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C UN 제출시기 임박, 우리나라는 아직도 갈팡질팡
환경 “기존 목표보다 진전돼야” VS 산업 “부담 최소화”

 
"환경-산업계 언제까지 다툼만…이제는 접점 찾아야"

[이투뉴스] 올해 말 프랑스 파리에서 미래 지구의 운명을 좌우할 새로운 기후변화체제가 출범한다. 영어로는 ‘POST-2020'으로 칭하고, 우린 新기후체제로 부른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는 2020년 이후의 국가 감축목표를 담은 자발적 감축 기여(Intended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INDCs) 방안 제출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2월에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가운데 스위스가 자발적 기여방안 제출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어 유럽연합(EU), 노르웨이, 멕시코 등 줄줄이 UN에 자국의 감축방안을 제출했다. 미국과 중국 등 핵심국가들 역시 큰 틀의 감축방안을 정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반면 우리나라는 4월이 다 지나가는데도 아무런 말이 없다. 9월말 제출을 위해서는 아무리 늦어도 지금쯤 초안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깜깜 무소식이다. 과연 무소식이 희소식일까. 그런 분위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장기감축목표는 고사하고 BAU(배출전망)부터 환경부와 산업계 의견이 갈린다는 소문이 무성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대응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인류의 과제이며 지금이 바로 우리가 행동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또 기후변화는 위기로만 인식할 게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기회로 봐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기후변화 대응을 이렇게 규정했다. 더 이상 늦출 수 없으며,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의무대상국이 아니었음에도 국제사회에 감축목표를 천명한 이명박 정부와 궤를 같이 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때보다 훨씬 무거울 것으로 예상되는 장기감축목표 설정에도 같은 입장을 보일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이유다.

▲ 올해 말 파리에서 열리는 21차 당사국총회에서 신기후체제 출범이 예고되면서, 각국이 자발적 기여방안 마련에 본격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장기 감축목표 설정이 시급하다는 진단이다.

■ 국제사회 속속 동참 … 눈앞에 다가온 신기후체제
신기후체제(Post-2020)란 2020년 이후부터 선진국과 개도국이 모두 감축의무를 부담하는 기후변화협약으로 2011년 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출범이 결정됐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올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2014년 말에 열린 COP20(20차 당사국총회)에서 현재의 감축목표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평균기온 상승을 2도 이하로 억제하기에는 미흡하다는 데 공감하고, 전지구적 감축노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한 것이 주효했다. 또 신기후변화체제를 논의할 COP21에 앞서 각국의 기여방안을 제출토록 합의한 것도 중대한 진전이라는 평이다.

제출시기는 준비된 국가의 경우 3월까지 2020년 이후 국가별 기여방안을 제출하도록 했다. 나머지 국가 역시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보다 충분히 앞서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명시적으로 정하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마지노선이 9월말인 셈이다.

협상의 핵심이었던 INDC 작성·제출에 관한 지침도 확정됐다. 가장 눈길을 끄는 항목은 ‘감축목표 후퇴방지’ 조항이다. 어떤 국가라도 현재의 감축행동을 넘어 더 강화된 자발적 기여방안을 제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장기적이고 지구적인 관점의 감축 수준과 감축공약 또는 기여에 포함할 가이드라인, 시장메커니즘 등 보조수단, 관리체계 등을 명시하도록 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가운데 스위스가 지난 2월 스타트를 끊은 이후 최근까지 유럽연합(EU) 소속 21개국과 노르웨이, 멕시코 등 31개국만 감축목표를 제출했다. 전반적으로 다소 늦어지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5월말까지는 상당수 국가가 제출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스위스 정부는 유엔에 제출한 INDC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0% 줄이는 감축목표와 함께 대상범위 등을 제시했다. 전반적으로 IPCC 제5차 평가보고서 권고수준(2050년까지 2010년 대비 40∼70% 감축)에 상응하며, 2050년 연간 1인당 배출량 비전과도 일치한다는 분석이다. 여타 국가도 최대한의 성의표시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그동안 국제기후변화협약은 과거의 최대배출국인 미국과 미래의 최대배출국인 중국의 힘겨루기로 위태로운 상황을 맞기도 했다. 책임을 분산시켜 온실가스 감축부담을 혼자 짊어지지 않겠다는 의도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향후 10∼15년 내에 온실가스를 대폭 감축한다는데 전격적으로 합의하면서 중대한 고비를 넘겼다.

당시 미국은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수준에서 26∼28%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중국은 오는 2030년을 전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더 이상 늘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합의는 기대수준에 완벽하게 부응하지는 않더라도 기존의 배타적 입장보다는 진일보한 결정으로 받아들여졌다.
 
