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송전선로 불균형 현상 본격화
발전단지 대형화 광역정전 위험 상존

▲ 한전 나주 본사 전력수급 상황실

[이투뉴스] 작년말 기준 9321만kW를 기록한 국내 발전 설비용량은 올해말 당진 9호기(1020MW)와 삼척 1호기(1000MW) 준공을 기점으로 연내 1억kW(100GW)를 돌파한다. 또 4~6차 수급계획에 반영된 원전과 석탄화력이 준공되는 내년말의 전체 설비용량은 1억1094만kW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렇게 계획대로 공급설비가 확충될 경우 매년 8월 피크기준 추정 예비율은 각각 올해 약 12%(10GW), 내년 21%(17GW)까지 상승해 한 여름에도 전기부족을 걱정할 일이 사라진다. 중기 예비력 과잉전망과 그로 인한 첨두발전기 가동률 급락 문제를 차치하면, 일단 안정적 수급여건 마련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전력수급 안정’이란 과업의 나머지 절반에 해당하는 송전망 여건을 생각하면 마냥 마음을 놓고 있을 처지가 못 된다. 전원계획에 따라 새 발전소 건설은 계속되고 있는데, 송전선로 확충은 갈수록 지체돼 망(網) 포화가 가속화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수도권 수급불균형 심화, 기존 발전단지 대형화 등으로 계통운영 여건은 악화일로다. 이미 수면위로 가시화 된 주요 발전단지의 송전난 문제가 정점으로 치닫고, 7차 수급계획을 통해 확정된 신규 발전사업까지 추가되는 향후 5년을 국내 송전망의 중대 고비로 보는 이유다.

전력대란 넘겼더니 송전대란 대기
현재 한반도를 종횡으로 지나는 송전선로는 약 3만1600km에 달한다. 한전은 6차 수급계획 이후 수립한 6차 장기송배전설비계획에 따라 2027년까지 7000km의 송전선을 추가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송전망 건설은 특정지역에 이해관계자가 몰린 발전소와 달리 범위가 광역적이고 수용성도 낮다.

전력당국 통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3년말 사이 수요(최대전력)와 발전설비가 각각 87%, 80% 증가하는 동안 송전망은 21% 늘어나는데 그쳤다. 한전 경영위기로 관련 투자가 저조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난해 밀양사태처럼 극도로 저하된 주민수용성 탓에 건설이 지연된 영향이 더 크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란 데 있다. 송전선로 경과지 피해주민의 보상을 현실화 하는 내용의 송변전설비주변지역지원법이 시행됐으나 발전소 주변지역 보상수준에 비교하면 아직 미흡한데다, 사업주체인 한전이 공기업이라 유연한 대응과 보상협의에 제약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전력수요 및 공급설비와 송전망간 불일치 현상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비대칭 상태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심화될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 그동안 수면 아래 잠재돼 있던 송전난은 올해를 기점으로 전력산업계의 당면 현안으로 부상해 향후 수년내에 막다른 길로 내몰릴 전망이다.

바다를 지나는 송전탑 위에서 설비를 점검하는 장면.

우선 준공이 임박한 당진화력 9, 10호는 발전소~북당진간 345kV 송전선로 건설 지연으로 속병을 앓고 있다. 오는 7월부터 9호기, 내년 6월부터 10호기가 각각 전력생산을 시작할 예정인데, 망(網) 포화로 발전소를 준공해도 전력을 실어 보낼 송전선로가 없어서다.

이에 따라 전력거래소는 학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TF팀을 꾸려 ▶765kV 이용을 위한 신뢰도 고시 적용 유예 ▶기존 발전기 A급 예방정비기간 조정 ▶효율이 낮은 기존 1~8호기중 일부 가동중단 등의 대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만약 여기서도 대안이 도출되지 않으면 신설 345kV 송전선로 완공까지 최소 3~4년간 새 설비를 놀릴 수도 있다.

지역주민 반발로 사실상 적기(2019년 3월) 준공이 난망한 신울진~신경기간 765kV 송전선로 접속 대상 발전소들도 당진의 전철을 밟게 될까 노심초사다. 전력거래소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올해말 삼척화력과 내년초 북평화력 1호기 접속을 끝으로 기존 울진~신가평 765kV 선로는 포화된다.

이렇게 되면 내년 6월 이후 가동되는 북평화력 2호기와 2017년 4월, 이듬해 4월 각각 순차 준공되는 1400MW급 신한울 1, 2호기는 ‘송전선로가 없어 가동하지 못하는 발전소’ 신세가 된다. 만약 이 노선의 건설지연이 장기화되면 2020~2021년 사이 준공 예정인 강릉안인화력과 포스파워삼척도 적기 가동도 불투명해진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계통이 확보되지 않으면 발전소 건설도 지연시키거나 중단하는 게 맞지만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데다 책임소재 문제로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태”라면서 “송전선로 건설상황을 봐가면서 발전소 건설공기를 조정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전 송전망 이용규정은 민원 등으로 건설이 지연되면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여서 발전사업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경향이 있다”며 “계통운영 신뢰도 감시와 한전 송배전 투자의 적정성 감독, 사회적 갈등 최소화 등을 위해 중립적으로 업무를 전담할 전력계통감독원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발전단지 대형화 계통안정성 위협
2003년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강타한 광역정전이 5000만명의 문명사회를 원시시대로 되돌리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7분. 2012년 역대 최대 규모 인도 광역정전이 6억2000만명을 극심한 혼란에 빠뜨리는데 소요된 시간은 단 3분이다. 모두 특정계통의 고장이 삽시간에 전체 계통으로 파급돼 피해를 키운 경우다. 

▲ 주요 발전단지 입지와 규모 ⓒ전영환 교수
이처럼 계통사고는 발전설비 고장이나 공급부족처럼 시간적 대비나 예측이 현행 기술로는 불가능에 가까워 고장에 대비한 상시 대책 수립과 적정 송전망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국내 계통은 기존 발전단지의 대용량화, 지역별 수급불균형 심화 등으로 대규모 광역정전 위험이 되레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3년 기준 대규모 석탄화력과 원전 발전단지가 몰려있는 서해중부 인천, 강원, 부산권(고리) 등 4대 단지의 발전설비용량 비중은 전체의 40% 안팎이다. 하지만 5~6차 수급계획에 따라 대규모 발전소가 추가 건설됨에 따라 2027년에는 그 비중이 51%까지 증가하고 6GW 이상이 몰린 지역도 6곳으로 는다. 특정 단지에서 탈락사고가 발생하면 그만큼 광역정전의 위험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공급지와 수요지가 달라 발생하는 지역별 수급불균형 문제도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현재 수도권은 전체 전력수요의 40% 이상을 소비하지만 설비보유량은 23%에 불과하다. 반면 강원권의 수요는 3%에 불과하지만 전체 설비의 11%를 보유하고 있고, 향후 비중이 큰 폭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지역별 수급불균형은 융통선로의 조류 증가, 고장 시 과도 안정도, 단락전류 증가 등을 초래하는 원인이다.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존 장거리 송전망 등을 예정대로 건설한다해도 특정지역에 편중된 공급설비는 송전망 사고와 광역정전의 위험을 되레 증가시킬 것"이라며 "기저발전+장거리 송전망의 기존 패러다임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고 유효성도 상실했다. 저수요 분산전원을 지향하는 전력수급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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