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이투뉴스 칼럼 / 이창호] 최근 들어 전력시장에서의 도매가격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2012년에는 연평균가격이 kWh당 160원 이상까지 치솟기도 하였으나, 작년에는 140원대로 낮아졌으며, 올 들어서는 벌써 120원대 까지 떨어졌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가장 큰 원인은 작년부터 속속 들어서고 있는 석탄 등 신규 발전소 때문이다. 전력가격은 2007년까지만 해도 80원대 이하였으나, 2008년 이후 유가급등과 전력수급이 빠듯해지면서부터 100원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발전설비가 부족하다보니 비싼 연료를 쓰는 발전소를 돌려야하는 상황이 지속되었고, 매년 전력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수년간 지속되었다. 이로 인해 소매요금보다도 도매가격이 훨씬 높은 비정상적인 상황이 전력시장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근래 들어 전력시장 가격이 낮아지면서 사업자는 물론 관련자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전력가격을 대부분 결정하던 가스복합이나 열병합설비의 가동률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들 설비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더구나 최근 대규모 신형설비의 준공으로 인해 가스복합설비 내에서 치킨게임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멀쩡한 기존 설비들의 상당수가 유휴설비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 시장과 경쟁이라는 이름하에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이 국가자원의 효율성 측면에서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전력시장이라는 신호가 어떻게 작동하던 간에 ‘발전사업’이라는 차를 몰고 있는 시장참여자나 투자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이 신호를 보고 달려가는 운전자의 오판이나 탐욕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시장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모든 주체가 함께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구조개편 중단이라는 담론 속에 방치해두었던 전력시장을 다시 조명해볼 때이다.    

우리의 전력시장은 도입초기부터 지금까지 사실상 비정상적의 연속이었다. 공급자만 있는 반쪽짜리 시장에서 공급자 비용에 얼추 맞춰주고자 비용평가니 보정계수니 용량지불액과 같은 여러 요소가 군더더기처럼 달라붙는 형태로 유지되어 왔다. 이러한 문제는 원자력, 석탄, 가스복합이라는 전원구성의 획일성, 전원 간 연료가격 차이에 따른 공급비용의 경직성, 공기업과 민간으로 이원화된 가격산정 방식의 차별성 등 이미 예견된 것 들이었다. 문제는 시장과 경쟁이라는 원론적인 원칙만으로 수급안정과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전력시장을 다시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식의 시장운영방식에 지나치게 매달려온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전력시장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전력거래, 시장운영, 가격결정방식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작년부터 ‘정부승인차액계약제’에 의한 전력거래 도입이 결정되어 부분적으로 진행 중에 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력거래에 있어 장기계약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으로 설비투자와 운영의 안정성을 높이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다만 과거와 같은 전력회사나 정부주도의 방식에서 벗어나 거래의 공정성과 시장여건이 반영될 수 있도록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설비의 수익보전에서 탈피하여 설비조달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도록 표준적인 가격산정기준과 절차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원자력과 석탄 등 시장가격보다 낮은 특정전원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전력수급과 가격의 안정성 관점에서 폭넓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를 통해 전력구매자는 안정적인 전력공급과 구입비용의 변동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고 발전사는 대규모 투자에 따른 재무적 위험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현재 판매독점의 구조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만 제도적으로 해결해 준다면 계약시장이 현물시장의 불완전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다음으로 시장기능의 회복이다. 지금의 비용평가방식은 시장참여자의 노력이나 의지와는 큰 상관없이 제3자가 평가한 비용에 의해 운전여부와 대가가 결정되는 구조이다. 설비가 부족한 시기에는 효율이 낮은 설비의 비용으로 인해 수익으로 얻겠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효율이 조금이라도 높은 설비 때문에 운전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여러 전원을 가지고 있는 대규모 발전사라면 이러한 변동성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지만, 특정 전원만으로 운영되는 사업자는 심각한 재무적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러한 우려가 최근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으며, 가스발전에 대한 활용성 제고나 용량요금 손질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가격입찰도 가격신호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아무리 용량요금을 손질하고 자잘한 비용으로 이리저리 처방 한들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시적으로 발전사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설비예비력이 높아진다면 계속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입지와 송전비용이 반영될 수 있도록 시장기능이 작동해야 한다. 지금 공급력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수도권 등 일부지역은 여전히 심각한 수급불균형 상태에 있다. 발전설비의 증설에도 불구하고 송전선 건설, 융통전력 제약과 같은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전력시장과 전력회사 모두 지역별 공급비용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나, 시장만으로 해결이 어렵다면 정책에 의한 접근을 생각해볼 때다. 한편으로 시장기능의 정상화가 필요하지만 시장의 미비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정책이나 규제시스템도 다시 정비해야 한다. 우리 전력산업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숙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제 전력산업의 새로운 청사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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