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다. 첫째, 우리나라는 자원빈국이다. 에너지·자원의 97%를 수입한다.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자동차·조선 수출액보다 더 많은 한 해 1800억 달러 가량을 에너지수입에 쏟아 붓고 있다. 에너지를 넉넉하게 쓰는 게 뭐가 잘못이냐는 말, 그래서 틀렸다.

둘째,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7위다. 그리고 국내 배출량의 85%는 전력생산 과정에 나온다. 올해말 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 결과가 어떻든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압박은 지속될 것이다. 언제까지 국제사회의 책임을 모른 채 할 수 없다.

셋째, 그럼에도 지금까지 정부는 전력.에너지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고수해왔다. 고도성장기에는 그렇게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젠 대내외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발전소 입지난, 송전선로 갈등 등으로 무작정 늘리는 일도 쉽지 않다.

정책의 방향전환 없이 온실가스 감축과 값싼 전기공급이란 두 가지 목표를 이루려 하다보니 자꾸 원전을 늘려 지어야하는 악수를 두게 된다. 최선 아닌 최선, 차선 아닌 차선을 반복하는 것은 정책 무능이자 무책임이다.

물론 경제성장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불확실성에 대비해 정부가 다소 여유있는 공급능력을 갖추려 하는 것도 백안 시 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정책의 우선 순위다. 충분한 공급력 확보에 앞서 같은 양의 전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소비하는데 정책역량을 집중해야한다.

원가에 충실한 전기요금 체제, 전력산업과 시장의 최적화, 산업계 공정개선 유도 및 제조업 체질개선 등이 먼저 손 댈 일들이다. 어렵다고 보면 한없이 어렵다.

일례로 소비 합리화는 수단보다 의지의 문제다. 흔히 모터라 부르는 전동기는 국내 산업용 전력의 70%, 전체 전력소비량의 40%를 소비한다. 산업계 주요 동력원이자 펌프, 냉·난방기, 공조기, 에스컬레이터, 심지어 전철 스크린도어도 전동기로 작동된다. 그런데 이 설비에 고효율 인버터란 장치를 부착하면 기존 대비 약 30%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국내 모든 전동기에 이런 효율화기기를 장착하면 단순 계산으로도 원전 몇 기를 새로 짓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정부가 보조금까지 지급하면서 설치를 장려해도 산업·상업시설 반응은 시큰둥하다. 전기료 부담이 적다고 느끼다보니 빠르면 3년안에 투자비 회수가 가능한 이런 설비투자조차 관심이 없다.

언제까지 공급중심 저가격 정책으로 이런 비효율을 방치할 셈인가. 최근 수년간의 발전설비 확충과 전력수요 증가율 둔화로 중기 예비력이 안정적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소비부문의 합리화와 공급부문의 효율화를 꾀하기에 어느 때보다 좋은 기회다.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이런 문제인식에서 수립되어야 한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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