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는 꺾였나, 예비율은 과다한가, 발전소 신설만이 답인가
"전력산업 환경변화 고려한 제도변화 필요"

▲ 보령화력발전단지 전경 ⓒ중부발전

[이투뉴스] 정부가 공언한 마감시한을 불과 두 달 가량 남겨놓은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5~2029)은 시쳇말로 ‘노답(No answer)'이다. 첫 단추인 수요전망부터 계획의 골간인 전원믹스까지, 역대 수급계획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쟁점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워낙 견해차가 커 일단 중지를 모으는 게 어렵고, 그렇기에 다수가 만족할만한 결론을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과연 정부와 전력산업 이해관계자(가장 큰 이해관계자는 국민)들은 남은 60여일 안에 ‘모범답안’을 도출해 낼 수 있을까?

본지는 이 문제가 공론화되기 전인 작년 초부터 일찍이 관련 논의를 수차례 지상 중계해 왔다. (2014년 1월 1일자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쟁점과 현황’ 보도부터) 그런데 이번 특집호에서는 주요쟁점을 다시 들여다보되 접근법을 달리하기로 했다. 현안에 돋보기를 들이대던 지금까지의 접근 대신 ‘거리 떼기’로 시야를 넓히고, 합당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주장 또는 이론을 향해 질문을 던짐으로써 남은기간의 논의를 좀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다. 7차 전력수급계획을 ‘뒤집어서' 봤다.

뒤집어 보기 #1  “전력수요는 꺾였다” (수요전망)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오는 29일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7차 계획에 대한 현안보고를 받는다. 산업계는 이때 수급계획의 얼개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보고에 수요전망이나 전원별 전원믹스 등의 핵심수치는 포함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수요전망을 놓고 수요소위 일각에서 'Post-2020(국가 온실가스 감축계획)'과 정합성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을 제기함에 따라 예정보다 기준·목표수요 산정이 늦춰졌고, 이로 인해 후속 설비소위 일정도 순연됐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이번 7차 계획의 수요전망값은 이전 6차 계획 대비 크게 낮은 2차 에너지기본계획 전망값에 근접한 수준으로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예측모형을 돌릴 때 핵심값이 되는 경제성장률(GDP) 전망이 밝지 않은데다 과거 실적에 해당하는 수요증가율도 최근 수년간 하향곡선을 그려온 터다.

2차 에기본의 연평균 증가율 전망(2.5%)을 벗어난 전망치 산정은 과대예측이 될 것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누구도 미래수요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데 있다.

이상기후로 증가하고 있는 폭염이나 혹한, 소득증가 및 산업고도화에 따라 늘어나는 전기화 수요, 경기변동성, 5~10년 단위로 주기적으로 반복돼 온 전력난-공급과잉 패턴 등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과소예측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중장기 에너지안보 확보’라는 수급계획의 최우선 목표를 고려해 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지향적인 예측과 수급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귀를 열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관행적인 과잉 수요예측은 불필요한 초과 설비 건설을 유발해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 전력수요 전망과 적정예비율을 놓고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사진은 여수산단 야경

뒤집기 보기 #2  “공급예비율이 너무 높다” (설비용량)
2011년 9.15 순환정전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정부와 전력당국이 6차 수급계획에서 막대한 신규 발전설비 건설계획을 반영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공급예비율 상승과 그에 따른 첨두부하 전원의 이용률 하락은 수급계획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하지만 최근 각계 전망대로 향후 실제 예비율이 장기간 과잉상태를 유지할까. 우선 이같은 전망은 수급계획에 반영된 모든 발전소들이 제때 준공·가동되고, 이들 설비가 생산한 전력을 융통할 송전망까지 적기 확충되는 상황을 전제한 시나리오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발전소와 송전선로에 대한 국민 수용성이 극도로 낮아져 도처가 가시밭길이다. 석탄화력이나 원전은 완공까지 최소 5~10년, 345kV·765kV 송전선로는 경우에 따라 십수년 이상이 걸리는데 이미 적잖은 발전사업들이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실제 6차 계획에 반영된(불확실설비) 영흥 7,8호기, 동부하슬라 1,2호기 등 3740MW 규모 의 화력발전사업이 연료규제나 접속선로 문제로 2년 넘게 발전사업허가를 받지 못해 수급계획에서 제외될 위기다.(7차서 심의) 기존 계획에 반영된 설비도 예외가 아니다.

2019년까지 가설키로 했으나 주민반대로 준공지연이 불가피해진 신울진~신경기 765kV를 이용할 예정이던 5, 6차 계획 설비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신한울 1,2호기를 비롯해 GS동해전력 북평화력 1,2호기, 남부발전 삼척그린파워 1,2호기 등 6000MW에 달한다.

이들 설비의 가동지연이 현실화되면 2020년 전후의 실제 예비율은 전망치를 크게 밑돌 수 있다. 이밖에 2029년까지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원전 12기(9600MW)의 재가동 여부, 비현실적인 수요관리를 전제로 한 목표수요 등도 예비율에 포함된 허수들이다.

전력당국 관계자는 “우리 목표 설비예비율(22%)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있는데, 여러 불확실 요인과 국가간 전력융통이 어려운 우리 여건을 감안해도 정말 그런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라면서 “주요 선진국들은 대부분 25% 이상의 예비율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 월성원자력 발전단지

뒤집기 보기 #3  “신규설비 확충이 해법이다” (설비계획)
그렇다면 수요예측의 불확실성, 전원설비 건설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해 적정 신규설비만 지속적으로 확충하면 수급계획은 소기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걸까. 꾸준히 새 부지를 마련해 새 발전소를 건설하고 새 송전선로를 까는 것이 유일한 해법일까.

전문가들은 2차 에기본에 적시된 바대로 공급위주 수급정책을 수요관리 중심으로 전환하고, 분산전원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에 좀 더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이번 계획부터 수급계획의 성격을 재정립해 사회적 갈등이 최소화되는 적정 설비 확보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고에 따르면, 올해 기준 전체 기저발전기의 31.1%(110기)와 14.5%(15.7%)가 각각 가동한 지 20년 이상, 30년 이상 된 노후발전기다. 이 비중은 계속 늘어 5년 뒤에는 전체의 절반(20년 이상 38.9%, 30년 이상 15.7%)이상이 된다.

이같은 설비노후화는 공급 불확실성의 복병이다. 제때 대개체가 이뤄지지 않으면 수급불안을 야기할 수 있고, 고장·사고 위험도 비례해 증가한다. 반면 노후설비는 이미 부지와 계통이 확보돼 있어 신규 부지와 송전선로 확충이 불필요한 자원이다. 굳이 신규 부지 확보와 발전소·송전선로 건설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수도권 소재 화력발전소 발전사 관계자는 "이런 장점을 활용해 노후설비의 시의적절한 리파워링(Repowering)을 유도하면 수급안정성 제고와 사회적 갈등 예방, 설비효율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면서 "이번 7차 계획이야말로 전력산업 환경변화에 걸맞는 제도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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