■ 환경-산업부 이견으로 우리는 아직 헛바퀴
스위스를 비롯한 각 국이 INDC를 유엔에 제출하면서 국제사회는 신기후체제에 대한 기대감이 켜졌지만 감축수준 등 INDC 내용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도 함께 막을 올랐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역시 제출 압박이 갈수록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정부는 현재 범부처 기후변화대응 TF(팀장 : 국무조정실장)와 함께 산하에 공동작업반(반장 :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장)을 구성하고 배출전망 작업 등을 진행 중이다. 6월말까지 감축목표(안)을 작성하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늦어도 9월말까지 UN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출할 계획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장기 감축목표 설정에 대한 환경부와 산업계 간 견해차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 실정이다. TF에 참여하고 있는 관계자에 따르면 장기 감축목표에 대한 윤곽은 고사하고, 국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산정부터 삐걱거리고 있다는 전언도 나온다.

BAU는 향후 우리나라가 온실가스를 어느 정도 배출할 것인지를 예상한 수치다. BAU를 산정해야만 이를 바탕으로 온실가스를 얼마만큼 감축할지 목표를 세울 수 있다. BAU 산정 후 우리나라 산업계가 실현할 수 있는 감축잠재량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협의를 거쳐 감축목표를 도출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감축량 산정에 있어 기반이 되는 데이터인 셈이다.

BAU 산정과 관련 환경부는 장기 전망치를 2020년 중기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전제로 낮게 설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BAU가 높아지면 감축목표를 높게 잡아도 실제 온실가스 감축량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감축량 설정에 있어 적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연만 차관은 이와 관련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개도국 위치라는 점을 이용해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입장”이라며 “2020년 이후 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이전에 세웠던 목표보다 더 야심차게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내 산업계의 이행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라 눈치만 보면서 감축목표를 소극적으로 설정하는 등 머뭇거리다가 낭패를 볼 것”이라며 “미국·중국 등 온실가스 다배출 국가들이 목표를 높게 잡으면 뒤늦게 따라가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어려운 점을 호소했다.

반면 산업부는 202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대비 30% 감축이라는 중기 감축목표 달성도 어려운 만큼 장기목표 역시 산업계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현실에 맞게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내부적으로 왜 우리나라가 먼저 나서 매를 맞으려고 하냐며 환경부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산업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 2012년 6억9000만톤을 기록하며 2020년 중기 감축목표치를 훌쩍 넘어서는 등 환경부 예상과는 이미 어긋났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부가 국제적 명분에 너무 집착, 목표치를 설정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감축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상황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 온실가스 장기 감축목표 설정을 위해서는 소수의 이해관계자가 밀실에서 주무르는 것이 아니라 광장에서 국민적 공론화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끌려 갈 것인가, 끌고 갈 것인가 고민해야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꾸준히 상승해 이제 세계 7위(2012년 배출량 기준, IEA) 수준까지 올라왔다. 아울러 여타 국가 시각을 볼 때 더 이상 개발도상국으로 평가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세계은행이 집계한 GDP 기준으로 세계 13위(2014년 기준) 수준에 올랐을 정도로 경제발전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우리나라의 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중기목표치보다 강화된 수치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사회가 정한 ‘후퇴금지 원칙’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는 9월까지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목표 제출이라는 스케줄도 맞춰야 한다. 서로 간 감정싸움으로 낭비할 시간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실제 김찬우 외교부 기후변화협상 부대표는 세미나에서 “기본적으로 신기후체제에서는 모든 국가가 INDC 제출 의무가 있기 때문에 선진국, 개도국의 경계가 없어질 것”이라며 “국제사회에서는 우리나라를 개도국으로서의 지위가 아닌 선진국 수준의 감축량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서용 고려대학교 교수도 新기후체제 협상대비를 위한 자발적 기여(INDCs)의 성공적 준비 전략과 관련 “우리나라는 중견국으로서 개도국과 선진국의 가교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기후변화에 있어 팔로워가 아니라 저탄소 경제성장을 이끄는 전략적 리더십을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목표만 강화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소수의 이해관계자가 밀실에서 주무를 사안이 아니라 국민적인 공론화와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광장으로 끌고 오면 오히려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많은 전문가들은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 해법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안은 분명히 있다고 강조한다. 유승직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장은 “EU를 비롯해 미국, 중국의 사례를 통해 보더라도 경제발전과 온실가스감축이 동시에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앞장설 것이냐 끌려갈 것이냐의 측면에서 기후변화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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