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인하요인 검토과정서 '벼락치기' 논의…부실검토 우려도

[이투뉴스] 두달 전(12월 15일)쯤이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중 대통령 말씀이다. “국제유가 하락분이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에도 즉각 반영되도록 해서 서민가계 주름살이 조금이나마 펴질 수 있도록 해달라.”

예상밖 대통령 발언에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이보다 석달 전 에너지시장의 과감한 규제개혁을 주문하면서 대통령이 제시한 즉석 구호는 ‘시장으로, 미래로, 세계로’였다. (에너지신산업 대토론회)

“‘이건 아닌데…’하면서 한숨을 내쉬었을 사람이 여럿이었을 것”이다.(A 경제학과 교수) 어찌됐건 ‘어명’을 받든 정부는 즉각 가스요금을 6% 가까이 내렸다. 전기요금은 인상요인까지 두루 살펴본 뒤 늦어도 내달까지 인하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일단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에너지산업·시장 발전의 최대 걸림돌로 누누이 지적돼 온 포퓰리즘의 망령 부활에 산업계는 골 깊은 무력감을 맛봐야 했다. 여기저기서 “이번엔 다를 것이라 기대했는데 역시나”란 반응이 나왔다.

대통령 발언 이후 주당 5만원을 바라보던 한전 주가는 이틀만에 15% 주저 앉았고, 유가하락으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던 에너지신산업 업종도 요금인하 전망에 된서리를 맞았다. 혼란스럽기는 정부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지금껏 정부는 정치적 판단을 충실히 따르는 에너지가격 정책을 고수해 왔다. 유가가 급등했다고, 인상요인이 추가로 발생했다고 이를 제때, 액면그대로 소매요금에 반영한 적이 없다. 송전선로 주변 보상비, 지역자원시설세, 유연탄 개별소비세, 배출권 거래제 등 아직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인상요인이 쌓여있다.

그런데 인하요인을 정확히 따져보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이들 사안까지 들춰보고 결론을 내야할 처지가 된 것이다.

마음이 다급해진 당국은 현재 벼락치기식 전력시장 개선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표면적 명분은 저유가 상황을 기회로 기존의 불합리한 시장제도를 정상화하자는 것이지만, 속내는 청와대와 재정당국의 전기료 인하 검토요구와 무관치 않다.

한편으론 이참에 그동안 고개 돌려온 발전사들의 고충을 일부나마 해소해 주겠다는 생각도 있어 보인다. 이와 관련 산업부와 전력거래소는 한전, 발전자회사, 민간발전사, 지역난방공사 등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변동비반영(CBP) 전력시장 개선'을 주제로 사실상 매주 정례 협의체를 가동하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계통제약 발전전력량 정산금(SCON) 개선방안을, 지난 6일에는 AS 정산금(계통보조서비스) 확대방안을 각각 논의했고, 조만간 송전접속비와 수전요금 현실화 방안에 대해서도 각계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 산업부는 과거와 달리 신속한 개선안 도출과 규칙개정을 주문해 눈길을 끌고 있다.

용량요금(CP) 현실화처럼 도매요금 변화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사안들은 아니지만 도매 전력시장의 매전수익률과 적게나마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발전사들의 반응은 대체로 고무적이다. 특히 LNG복합 가동률 저하로 경영위기에 처한 민간발전사들은 달라진 정부 자세에 다소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다.

지금까지 이들은 CP 현실화를 일종의 'LNG복합 출구전략'으로 일관되게 요구해 왔다.

당국의 일사천리 시장개선 논의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개선안을 실제 제도로 반영하기까지 적잖은 검토와 시간이 필요한데다 전체 시장을 조망하지 않는 개별적 접근이 자칫 현행 CBP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가 만든 각본을 중심없는 정부가 연출하고, 이 드라마에 발전사들이 매번 조연으로 동원되는 전력시장의 현실은 씁쓸하기 그지 없다. 전력 정책에 관한한 여전히 정치는 후진적이고, 정부는 중심이 없으며, 전력시장 이해관계자들은 갈대처럼 여리고 뿌리가 얕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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