타르에서는 에너지가격이 너무 낮아 아무도 없는 집에도 에어컨을 켜놓는다고 한다.

이처럼 산유국들의 정부 유가 보조금은 에너지가격을 낮추고 소비를 촉진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원유 생산량의 4분의 1을 자국내에서 소비한다. 1970년대 3%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늘었다. 인구가 늘고 석유로 전력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간 것일까. 유가 하락으로 재정적자에 직면한 산유국들이 유가 보조금을 줄줄이 축소하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이들의 보조금 축소는 원유 수출이 국가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재정을 안정화시키려는 목적이다.

최근 몇일간 유가는 다소 회복 조짐을 보였지만 지난해 최고가에 비하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지난해 1월 1일 인도네시아 정부는 40년간 유지한 휘발유 보조금 정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인도는 디젤 보조금을 폐지하고 연료세를 올렸다.

말레이시아도 지난해말 휘발유와 디젤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했다. 아프리카의 주요 산유국인 앙골라는 지난해 1월 휘발유와 디젤 가격을 올렸다. 가나도 유가 보조금을 없애고 나이지리아는 이달 총선 이후 이 추세를 따라갈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작년초 휘발유 보조금을 내렸다.

라이스 대학의 중동 에너지 전문가인 짐 크레인은 "산유국들은 자국내 에너지 가격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연료 가격 뿐만 아니라 전기와 수도도 포함된다. 이 지역 대부분의 물은 화석연료를 연료로 이용한 담수화 과정을 거쳐 생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유가 때문에 원유 수출에서 이윤이 줄어든 산유국들은 보조금 삭감을 할 재정적 이유가 생겼다"고 덧붙였다. 산유국들의 이런 보조금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5400억달러에 달한다. 지난 수십년간 정치적 지원을 얻기 위해서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 보조금은 경제 개발을 지연시키고 화석연료 이용을 촉진하고 효율 향상을 늦춰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자 쿠웨이트와 오만, 아부 다비는 전력과 경유, 천연가스 보조금을 삭감하기 시작했다.

쿠웨이트는 재정 압박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등유와 디젤 가격을 3배까지 올릴 계획이다. 그러나 휘발유와 전력에 대한 보조금은 유지될 것으로 관측됐다.

이집트는 지난해 봄부터 에너지 보조금을 삭감하기 시작해 에너지 개혁을 가속화하고 있다. 상당한 양의 원유를 수입하는 인도와 이집트, 인도네시아는 보조금 삭감으로 국가 재정을 절약할 뿐만 아니라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무역 균형을 맞출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산유국과 수입국 모두 보조금은 사회 프로그램이나 다른 투자로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아부다비 국영 청정에너지 기업인 마스다르사의 회장이자 유나이티드 아랍 에미레이트 내무부 장관인 술탄 아메드 알 자버는 "보조금 삭감에서 절약된 기금은 에너지시스템 향상에 사용될 것이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회복과 미래 발전에 대해 교육함으로써 경제를 탈바꿈할 것"이라고 최근 말했다.

수년간 국제통화기금(IMF)과 월드뱅크는 중동 산유국들과 개도국들에게 유가 보조금을 줄일 것을 촉구했다. 지난해 10월 보고서를 통해 IMF는 보조금은 가격을 왜곡시키고 과소비를 부추긴다고 밝혔다.

IMF는 "과소비는 교통 체증과 건강,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보조금은 에너지 분야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밀수와 암시장 활동을 부추겨 보조금을 받은 제품의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1년부터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는 보조금 축소를 위한 더딘 개혁이 진행돼 왔다. 요르단과 이집트, 모로코, 수단, 투니지아, 예멘, 모리타이아 등지에서 에너지 가격을 올리려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의 정치적 불안은 변화의 속도를 늦추었다. 보조금을 가장 많이 지원하는 사우디와 러시아, 베네수엘라는 개혁을 위한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었다.

보조금 삭감은 종종 정치적 반발을 야기하기 때문이라고 에너지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지난 1993년 베네수엘라와 1998년 인도네이사에서는 에너지 보조금 축소로 심각한 정치적 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최근 나이지리아와 요르단, 에콰도르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지난해 12월 아부 다비에서 열린 에너지 컨퍼런스에서 마리아 반 데 호이븐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각국 에너지 장관들에게 "유가가 낮아진 지금이 보조금을 줄일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탄소에 가격을 매기고 화석연료 보조금을 축소할 적기"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정유사들이 개발에 대한 감세 혜택을 받고 있지만 에너지 소비에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으며 화석연료 가격을 통제하지 않고 있다. 반면 도로와 다리 보수를 위해 휘발유 세금을 올려야할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시애틀=조민영 기자 myjo@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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