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력 논쟁·원전 이슈 등에 밀려 대체건설 위기
전력수급계획 패러다임 전환 호기 살려야

[이투뉴스] 짧게는 35년, 길게는 40년이 넘게 쉼 없이 노역했다. 고도성장기 우리나라 경제의 기초 양분인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새 발전소들에 밀려 갈수록 가동률이 급감했다. 노후화로 고장·사고 위험도 상승해 폐지-대체란 절차를 밟는 게 순리인 듯 했다.

하지만 2011년 9.15 순환정전 사태와 동시에 발발한 수급대란으로 이조차 여의치 않았다. 여러모로 무리였지만 정부가 부여한 마지막 미션을 완수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훗날 이런 사정을 감안한 당국의 배려가 있을 것이라 내심 믿은 측면도 있었다.

어찌됐건 새 대형 석탄·LNG발전소 가동과 정지원전 재가동으로 전력수급은 완전히 숨통을 텄다. 일부 노후원전은 개보수 후 수명연장 허가를 받기도 했다. 문제는 묵묵히 소임을 다한 그 이후에 발생했다. 공(功)을 알아주기는커녕 아무도 '명예로운 퇴역과 새 출발'을 반겨주지 않았다. 

올 상반기 수립 예정인 산업통상자원부의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앞두고 ‘토사구팽’ 처지가 된 일부 노후화력 발전소들 얘기다. 8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이런 사정으로 40년을 넘겨 사실상 무대책으로 존치되고 있는 설비는 호남화력, 울산화력, 영동화력 등 140만kW 안팎이다.

호남화력이 두차례나 수명연장에 나서 43년, 울산화력은 무려 45년이 된 극노후 설비를 지금까지 운용중이다. 중유나 유연탄, 국내탄 등을 연료로 쓰는 이들설비는 효율저하와 설비불안으로 가동률이 저조한데다, 워낙 노후화 정도가 심해 상시 고장·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태다. 

그러나 정부와 전력당국은 대체건설 허용(폐지 후 수급계획 반영)이나 정책성 전원으로의 우선반영이 시급하다는 이들의 하소연에 대해 1년이 넘도록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산업부의 경우 “아직 필요물량도 도출되지 않은 단계”라며 공론화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다.

물론 당국도 이 사안의 심각성에 대해선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작년 상반기에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각각 규제개선과 관련 민원을 제기했고, 정부도 6차 수급계획 이후 차기 계획(7차)에서 노후대체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규모 신규 발전설비 확충으로 최근 과잉예비력 논쟁이 불거지자 수급계획에 대한 정부 입장이 한층 수세적으로 바뀌었고, 여기에 원전 추가건설을 둘러싼 논란까지 가열되면서 이 문제가 부차적 현안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이런 기류에 노후설비를 보유한 일부 발전사들은 애를 태우고 있다. 이들이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대로 정부가 노후대체 현안을 미온적으로 끌고 가다 ▶수급계획 소위에서 수요전망 필요물량을 ‘0MW’ 수준으로 도출하고 ▶설비소위에서 역시 이 문제가 논의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이런 수순으로 논의가 전개돼 또 다시 노후대체 반영이 무산되면, 일부 발전공기업의 경우 대체건설로 전환 투입해야 할 발전소당 수백명 규모의 발전사 및 하청협력사 인력 업무공백이 발생해 파행적인 인력운용이 불가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가 상위 정책계획인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분산형 전원체제로의 전환'을 공언한 상태에서 경쟁논리를 앞세워 신규 송전선로 건설이 불필요하고 별도의 새 부지를 확보하지 않아도 되는 기존 노후설비에 역차별을 준다는 측면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당국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이번 7차 계획은 신규 발전소 일변도의 수급계획 패러다임을 자연스럽게 노후설비 대체건설로 전환할 수 있는 최적기"라면서 "40년 이상 장기간 전력수급에 기여한 발전소에 한해 정책전원 수준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말했다.

문영현 연세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전력수요 증가율 둔화를 놓고 장기수요도 감소할 것이라 보는 시각이 있지만, 저유가가 유지되면 산업경기가 살아나 생각보다 수요가 상당히 상승할 수 있다"면서 "예측불가능한 북한 정세에 만발의 태세를 갖춘다는 측면에서도 충분한 예비력 확보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노후화력 대체건설 논의에 대해서도 "부지가 확보된 발전소를 활용하는 것은 전력부족으로 사회적 혼란을 겪은 과거 상황에 비춰볼 때 행복한 고민"이라며 "노후화력이나 원전을 제외하고도 충분한 공급설비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수급계획이 수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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